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감독님이 그러더라고, "동원아 우짜노... 여까지 왔는데..."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알겠심더. 마, 함 해 보입시더." 이 말은 롯데 자이언츠의 2017년 포스트시즌 캐치프레이즈가 됐다. 마 함 해 보입시다!
스포츠 2.0과의 인터뷰 중
대한민국의 前 야구인. 선동열과 더불어 명실상부 KBO 역대 최고의 투수이자 롯데 자이언츠 역대 최고의 선수로 사후 그동안 외면하다가 뒤늦게 영구결번을 주었다. 1980년대 초반 한국야구를 대표했던 대투수. 더 놀라운 건, 이 사람은 아마 시절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실업야구 코리아시리즈 6경기에 모두 등판 ( 선발로 세 번 ) 하여 무려 42.1이닝을 던졌다. 경기당 평균 7이닝을 소화한 셈. 혹사에 시달려 전성기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 되어 프로에 데뷔했다는 것이다.
그의 투구 폼은 용틀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역동적이었으며, 자기 공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공격적인 투구를 했다. 그것은 일본의 선진 야구를 배우게 한 아버지의 덕이 컸었다. 최동원 선친은 본래 소싯적에 축구에 재능이 있었으나 집안의 반대로 인해 꿈을 접어야 했고, 그 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다리를 잃은 아픈 기억을 안은 사람이었다. 그 때문인지 아들의 재능을 발견한 뒤로는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아들의 성장을 위해 헌신했었고, 구설수에 휘말린다 싶으면 "모든 욕은 내가 먹겠다"고 하며 아들을 감쌌다. 부산에서 시청 가능하던 일본프로야구 중계방송을 보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에이스 호리우치 츠네오의 투구폼을 아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최동원의 전매특허인 드롭 낙차 큰 커브.이 바로 호리우치의 주무기였다.
공격적인 투구 성향으로 피홈런율이 상당히 높았다. 이후 인터뷰에 보면 정말 대단한 자신감을 가졌다는 것이 보이는데 홈런을 맞으면 다음 상대 때 다시 똑같은 코스에 던져서 "칠테면 쳐봐라. 이번에도 또 치면 넌 실력이었고 못 치면 운이 좋아서 네가 쳤을 뿐이다."라는 마인드를 가졌었던 게 나온다. 홈런을 허용하고도 호탕한 웃음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통산 고의사구가 15개밖에 [된다.] 1년에 2개도 안 던진 셈. 정말로 공격적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기록이다.
아마 때부터 혹사를 달고 살았기 때문에, 프로 입단 당시부터 부상을 달고 살아서 구속이 많이 느려지고 고생했으나 시간이 지나자 진가가 드러나 몇 년간 선발 중간 마무리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나와 이닝을 소화했다. 덕분에 장명부 다음으로 많은 284.2이닝을 던졌으며, 한 시즌 개인 최다 탈삼진 기록인 223K를 기록한다. 이 기록은 2020 시즌 종료 후인 현재까지도 경신되지 않고 있다. 즉, 32시즌이 지나도록 여전히 깨지지 않은 불멸의 기록. 참고로 이 기록에 가장 근접했던 이가 1996년 221K를 기록한 주형광이었다. 현 시대 최고의 투수로 군림하고 있고, 나아가 역대 한국 최고의 투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류현진조차도 200K 시즌은 2번 ( 2006년, 2012년 ) 있었지만 끝내 최동원의 기록을 넘지는 못했다.
투구 전 송진가루, 신발끈, 겉양말, 안경, 모자챙을 차례로 만지고 공을 던지는 루틴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