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위나라의 1대 황제. 보통 초대 ( 추존 ) 황제를 조조로 본다. 자는 자환 ( 子桓 ) , 시호는 문제 ( 文帝 ) , 묘호는 세조 혹은 고조#s-1. 재위기간 고작 6년. 제국의 창업군주로는 너무나도 일찍 죽었다.
선양을 통한 왕조 교체에 성공한 최초의 군주 선양 자체의 선례는 예전에도 있었다. 예를들면 춘추 전국시대 연나라 자지의 경우도 선양까지는 성공했으나 왕조 교체에는 실패했다.이자, 남방 정벌을 통한 중국 통일에 실패한 북조 최초의 군주이기도 하다 실제로 선양을 받고 통일을 완수하여 수백년을 존속한 중국 주요 왕조들의 초대 혹은 2세 황제들과 비교한다면야 조비의 스펙이 절대적으로 초라해보이긴 한다. 물론 한고조 같은 바닥에서 성장한 입지전적의 끝판왕 같은 인물은 비교 선상에 놓을 수도 없고, 사마염 같은 조비만도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도 있지만, 광무제/수문제/당고조,이세민/조광윤,송태종/주원장,영락제 등에 비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수양제보다는 고평가 받을 수는 있겠다. 삼국지와 위진남북조시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계기가 된 인물. 400년을 존속했던 한 황실이 조비의 선양을 통한 찬탈로 멸망하면서, 이후 350년간 혼란의 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비중이 있다면 있는 셈.
인격적으로도 매우 많은 문제점들이 발견되지만, 후한 말과 삼국 시대의 문학을 정리하여 건안칠자로 묶어 유고 시집을 편찬하는 등 문화계에는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러나 외정에서는 남정의 실패, 내정에서는 법률이 가혹했고 구품관인법을 제정해 후대에 부담을 안겨줬다는 비판의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