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 다음가는 폴란드 제2의 도시로서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이다. 이 도시의 기원은 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유서 깊다. 크라쿠프는 전통적으로 폴란드의 학문 코페르니쿠스가 이곳의 야기엘론스키 대학을 나왔다. 공산주의 시절에는 북한에서 유학생이 오기도 했다. 주로 채광기술을 배우러 왔다 한다. 그밖에도 곤충분류학이 세계최고수준이라고 한다., 문화, 예술 연극으로 매우 유명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젊은 시절 이곳에서 연극을 했다.의 중심지였으며 또한 폴란드/경제의 요충지다. 1040년 ~ 1596년에는 폴란드의 수도이기도 했다. 시 자체의 인구는 약 76만명으로서 폴란드 제3의 도시인 우치보다 인구가 약 2만명 많다. 1978년에 유네스코는 이 도시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여 구 시가지 전체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 그 밖에도 가까운 거리에 볼거리가 많아 폴란드 관광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1시간 반 거리에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다. 그리고 거대한 지하 성당으로 유명한 비엘리츠카 암염 광산 역시 가까운 거리에 있다. 폴란드 최고의 가톨릭 성지인 쳉스토호바 역시 시외버스로 1시간 반~2시간 거리에 있다.
수도인 바르샤바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도시 전체가 파괴되어 구시가지를 포함한 도심지 전체가 다 재건된 것인 반면, 크라쿠프는 폴란드 침공당시 시장이었던 스타니스와프 클리메츠키 ( Stanisław Klimecki ) 의 용감한 행동 ( 그의 행적은 '역사' 장에 후술 ) , 그리고 폴란드 총독부의 수도가 되었다는 점 덕분에 전면적인 파괴는 면할 수 있었다. 때문에 폴란드의 실질적인 관광도시는 바르샤바가 아니라 이곳 크라쿠프이며, 세계의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폴란드 도시이다.
한편 이러한 관광도시의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크라쿠프는 북부 이탈리아의 공업 지대 밀라노, 제노바, 토리노 등와 함께 유럽에서 가장 대기오염이 심한 지역이기도 하다. 이는 공산 정권 시절 이 지역이 철강 지대로 집중 육성된 점도 한몫하지만 대부분의 난방이 석탄과 나무로 이뤄지고 있고 푸스타 분지의 존재로 인하여 바람이 잘 안 불기 때문이다. '크라쿠프에서는 창문을 열면 바깥을 환기시킨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이다. 크라쿠프 시청도 이 심각성을 잘 알고 있고, 집안에서 석탄과 나무를 태우는 가정에 벌금을 매기는 등의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