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제31대 임금. 시호는 고려 우왕이 독자적으로 올린 경효대왕 ( 敬孝大王 ) , 명나라가 하사한 공민왕 ( 恭愍王 ) .
간혹 고려에서 올린 시호 경효대왕 ( 敬孝大王 ) 을 따서 경효왕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제25대 충렬왕의 고려 시호도 경효왕 ( 景孝王 ) 이라 혼동할 수 있어 실제로는 많이 쓰이지 않는다. 고려식 휘는 전 ( 顓 ) , 몽골식 이름은 왕바얀테무르 ( 王伯顔帖木兒 ) .
공민왕의 아들이자 후계자 강령부원대군 왕우는 위화도 회군으로 비참하게 몰락하고 손자 왕창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힘도 한번 못 썼으며 결국 둘 다 신돈의 후손인 신씨 ( 辛氏 ) 로 몰려 처형당한다. 후대 조선 왕조는 두 사람을 왕씨 ( 王氏 ) 도 아니고 옥좌를 찬탈한 역적으로 간주하여 아예 두 사람의 휘를 그대로 쓰며 고려사 세가에 넣지 않고 반역열전에 넣어 비난했다. 고려사 열전은 신돈, 신우, 신창 열전을 마지막으로 끝난다. 이후 창왕의 뒤를 이은 공양왕은 어떻게든 고려를 지키기 위해 이성계에게 군신동맹을 맺자고 하며 끝까지 선양을 하지 않고 버티다가 결국 강제 폐위되어 내쳐진다.
이를 보면 고려 후기 군주 중 마지막으로 정권을 장악했던 군주였다. 그래서 사실상 고려의 마지막 군주라고 봐도 무방하다. 조선 왕실 종묘에 사당이 모셔진 고려의 유일한 왕으로 이성계가 진정으로 충성심을 바친 왕인듯 하다. 어찌보면 당연한 게 이성계는 홍건적의 난과 왜구 토벌로 본인의 능력을 나타내기 전에 부친 이자춘과 더불어 동북면의 실력자로서 공민왕의 개혁에 ( 반원정책 ) 있어서 본래 친원에서 공민왕의 신하가 되어 역사에 전면에 나타나게 해준 군왕이었으니 이성계 개인에게 있어선 역성혁명으로 비록 고려를 무너트리고 자기 나라 ( 조선 ) 를 세웠지만 오늘날의 이성계를 있게 해준 이가 공민왕이기에 그 충성심이 적어도 거짓은 아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