저 녀석을 앞으로 10년 동안 상대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마크 그레이스 1997년 컵스전에서 완투승을 한 박찬호를 보고 당시 컵스의 1루수였던 그레이스가 한국인 기자에게 박찬호의 나이를 물어봤는데 기자가 24살이라고 답하자 한 말이라고 한다. 참고로 최희섭이 은퇴 당시 후배를 위해 길을 비켜주는 마크 그레이스처럼 되고 싶다고 회고한 바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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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前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야구 선수이자 KBO 국제홍보위원. 역대 두 번째 아시아인 메이저리거 첫 번째는 1963년 난카이 호크스 소속의 신인으로 마이너리그로 유학을 갔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어 얘 뭐냐?"라며 메이저리그로 콜업했던 무라카미 마사노리 ( 村上 雅則 ) . 다만 당시 난카이 호크스에서 "쟤 우리 선수인데 왜 너희가 맘대로 콜업하냐"라며 더 데리고 싶어했던 자이언츠의 요구를 무시하고 일본으로 강제소환 ( ... ) 하며 메이저리거 경력은 단 2년에 불과했다. 중간계투로 활약하며 54경기 5승 1패 9세이브 3.4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며 실제로 2년차 때는 45경기 ( 1경기 선발 출전 ) 4승 1패 8세이브 3.08를 기록하며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이다. 불같은 강속구 단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2000-2001시즌에는 속구 구위가 상당 부분 감소한 상태였다.와 낙차 큰 커브로 코리안 특급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한때 다저스의 1선발 급 에이스 케빈 브라운 때문에 에이스까지는 차지하지 못 했지만 그래도 다른 중하위권 팀에서는 에이스 노릇해도 이상하지 않은 성적이었다.까지 올라갔던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100승을 달성한 투수. 메이저리그 아시아인 최다승 ( 124승 ) 을 기록한 대투수이며, 2001년에는 다저스의 개막전 선발이었다. 21세기에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 위에서 공을 뿌린 첫번째 선수가 되는 것이다.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큰 이력을 남긴 투수 중 한명이다. 추신수가 박찬호의 통산 fWAR를 넘었기에 역대 최고의 한국인 메이저리거는 아니다. 박찬호의 투타 통산 fWAR는 22.6 ( 투 20.8 + 타 1.8 ) 이고 추신수는 2018시즌까지 fWAR 34를 기록했다. 또한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 1억 3000만 달러의 계약으로 박찬호의 FA 기록까지 깨뜨렸다. 다만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라는 상징성 측면에서 볼 때 그 위대함을 논할 수는 있을것이다. 아시아 지역으로 범위를 넒혀도 박찬호와 비교할 수 있거나 분명히 뛰어넘었다고 평가할 만한 선발투수는 노모 히데오 뿐이다. 또한 한국인 야구선수로서 최초로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을 때린 타자이기도 하다. 최희섭이 아니다. 박찬호가 선수 초기부터 텍사스로 이적하기 전까지 뛰었던 내셔널 리그에는 투수도 타석에 들어서는 규정이 있다. 그러다 보니 돈트렐 윌리스나 잭 그레인키처럼 수준급 타격 실력을 뽐내는 투수도 곧잘 등장한다.
한국에선 단순히 뛰어난 운동선수가 아닌 한국 스포츠의 상징이자 영웅으로 여겨진다. 뛰어난 실력, 어려움을 딛고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도 인기 요인이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어려웠던 국민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었다는 점이 그가 영웅이라 불리는 까닭이다. 당시 한국인들이 국제정세에 어둡기도 했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의 단군 이래 최고의 호황기로 인한 경제성장, 1996년 OECD 가입으로 인해 국민들의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었다. 일각에서는 일본을 넘는다고 까지할 정도로 국민들의 자긍심이 높았었다. 외환위기로 나라가 폭삭 망하고 직장까지 잃으니 그 당시 사람들의 패배감과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때 박찬호가 이역만리 타국에서 활약하는 것을 보며 국민들은 위로와 희망을 얻은 것이다. 당시 골프선수 박세리가 LPGA에서 양말을 벗고 물에 들어가서 스윙을 하는 투혼으로 우승을 차지하는 모습과 박찬호가 "코리안 특급"으로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최전성기인 1996년부터 2001년까지 그의 인기는 거의 스포츠계에서 90년대 후반부터 00년대 초반까지 가요계 원탑 자리를 차례대로 차지했던 H.O.T., 조성모, god 급의 위상과 비슷할 정도의 인기였다. 이러한 인기를 반영하듯이 박찬호 경기 중계의 시청률은 낮에도 25%가 나왔었다.[박찬호 중계 시청률 25%↑, 류현진 6배” ( MBC에빠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