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남동부에 위치한 군. 지리적으로는 태백산맥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1960년대~1990년대 경부라인과 경인라인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 개발 정책으로 인해, 대부분 지역들이 낙후 지역으로 전락하였는데, 그 중에서 경상북도에 BYC ( 봉화, 영양, 청송 ) 가 있고, 전라북도에 무진장 ( 무주, 진안, 장수 ) 이 있다면 강원도에는 영평정 ( 영월, 평창, 정선 ) 이 낙후 지역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중에 제일이 정선이다. 영월은 38번 국도가 잘 닦여있어서 제천, 원주, 서울 방면으로의 교통이 편리할 뿐더러 나름 영평정의 중심지고, 평창은 읍내가 벽지라 그렇지 진부면을 비롯한 영동고속도로 연선은 대한민국 동계 레저스포츠의 메카라서 많은 외지인들이 찾고 있고 무엇보다도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서 인지도가 높아짐과 동시에 관광 산업도 더욱 발달하는 등 상황이 많이 나아졌지만, 정선은 대부분 산밖에 없는 데다가 도시에서의 거리도 훨씬 멀고 교통마저 영월, 평창에 비해 훨씬 불편하기까지 하는 등 뭐 하나 내세울 만한 게 없다.
그럼에도 적은 인구 수에 비해 유난히 읍 ( 邑 ) 은 많은데, 과거에 인구가 굉장히 많았을 때 나뉜 것이다. 지금이야 강원도의 손꼽히는 낙후지역이지만, 리즈 시절에는 무려 13만의 인구를 자랑하는 강원도의 효자 지역이었다. 1960~70년대 경제개발 시기의 한국에서는 해외에서 수입해야하는 석유보다 자급자족 가능한 석탄을 연료로 더 많이 썼고, 덩달아서 석탄이 많이 나는 정선이 굉장히 발달했었다. 다만 사북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분위기가 썩 좋은 지역은 아니었고, 강원도가 산업단지 유치나, 교통 인프라 개선보다 주력산업인 광업에 대한 의존도와 그리고 1980년대 후반부터 원가상승과 환경오염 문제로 인해 연탄 소비량이 급감하기 시작하고, 1989년 시행된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인해, 탄광업이 망해버려서, 2017년 기준으로 보면 인구 4만 명으로 전성기 시절의 1/4도 안 될 정도로 급격히 줄어버렸다.
여하튼 인구가 급속히 줄어들면서 지역 자체가 존망의 기로에 서자, 이 지역의 발전을 위해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 법에서는 외국에서 도박을 한다고 해도 입국하는 순간 범죄가 성립된다. 속인주의 참조. 한국인이 합법적으로 출입 가능한 카지노인 강원랜드가 2000년 10월 고한읍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 외의 자체 산업 자체는 형편없는 수준이라 인구는 여전히 줄어들고 있는 중이다. 하다못해 입지조건상 그나마 유리한 고랭지 농업조차도 대도시로의 운송이 불편해서 강릉이나 평창에 밀리고, 관광산업조차 주변 지역들이 관광 하면 하나씩 알아주는 명소가 있는 동네들이라 북동쪽의 한국에서 손꼽히는 관광 도시인 강릉시는 말할 것도 없고, 동쪽의 동해시나 삼척시는 어쨌든 동해 연안이고 환선굴, 대금굴, 천곡동굴, 묵호항, 관동팔경 중 하나인 죽서루 등 관광지에 바다열차 같은 관광열차도 다닌다. 북서쪽 평창군과 횡성군은 고속도로와 KTX를 낀 웰리힐리 파크, 휘닉스파크, 알펜시아 리조트 등 스키장 영업에 최적화된데다가 이쪽도 오대산 같은 수려한 산이 있고, 남동쪽 태백시는 태백산이 있는데다가 황지연못, 검룡소, 풍력발전단지 등 독특한 여행지가 많고, 남서쪽 영월군마저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를 비롯, 동강을 따라 각종 명소가 널리고 널렸다. 인지도 면에서 밀린다. 그러나 풍경이 아름다워 자연관광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겐 매우 적합한 곳이다. 관광에 관해선 하단 문단을 참고하자. 그래도 지방세 수입은 인구에 비해서 많기는 많다. 사실 초기에는 적지 않은 정선 군민들이 카지노에 너나 할 거 없이 출입하면서 되려 큰 손해를 본 가정이 은근히 있었다는 불편한 진실도 있다. 그래도 도박중독자들이 사북 근처에 두리번거리기 때문에 도박중독자들의 돈이 기층경제로 흘러 들어와서 일단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었다고는 하나, 국가에서 도박중독자들을 치료하려고 들면 바로 상권이 침체되는 딜레마에 처해있다. 도박 중독자들이 콤프 교환을 한다고 정선군 내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콤프깡을 까는 짓을 했다가 콤프 가맹점들이 대거 계약 해지당하면서 상점들이 손해를 보는 일이 벌어졌다.
정선아리랑의 발상지로도 알려져있다. 고려 말 ~ 조선 초까지 올라가는데, 조선이 건국되자 고려를 섬기던 선비들이 오늘날의 정선군 남면#s-2.5 지역에 은거하면서 자신과 고려국의 신세를 한탄하던 것이 정선아리랑의 기원으로 전해진다. 이후 아우라지 전설을 반영한 가사 등 새로운 가사가 생겨나기도 하였다. 아우라지 전설은 다음과 같다. 정선 아우라지에 궁궐을 짓는데 쓸 나무를 베는 나무꾼들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아리따운 처녀가 있었다. 한 나무꾼과 이 처녀는 사랑에 빠졌는데, 나무꾼이 한양으로 가다가 배가 뒤집혀 죽자 이를 기다리는 처녀가 불렀다고 전해지는 노래가 바로 정선 아리랑 가사 가운데 하나인 “아우라지 뱃사공아 날 좀 건네 주게 싸릿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이다. 실제로 아우라지에 가면 처녀 동상과 총각동상이 있다. 이처럼 여러 세대를 거치며 다양한 가사가 만들어지고 전승되어 온 정선아리랑은 경복궁 중건 때 한강 수계 최상류인 정선 지역의 나무를 베어 서울로 운송하는 과정에서 서울로 퍼지게 되고, 이후 전국 각 지역에서 '아리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민요가 생겨나는 계기를 제공했다. 모든 아리랑의 원조가 바로 정선아리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