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의 손자이자 조비의 장남. 자 ( 字 ) 는 원중 ( 元仲 ) .
삼국시대 위나라의 2대 황제. 묘호는 열조 ( 烈祖 ) , 시호는 명제 ( 明帝 ) . 나라를 세우지 않았는데도 조 ( 祖 ) 자의 묘호를 최초로 받은 종보다는 조가 더 격이 높게 느껴진다. 조선의 정조를 참고. 황제이기도 하다.
초기의 업적과 말년의 실정으로 평가가 엇갈리는 군주.
재위 초에는 어린 나이에 황제로 등극하였음에도 강력한 황권으로 정국을 안정화시키고, 촉한과 오나라의 공격을 수차례 막아내어 위나라가 자리를 잡는 데 공을 세웠다.
반면 말년의 실정은 위나라 멸망의 시발점이 되었다. 사마씨 가문에 병권과 재정권을 몰아주어 세력을 키울 수 있는 힘을 제공했고 누구 아들인지도 모르는 조방을 후계자로 지명하고는 친위세력조차 무능한 자들로 채워서 정치가 갈수록 혼란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조비가 위나라 멸망의 시한폭탄을 준비했다면 조예는 그 도화선에 불을 붙인 꼴. 결국 그가 죽으면서 위나라는 사실상의 창업군주 조조가 죽은 지 20년도 안되서 멸망의 길로 빠져든다.
그래도 재위 기간 내내 촉한과 오나라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자국의 우위를 끝내 지켜냈으니 묘호에 종이 아닌 조가 붙은 듯하다. 중국에서 묘호가 모든 왕에게 붙기 시작한 것은 당나라 이후다. 그러니까 이 시기에 묘호를 받은 왕들은 최소한 나라를 잘 이끌었거나 덕이 많았던 왕을 말한다. 한경제도 문경지치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태평성대를 이루었지만 묘호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