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배우, 전 정당인.
민주통합당의 최고 위원을 거쳐 당대표 권한 대행까지 맡았지만 2012년 8월 이후 탈당하고 정계를 잠정적으로 은퇴했다. 대표적인 친노 인사로 유명하다. 민주화 운동가 문익환 목사의 아들이자, 문재린 목사와 김신묵의 손자이다. 2세대 예능인 대다수가 그렇 듯, 자신을 누군가의 자녀라 부르는 것을 싫어하고, 누구의 자녀가 아닌 본인 그대로 평가 받으려고 든다. 실제로 연예인들의 부모들도 'XX의 부모'라고 [것을 선호한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원래 코폴라 가문이었으나 후광이 싫어서 예명을 쓴다. 그러니 본인 앞에서는 문익환 목사나 문재린 목사, 김신묵 등에 대한 얘기를 절대 꺼내서는 안 된다. 자신도 어지간해서는 입에 올리지도 않으며, 부득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자기 아버지를 문 목사라고 지칭한다.
팟캐스트 방송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에서 아버지 문익환 목사 편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언급한 바에 의하면 어렸을 때 경찰들이 아버지를 잡아가기 위해 문 앞을 두드리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은 것이 트라우마가 되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문 두드리는 소리를 싫어한다고... 심지어 전화 오는 소리도 싫어했다고 무릎팍도사에서 밝혔다. 전화를 걸어봐서 받으면 집에 누가 있는 것만 확인하고 끊어버린 뒤 대문을 나서는 순간 바로 연행해가는 식이었다고. 문성근 본인의 말로는 이런 공포를 문민정부 출범 때까지 겪었다. 그리고 바로 위의 문단에서도 밝혔듯 아버지인 문익환 목사를 아들이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문 목사'라고 부르는 이유는 한 가정의 아버지라기보다 민족 지도자로서의 기억이 많아 사람들의 호칭대로 쓴다고 밝히기도 했다.
형은 피아니스트 겸 오페라 연출가 문호근 ( 1946~2001 ) 이다. 1997년부터 예술의 전당에서 오페라 감독관으로 재직하고 있던 중 급성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평소 건강했지만 갑자기 사망하여, 당시엔 돌연사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었다.
서강대학교 무역학과 시절 연극 반에서 처음 연기를 시작했다. 졸업 후 현대양행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동생인 정인영이 1964년 독립해서 창업한 회사. 정인영은 현대양행을 기반으로 한라그룹을 세우지만, 정작 현대양행은 1981년 한라그룹의 손을 떠나서 이후 소유주가 대우그룹, 정부, 두산그룹으로 계속 바뀌면서 이름도 한국중공업을 거쳐서 현재는 두산중공업이 되었다.에 입사하여 문성근 자신이 밝히기로는 자신은 무역학과를 나왔는데 '양행'이라는 회사 이름만 보고 막상 들어가봤더니 중공업 계열 회사라 자기와 다소 맞지 않는 곳이었다고. 계열사인 한라건설로 옮겼다가 갑자기 그만 두고, 배고프고 먹고 살기 힘든 연극 무대에 데뷔하였다.
당시 문성근은 인사 평가도 좋게 받고 있었다고 한다. 그만 둘 시점에는 우수 사원 표창을 받은 직후였다고 한다. 회사 상사들은 "2년 내에 돌아오면 다시 받아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극단 "연우무대"에서 시작한 연기 인생이 정말 잘 풀렸기 때문에 그는 지속적으로 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후 연극/영화/드라마를 넘나들며 신 들린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연극 무대에서는 등으로 익히 알려져 있었고, 방송 데뷔 작은 천사의 선택 ( 1989 ) 이다.
1991년 강수연과 출연한 영화 "경마장 가는길"을 통해 충무로에 이름을 알린다. 그의 연기포텐이 제대로 터진 작품은 1996년 장선우 감독이 연출하고 이정현의 신들린 연기가 화제였던 영화 꽃잎. 본인의 연기 스타일이나 외모, 목소리 톤 등으로 인해 지식인 이미지의 캐릭터로 자주 출연했었다. 그래서 연기폭이 좁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지식인 연기에 최적화되어 있긴 하지만, 양아치나 깡패 역할을 맡지 않은 것도 아니다. 초록물고기에서는 꼬붕인 한석규를 살인교사하고, 다시 희생시켜 법망을 피해나가는 음험한 조직폭력배 두목 배태곤 역을 맡은 바 있다.
1992년 SBS의 개국 초기에 시작된 그것이 알고싶다의 전설적인 진행자이다. 그것이 알고싶다의 진행은 1992년 3월 31일 ~ 1993년 12월 26일까지 맡았고, 복귀 후 1997년 10월 26일 ~ 2002년 5월 11일까지 또 맡았다. 그가 떠난 이후 여러 진행자가 맡았지만, 아직도 문성근이 최고로 손꼽히고 있다. 사실 2002년 당시에 하차한 것은 정치적 이유로, 노무현 지지를 선언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문성근 본인은, 영화배우 손숙이 자신이 출연한 영화 101번째 프로포즈를 보고 쓴 칼럼에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의 깔끔한 이미지와 영화에서의 어리버리한 모습이 괴리가 느껴져서 적응이 안 되고 영화에 몰입하는데 30분이 걸렸다"고 한 평을 듣고 동종업계 사람도 이런데 관객들은 또 어떻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것이 알고싶다 하차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고. 이후로 그런 이미지를 벗어나려고 일부러 센 역할만 골라 출연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2003년부터 2004년까지 KBS1에서 의 진행을 맡은 바 있다. 진행자 선정 과정부터 정치적인 논란이 있는데, 보수 언론과 한나라당 측은 KBS가 역사스페셜을 폐지하고 인물현대사를 새로 편성하면서 노무현 지지자인 문성근을 진행자로 선정한 것에 대해 노무현 정권의 외압이라고 비난했으나, 장해랑 당시 인물현대사 PD의 증언에 의하면 "문성근이 인물현대사 출연에 대해 그는 와의 관계 정리 등으로 인해 난색을 표했으나, 문씨의 정치적 성향보다는 진행능력을 높이 사서 캐스팅한 것."이라고 밝혔다.
진보 쪽 활동을 해서인지 한국논단이 허구헌 날 자주 까는 연예인 중 하나이다. 뭐 여긴 지만원처럼 문근영도 연좌제로 까는 답이 없는 쪽이니... 본인은 이런 비난에 아버지나 할아버지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면서 그렇게 비난하는 그런 자들은 일제강점기에 대체 뭐했냐고 응수한다고 한다.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이라는 인터넷 시민 운동 2010년 제안한 운동으로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등 야권을 단일 정당으로 통합하여 선거에서 한나라당 ( 현 새누리당 ) 과의 단일 대결 구도를 만들어 승리해야 한다는 운동을 펼쳤었다.을 주도한 적이 있다. 그리고 현재는 '온라인 광장 시민의 날개' 운동을 제안 및 준비 중에 있다.
위와 같은 방송, 정치 활동 이력으로 인해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반정부인사로 낙인찍혀서, 해당 정권 기간 동안 TV와 영화에서 크게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블랙리스트에 대한 강한 의혹만 있었을 뿐 물적 증거는 없었으나,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과 2017년 9월, 국정원 적폐청산 TF에 의해 문서화된 이명박 정부의 블랙리스트가 공개되면서 명백한 사실임이 밝혀졌다. [문성근 "8년간 방송 출연 無, 소득 신고 못한 해 많다" [국정원, 문성근·김여진 합성사진 제작 유포…이미지 실추 '심리전']]
각종 영화에서 수많은 여성들 ( 미성년자까지도 ) 과 검열삭제를 찍는다 ( ... ) . 게다가 꽃잎의 이정현이나 실종의 전세홍은 강간이었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의 정선경은 당시 파격 노출로 큰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의외로 수위가 높은 건 별로 없다. "경마장 가는 길"의 강수연은 원래부터 몸을 사리기 유명한 배우인데다가 당시 탑 배우였기 때문에 베드신에서 노출을 꺼렸다.
과거 결혼해서 1녀를 두고 있었으나, 1990년대 초반 이혼하고 현재는 싱글로 지낸다고 한다. 아버지 문익환 목사에 대한 탄압의 영향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시기 반정부 인사로 지목된 문익환 목사에 대한 탄압은 가족에게도 이어졌다. 문성근은 결혼하여 분가한 이후에도 가택 감시, 통신 감청, 국외 여행 제한 등에 시달렸고, 이에 참다 못한 아내가 문성근과 이혼하고, 영주권을 취득해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지금도 가끔이지만 가족과 연락하면서 교류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