奮威光國鬢星星 나라를 빛내기에 평생을 바치니
學語街童盡識名 어린 아이까지도 그 이름 알고
一片壯心應不死 한 조각 장한 마음 죽지 않아서
千秋永與太山橫 천년토록 태산과 함께 남으리라
ㅡ 변계량이 최영을 추모한 시
見金如石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
ㅡ 아버지 최원직의 유훈.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때문에 최영이 한 말로 알고 있지만 그의 아버지 최원직의 말이다.
고려 말의 장수이자 고려 말기를 대표하는 인물. 고려 최후의 충신이 문 ( 文 ) 으로는 정몽주가 있다면 무 ( 武 ) 로는 최영이 있었다.
아버지는 최원직이고 어머니는 봉산 지씨이다. 최영은 본처 문화 류씨에게서 장남 최담, 차남 최언, 적녀 1명 ( 남편 사공민 ) 을 얻었고 첩 은씨부인에게서 우왕의 아내 영비 최씨를 얻었다.
이성계와 함께 고려 말기에 이름을 떨쳤던 명장이었으며 또한 왜적의 침략과 어지러운 국내 사정으로 인하여 무너져가는 고려 왕조의 대들보, 수호신, 한국사 속 대표적인 충신이기도 하였다. 그 행적과 활약상은 로마 제국의 스틸리코와 비견될 만하다.
맹활약과 우직한 청백리의 면모 때문에 조선 건국의 걸림돌이라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조선 시대에 와서도 명장이었다고 평가받았으며 지금까지도 고려 말을 대표하는 명장으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조선의 경우 전 왕조를 무너뜨렸기에 역으로 고려를 지키려 했던 인물들인 정몽주, 이색 등을 충신으로 받들어세웠다. 대신 정도전을 비롯한 역성 혁명의 주모자 일부가 역신으로 격하됐다. 특히 백성들 사이에서는 마치 삼국지의 관우처럼 장군신으로 숭배되었다. 지금도 최영이 맹활약을 펼친 삼남 지방 (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 해안 지역에 가면 최영을 모신 사당이 많이 남아 있다.
최영이 생전에 봉해진 군호는 철원부원군 ( 鐵原府院君 ) 철원 지역을 하사받은 가신, 즉 부원군이다.이고 사후 추증된 시호는 무민공 ( 武愍公 )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