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내년 2026년은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0543989227" rel="noopener" target="_blank">필라델피아 인디펜던스홀</a>에서 미국이 공식적으로 영국의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지 <a href="https://www.america250.org" rel="noopener" target="_blank">250주년(Semiquincentennial)</a>이 되는 해이다. 하지만 미국의 혁명 전쟁(American Revolutionary War)은 1775년 4월 19일의 렉싱턴/콩코드 전투를 그 시작으로 보기 때문에, 이를 포함해 독립전쟁의 가장 중요한 5개의 전투를 기념하는 아래와 같은 우표가 올해 발행됐었다. 제일 윗줄의 Battles of Lexington & Concord는 보스턴 외곽에서 벌어져 현재 <a href="https://www.nps.gov/mima" rel="noopener" target="_blank">Minute Man National Historical Park</a>로 관리되고 있는데, 예전에 주변을 몇 번 지나가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직접 가보지는 못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2676" src="https://blog.kakaocdn.net/dn/bxCjBw/dJMcahbYfjL/Fq5NAcEoHqogB0oPUnGiv0/img.jpg" width="6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같은 해 6월의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0484771461" rel="noopener" target="_blank">벙커힐 전투(Battle of Bunker Hill)</a> 기념비는 2015년에 방문했었고, 셋째줄 1776년 12월의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764937767" rel="noopener" target="_blank">트랜턴 전투(Battle of Trenton)</a>에 대해서는 수채화로 묘사된 워싱턴이 델라웨어 강을 건넌 곳을 올초에 지나간 적이 있다. <a href="https://www.barracks.org" rel="noopener" target="_blank">(사진은 트랜턴에서 영국군이 주둔하고 있던 막사)</a> 전편에서 보여드렸던 대포의 사진이 들어간 새러토가 전투(Battle of Saratoga)에 대해서는 이제 설명을 드릴 예정이고, 마지막 줄은 사실상 전쟁이 종결된 1781년 10월의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2955529922" rel="noopener" target="_blank">요크타운 전투(Battle of Yorktown)</a>로 3년전에 역시 현장을 들렀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dhjUjj/dJMcahbYfjH/2M2eyX65kUDBH0cWrrus61/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4102448821" rel="noopener" target="_blank">여기를 클릭해 보실 수 있는 1부</a>에서 설명드린 두 번의 공격이 모두 실패한 후에, 전장에서 몇 마일 북쪽의 작은 마을로 후퇴했던 존 버고인(John Burgoyne) 소장이 이끄는 영국군이 열흘이 지난 10월 17일에 호레이쇼 게이츠(Horatio Gates) 소장의 대륙군에게 이 자리에서 항복을 하게 된다. 이는 당시 세계를 주름잡던 대영제국의 장군이 통솔하는 5천명 이상의 정규군이 야전에서 항복한 역사상 최초의 사례라 한다. 그것도 다른 유럽의 강대국이 아니라 아메리카 식민지의 반란군에게!<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2400" src="https://blog.kakaocdn.net/dn/wGSOF/dJMcafLZVAR/JjGtHooTmlKAcrGqGQhRSk/img.jpg" width="6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포신에 영국 왕실을 상징하는 왕관과 대문자 'R'이 새겨진 이 대포는, 항복한 영국군의 왕립 포병대로부터 압류한 것의 모조품이라 한다. 당시 30문 이상의 대포를 압류해서 계속 이어진 독립 전쟁에 대륙군이 대부분 사용을 했고, 지금까지 몇 개 남아있는 실물은 다른 박물관 등에 보존되어 있단다. 좌우로 두 개가 원래 설치되었던 모양인데 오른편의 것은 누가 훔쳐갔는지 사라지고 없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t053y/dJMcahbYfjE/fGvVYKiCclNERDa6IkIJp1/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기념물의 중앙에 부조로 새겨진 그림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할 예정이고, 좌우로 4개의 어록이 동판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게이츠 장군이 다음날 의회에 승전보를 알린 문장을 아래에 보여드린다. 꼼꼼히 1부를 읽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게이츠는 전투 직전에 북부군 사령관으로 부임해 와서, 두 번의 전투 동안에 계속 수비만 주장하며 요새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왔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cYO4zR/dJMcafLZVAT/vHfmjAGFYMyekzd9AgjMO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자신의 상관인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에 대한 보고는 건너뛰고 바로 대륙의회에 전문을 보낼 때부터 꿍꿍이가 있었던 그는,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받기 어려운 훈장인 의회 황금 메달(Congressional Gold Medal)을 받고 전쟁위원회 위원장을 겸임하게 되자, 워싱턴을 끌어내리고 자신이 총사령관을 하겠다는 야망에 부풀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콘웨이 음모(Conway Cabal)가 사전에 발각되자 그는 워싱턴에게 직접 사과해야 했고, 자신이 신생 미국의 지도자가 되려던 꿈도 접어야 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2200" src="https://blog.kakaocdn.net/dn/cxANbI/dJMcafLZVAU/gVxCBmVggooK68RvMkJ1bk/img.jpg" width="6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커다란 의회 황금 메달을 자랑스럽게 걸고 있는 호레이쇼 게이츠의 초상화지만... 여차저차해서 그는 1780년에 다시 남부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지만, 그 해 8월 사우스캐롤라이나 캠던(Camden)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수적우위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용병술로 영국군에게 대패하고 혼자 북쪽으로 300 km를 쉬지 않고 줄행랑을 친다. 친분이 있는 의원들의 로비로 군사재판은 면하고 종전때까지 참모직은 유지했지만, 그는 흔히 미국 역사상 최악의 장군들 중의 하나로 항상 언급된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YC5l6/dJMcafLZVAW/KqKkG1aMpdds75WG87oKr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허드슨 강을 따라 북쪽으로 이어지는 4번 국도 옆의 여기 사라토가 항복지(Saratoga Surrender Site)를 내려다 보는 저 커다란 집의 주인은 누굴까? 외롭게 서있는 차로 돌아가면서 마지막으로 왼쪽의 안내판을 둘러봤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2400" src="https://blog.kakaocdn.net/dn/Wztav/dJMcafLZVAS/h6MALOYfBLuEhRf7tmPJj0/img.jpg" width="6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기념물의 동판은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2904931155" rel="noopener" target="_blank">워싱턴DC의 미의사당 로툰다</a>에 걸려있는 총 8개의 대형 역사화들 중에서, 존 트럼벌((John Trumbull)이 그린 4개 중의 하나인 <Surrender of General Burgoyne> 그림이었다. 사라토가 전투에서 대륙군이 승리한 것을 계기로 영국과 앙숙이던 프랑스가 미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동맹을 맺으며, 스페인과 함께 영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독립전쟁은 유럽 강대국들간의 국제전으로 확대되는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게이츠가 그림의 중앙에 서있고 오른편이 대륙군인데, 그 중에 유일하게 민간인 복장으로 등장하는 23번 인물의 집을 이제 찾아간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so40r/dJMcahbYfjF/73waGZOX3OxprvKk5ldF1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북쪽으로 딱 1 km만 달리면 나오는 필립 스카일러 장군의 집(General Philip Schuyler House)으로 위기주부는 그의 이름을 올해로 10년째를 맞는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1140561274" rel="noopener" target="_blank">뮤지컬 <해밀턴></a>을 예전에 관람하면서 주인공의 장인으로 잠깐 등장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필립 스카일러는 이 지역 출신의 전임 북부군 사령관으로 버고인의 영국군이 여기까지 남하하는 것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대륙군에 민간인 신분으로 계속 남아서 후임자인 게이츠를 도와서 식량 보급과 민병대 충원 등에 큰 도움을 줬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eflm0u/dJMcahbYfjI/axHsQK2sf4q0SK2jKuoUG1/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스카일러의 저택은 남쪽으로 35마일 거리인 뉴욕 주도 올버니(Albany)에 있으나, 안내판의 그림처럼 여기를 중심으로 주변의 넓은 땅을 아우르는 자신의 농장을 방문할 때 노란 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독립전쟁 당시에 이 마을의 이름이 바로 새러토가(Saratoga)였지만, 그 후 1831년에 스카일러빌(Schuylerville)로 마을 이름을 바꿔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UlPnT/dJMcadN7y1j/rqUbCSdtUz8K3lMTMkgXG0/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처음 영국군이 마을을 점령했을 때는 여기 스카일러의 집을 본부로 사용했지만, 두 번의 전투가 끝나고 북쪽으로 위험한 후퇴 또는 깔끔한 항복을 놓고 고민할 때, 버고인 장군은 집과 농장의 다른 모든 건물을 불태우라고 직접 명령을 했다. 그래서 지금 보이는 집은 전투가 끝나고 불과 한 달만에 새로 만들어서 지금까지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라 한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lazKT/dJMcadN7y1d/aNAVkPh8N0lXZF1ibwDu0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평소에는 내부도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다지만, 방문했을 때는 연방정부 셧다운 안내문만 또 읽어야 했다.^^ 버고인과 스카일러의 이야기 및 사라토가 전투의 후일담은 시리즈 다다음편에서 또 잠깐 이어질 예정이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GsEUU/dJMcadN7y1h/19sOepVQ579kkZk41sQnU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사라토가 국립역사공원 둘러보기의 마지막 장소로 영국군이 항복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주둔했던 언덕 위에 세워진 사라토가 기념비(Saratoga Monument)를 찾아왔다. <a href="http://www.google.com/maps/d/viewer?mid=zGN_bB0flpac.kWwQgQpCK83U&msa=0&ll=43.09852,-73.59327" rel="noopener" target="_blank">(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a><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yMqG7/dJMcafLZVAX/8xdRGZ7aBBWST0EInoR4V0/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언덕에는 프로스펙트 힐 공동묘지(Prospect Hill Cemetery)가 1865년에 먼저 만들어지긴 했지만, 독립전쟁이나 남북전쟁 전사자와는 관련이 없는 개인 소유의 일반 묘지라 한다.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옛날 영국군 참호의 흔적 등이 발견되어서, 여기가 마지막 주둔지였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기념비도 이 자리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uAkPi/dJMcafLZVAY/dKodBJ1L3mQ6oOSugX4Sj1/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4069292918" rel="noopener" target="_blank">여행의 첫날에도 묘지에서 예쁜 노란 단풍</a>을 구경했었는데 둘쨋날도...^^ 이 길을 따라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참호 등을 복원해놓은 빅토리 우즈(Victory Woods)가 나온다고 하지만, 이 날도 그렇게 한가한 일정이 아니라 바로 뒤돌아서<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2400" src="https://blog.kakaocdn.net/dn/cshHpU/dJMcadN7y1f/eM5n6anofVibCnYDyWNFL1/img.jpg" width="6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화강암으로 만든 높이 약 47m(155피트)의 오벨리스크로 전투 100주년인 1877년에 초석을 놓고 1883년에 완공된 사라토가 기념비만 한바퀴 빨리 둘러보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동서남북 네 방향 모두 출입문이 만들어져 있고, 그 윗층에는 흔히 조각을 세워놓는 등의 장식을 위해 벽을 파놓는 공간을 뜻하는 '벽감(壁龕, niche)'이 만들어져 있지만, 지금 보이는 남쪽은 그냥 비워져 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gFyVJ/dJMcadN7y1g/5eMiSOP02ovvXhRYxFQcS1/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오전의 햇살을 정면으로 받는 동쪽 면에는 자신의 농장을 내려다 보는 필립 스카일러 장군의 동상이 이렇게 멋있게 세워져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정반대 서쪽 벽감에 세워진 동상은 맹활약한 저격수 부대를 이끌었던 대니얼 모건(Daniel Morgan) 대령으로 앞서 설명한 그림에도 흰 옷을 입고 가장 크게 그려져 있다. 그는 글도 거의 모르는 민간인 마차꾼으로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429752907" rel="noopener" target="_blank">1755년 브래독 원정에 조지 워싱턴과 함께 참여</a>했었고, 이듬해 식민지 영국군 장교를 때린 죄로 499대의 태형을 견뎌낸 것으로 유명하며, 준장으로 독립전쟁을 마친 후에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입지전적 인물이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c51K6/dJMcadN7y1i/sGtCwZwxK7I1utxQ7D3Mk0/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현재 출입구로 사용되는 북쪽 문에는 어김없이 또 안내문이 붙어있는데, 평소에는 188개의 계단을 따라 꼭대기의 전망대까지 자유롭게 올라갈 수 있단다. 여기 위에는 어쨌거나 북쪽에서 내려온 영국군을 막아낸 사령관인 호레이쇼 게이츠 장군의 동상이 만들어져 있는데, 그렇다면 남쪽의 벽감만 비워져 있는 이유는? 새러토가 전투의 가장 큰 영웅이지만 이름이나 형상을 남길 수는 없는 그 놈을 상징적으로 기리는 것이다!<br /><br /><span style="font-family: 'Noto Serif KR';"></span></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ElzWj/dJMcahbYfjJ/YkvseHGy0qqLIPUfzJFGF1/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Noto Serif KR';">"저기 사시는 분은 대문을 나설 때마다 대포가 자기 집을 조준하고 있는 모습을 보시겠군~"</span> 그런 생각을 하며 주차한 곳으로 돌아가서,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4058842408" rel="noopener" target="_blank">북부 뉴욕주 2박3일 여행</a> 둘쨋날의 다음 목적지인 유서 깊은 휴양도시로 짧게 이동했다.<br /><br /><span style="font-family: 'Noto Serif KR'; color: #ee2323;">PS. 미국에서는 특별히 독립 250주년이 되는 해라고, 타임스퀘어의 크리스털 볼도 아래와 같이 '250'이란 </span><span style="font-family: 'Noto Serif KR'; color: #ee2323;">숫자와 성조기 디자인으로 번쩍이며 새해를 맞이할 예정이랍니다.</span><br /><span style="font-family: 'Noto Serif KR'; color: #ee2323;"></span></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800" src="https://blog.kakaocdn.net/dn/HgY0j/dJMcahbYfjz/HDCfXcXY16AaCelXktpIZK/img.jpg" width="6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Noto Serif KR'; color: #ee2323;"><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312457492" rel="noopener" target="_blank">2년전에는 맨하탄에서 새해맞이</a>를 했었지만 이번에는 딸의 아파트가 연말내내 비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 못 가고 조용히 집에서 보낼 듯하여 미리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블로그 방문해주시는 모든 분들 202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span></p> <p> </p> <p> </p> <p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family: 'Noto Serif KR'; color: #006dd7;">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span><span style="font-family: 'Noto Serif KR'; color: #006dd7;"></span></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Center"><a href="https://www.youtube.com/channel/UComDLlRMGWjRGdpzety0x7Q" target="_blank"><img height="75" src="https://blog.kakaocdn.net/dn/BCK35/btsPHGY1sYv/aiBTuQVs5WRzTho5eL1LAK/img.gif" width="500" /></a></figure> </p>
<p>요즘 한국에서 아들의 이름을 '완용'으로 짓는 분이 계실까 모르겠다. 특히 성이 이(李)씨라면 정말로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와 같이 미국에도 나라의 배신자이자 반역자의 상징(icon)인 인물이 있는데, 미국 독립전쟁 전반기의 가장 중요한 승리로 평가받는 1777년 새러토가 전투의 부사령관이었던 베네딕트 아놀드(Benedict Arnold) 장군이다.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4086579473" rel="noopener" target="_blank">위기주부의 2박3일 북부 뉴욕주 여행기 시리즈 전편</a>에 언급했던 심리전술로 스탠윅스 요새의 포위를 무너뜨린 구원군 지휘관이 바로 그였는데, 이번 여행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돌로 조각된 그의 신발을 직접 보기 위함이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cHceJO/dJMcabW0veY/sZu3ufPKP0fQmIDvzgYYS0/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둘쨋날도 해 뜨기 전에 차에 시동을 걸고, 단 10분 거리의 첫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705658449" rel="noopener" target="_blank">작년의 1박2일 오하이오주 솔로 여행</a>에서는 그냥 저렴한 모텔을 이용해서 불편함이 좀 있었지만, 이번에는 사모님의 윤허를 받아 기한이 얼마 남지않은 하얏트 숙박권을 혼자 쓰는 사치를 부려서, 아주 넓고 편안한 밤을 보내고 또 따뜻한 아침도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kI3bg/dJMcahv9JjW/EIrqwQ3X61UXYyVnWW9a2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진입로에 잠시 차를 세우고 1938년에 설립된 <a href="https://www.nps.gov/sara" rel="noopener" target="_blank"><b>사라토가 국립역사공원(Saratoga National Historical Park)</b></a> 간판을 찍었는데, 제일 왼편의 돌 하나가 색깔이 다른게 계속 신경이 쓰이는 것이... 본인도 약간의 OCD(Obsessive-Compulsive Disorder, 강박장애)가 있는 모양이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Nao4r/dJMcaiIyCPV/Np8IQMf7NpkGZRl6yOQGp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살짝 절정을 지난 가을 단풍의 주차장에는 의외로 먼저 온 차가 두세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블로워로 낙엽을 치우고 있던 계약직원(?)이 타고 온 것이었다. 안내판 옆에 공원 브로셔도 남아 있어서 기분좋게 하나를 챙기고는, 가운데 보이는 계단을 이용해서 비지터센터 쪽으로 일단 올라갔다. <a href="http://www.google.com/maps/d/viewer?mid=zGN_bB0flpac.kWwQgQpCK83U&msa=0&ll=43.01212,-73.6488" rel="noopener" target="_blank">(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a><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acA0H/dJMcahv9JjV/QDh5km86oV3FgUMPws0Bk1/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거기서는 막 떠오른 햇님과 '태양을 향해 쏴라'를 시전하는 대포를 피사체로 작품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잠시 헷갈렸는데 유명한 추억의 서부영화 제목은 <내일을 향해 쏴라>구나...ㅎㅎ<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Ag1yy/dJMcahv9JjY/UcARdGd6j5e5GgXBgvMki1/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아침 햇살을 정면으로 받는 사라토가 국립역사공원 비지터센터의 모습이고, 이 곳의 방문기는 두 편으로 작성될 예정으로 순서가 좀 바뀐 감은 있지만, 전투의 전체적인 상황과 그 결과의 중요성 등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2부에 설명할 예정이고, 본편에서는 한 개인의 이야기에 집중한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ceIkCG/dJMcahv9JjU/g5FQLCVPn0VitXSzlrPk80/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파란 하늘이 비친 비지터센터 유리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보니, 안내판에 그림자가 비춰서 잠깐 비싼 인형들이라 생각했지만 그냥 판대기 사진을 세워둔 것이었다. 제일 오른편에 얼굴을 검게 칠한 인디언 전사가 보이는데, 당시 대표적인 6개의 인디언 부족국들 다수는 영국편을 들었고 일부는 식민지 반란군에 합류했으며, 또 같은 부족내에서도 의견이 갈려서 내분이 일어난 경우도 있었단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799" src="https://blog.kakaocdn.net/dn/bgnfU9/dJMcaiIyCPN/KEgaEVksOXvMBk5vNzzCg1/img.jpg" width="72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공원의 지도로 일방통행 순환도로를 따라서 운전하며, 9월과 10월의 두 번의 전투 경과를 번호 순서대로 놓여진 안내판 등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고 많은 기념물들도 함께 구경할 수 있다. 지도에 씌여진 이름들 중에서 유일하게 이미 블로그에 등장했던 인물이 한 명 있는데 ②번 부근의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727524756" rel="noopener" target="_blank">코시치우슈코(Kosciuszko)로 여기를 클릭해 필라델피아에 있는 그의 국립기념관 방문기</a>를 보실 수 있다. 비지터센터는 폐쇄되었지만 도로를 따라 둘러볼 계획을 가지고 주차장으로 돌아가 진입구로 씩씩하게 차를 몰고 갔는데...<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dvQ1N3/dJMcahv9JjZ/MYmKExHTQtxyRg2Beppfd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게이트가 아직 닫혀 있었다! 연방정부 셧다운 안내문이 붙어있지 않은 것으로 봐서, 야외전시를 볼 수 있는 공원 도로는 개방을 하는 것으로 알고 왔는데, 열어줄 사람이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고 해서 잠깐 고민을 하다가, 브로셔 지도를 보니까 이 공원에서 꼭 직접 보고싶은 '신발 기념물'까지는 걸어갈 수 있는 산책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해서 다시 주차를 하고 비지터센터 계단을 또 올라갔다. 헉헉~<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dBzefm/dJMcahv9Jj5/GYeDsrU32CDRH0nTjgJgI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그 길의 이름은 윌킨슨 트레일로 특이하게도 1777년 존 버고인(John Burgoyne) 소장이 이끄는 영국 침공군의 지도제작자였던 윌리엄 윌킨슨(William Wilkinson) 중위를 기리는 것이란다. 그가 만들었던 이 지역의 상세한 지도를 바탕으로 당시 전투가 벌어진 정확한 위치 등의 확인이 가능했기에 특별히 '적군'의 이름이 국립역사공원에 남아있는 것이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z9MMN/dJMcahv9JjX/zvq2t1s4UvXAnnsYKkwOc1/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가을 아침이슬에 신발을 적시며 신발 기념물을 찾아간다~ 첫번째 전투는 9월 19일에 영국군이 3개 방면으로 나눠서 ③번 베미스 고지(Bemus Heights)에 주둔한 대륙군을 포위하기 위해 진군하며 시작되었다. 직전에 새로 부임한 북부 대륙군 사령관 호레이쇼 게이츠(Horatio Gates) 소장은 요새에서 버티기로 결정하지만, 부사령관 아놀드 준장이 포위되기 전에 나가서 싸워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서 마지못해 허락한다. 저격수 부대와 함께 직접 나가서 싸운 아놀드의 활약으로 포위 작전은 실패하고, 비록 영국군이 ⑥번 프리먼 농장(Freeman's Farm)을 점령했지만 사상자 수는 영국이 590명, 미국이 320명으로 영국측의 피해가 더 컸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3gciu/dJMcabW0ve2/FKhjLagxSxiC7B67hXLak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10여분을 걸으니 대포들과 함께 안내판이 하나 나왔는데, 영국측에서 싸웠던 독일 용병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흥미있는 사실은 우측의 그림으로 약 100명 이상의 독일인 아내와 자녀들이 같이 대서양을 건너와서 저런 모습으로 전쟁터를 따라 다녔다 한다. 1차 전투 후에 게이츠가 보고서를 의회에 보내면서 나가서 싸운 자신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아놀드가 항의하면서 둘 사이의 불화가 폭발했고, 결국 게이츠는 아놀드의 부사령관 지휘권을 박탈하고 막사에 감금을 시키게 된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AmCwE/dJMcahv9Jj4/7F0mW2aDWVxp36huaBMpD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거기서 조금 더 걸어 두 개의 안내판과 하나의 작은 책상(?) 그리고 펜스로 보호된 석조 기념물을 찾았다. 민병대의 합류로 대륙군의 수는 계속 늘어났지만 영국군은 식량부족에 시달리게 되고, 후퇴와 진군을 놓고 고민하던 버고인이 다시 공격을 명령하면서 10월 7일에 2차 전투가 벌어진다. 아놀드는 총소리를 듣고 막사에서 나와 직접 선두에서 병사들을 지휘했지만, 게이츠는 전투 내내 안전한 숙소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단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TF2Hq/dJMcaaqgtI2/k80WapSsFyVD4uurFGQYa1/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이번에도 사기가 오른 대륙군이 영국의 공격을 막아내었고, 퇴각하는 영국군을 선봉에서 추격하던 아놀드는 이 자리 근처에서 왼쪽 발에 총을 맞았는데 말이 쓰러지면서 깔리는 바람에 다리가 완전히 부서졌단다! 그 상태에서도 아놀드가 부하들을 지휘하는 모습으로 공원 브로셔의 표지로 사용된 그림이다. 그는 새러토가 전투에서의 무공으로 얼마 후에 소장으로 진급은 되지만, 부러진 다리가 잘못 붙어서 왼발이 5 cm나 짧아져 지팡이에 의지해야만 겨우 걸을 수 있었고, 그래서 다시 야전 사령관으로 복귀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d4F5E4/dJMcaaqgtI0/zkdWv1coX3WJV9vsSvILK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이듬해 1778년에 필라델피아 군정장관에 취임하지만 부정부패 혐의로 군법재판에 수 차례 회부되자 그는 영국군과 내통을 시작하고, 1780년에 웨스트포인트 사령관이 된 후에 요새를 영국군에 넘기려다가 발각되어서 당시 영국이 점령하고 있던 뉴욕으로 도망쳐 영국군에 합류한다. 이러한 아놀드의 배신을 부추긴 것이 오른편에 그려진 1779년 4월에 재혼한 두번째 아내로, 식민지 독립에 반대하고 영국에 충성하는 왕당파였던 필라델피아 대법원장의 딸인데, 결혼 당시에 아놀드는 38세였고 아내는 20살이나 어린 18세였단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tazyo/dJMcabW0ve4/kAjftlibhTtk7yIRFlsLY1/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웬 책상을 가져다 놓았는지 의아했는데, 시각장애인이 어떤 형상의 조각인지 만져서 확인할 수 있도록 축소 모형을 올려다 놓은 것으로, 실제 크기도 가늠할 수 있도록 별도로 축척도 길이와 함께 점자로 표기해놓은 것을 볼 수 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cRm5it/dJMcaiIyCPX/PPbRLZePMDC5LD1WKeoNt0/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2부에서 보여드릴 예정인 새러토가 전투 기념비를 19세기말에 건립하면서, 승전의 주인공인 베네딕트 아놀드가 부상당한 장소에 간단한 표식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모든 위원들이 찬성을 했단다. 하지만 일부는 그 이상의 경의를 표하고 싶었고, 그렇다고 독립전쟁 중에 반역한 군인의 동상을 세울 수는 없는 일이니... 이 전투에서 희생된 그의 왼쪽 발만 기념하기로 결정해서, 대리석으로 기병용 승마 부츠를 조각한 부트 모뉴먼트(Boot Monument)가 1887년에 만들어진 것이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2400" src="https://blog.kakaocdn.net/dn/cBReuK/dJMcahv9Jj0/gQ4MKpggWgKlrwOKH88Hkk/img.jpg" width="6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높이 1.2 m의 석판에 월계관이 씌워진 원통형의 포신이 부조로 새겨져 있고, 거기에 소장(Major General)을 상징하는 두 개의 별이 달린 견장으로 장식된 부츠가 매달려 있다. 자세히 보면 대포가 땅을 향해 거꾸로 조각된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불명예의 표시라 한다. 또 구두의 앞부분만 돌이 다른 이유는 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기 전에 누가 망치로 훼손을 했던 것을 복원했기 때문이라고...<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dKy4SR/dJMcabW0ve6/0kFFq2fkXFmNJECy3T0sI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뒷면을 보면 설립을 주도한 사람의 이름이 위쪽에 있고, 아래쪽에 비문이 있는데 그를 '대륙군의 가장 뛰어난 군인(the most brilliant soldier of the Continental Army)'으로 칭할 뿐 이름은 적혀있지 않다. 그래서 이 신발 기념비는 미국에서 베네딕트 아놀드에게 바쳐진 유일한 기념물인 동시에 국립 공원에서 헌정된 인물의 이름이 적혀있지 않은 단 하나의 기념물이라 한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CTTa0/dJMcahv9Jj2/QHpPvVmBKW4ArUmAhn4Sf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그는 독립전쟁이 끝날 때까지 영국군 준장으로 미국에서 활동했지만 별 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고, 망명한 아내와 함께 전후 1782년에 영국으로 가서 잠시 사교계에 나가기도 했지만, 거기서도 배신자 소리를 들으며 비난과 놀림의 대상이 되다가 1801년에 사망하고 런던 근처의 교회에 묻혔다. 일설에 의하면 아놀드가 여기 전투중에 말에서 떨어진 것을 본 부관이 달려와 다친 곳이 있냐고 물었을 때, 씁쓸하게 웃으며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p> <p> </p> <p style="text-align: center;"><i><b><span style="font-family: 'Noto Serif KR';">" 다리에 맞았다. 차라리 심장에 맞았다면 더 좋았을 것을..."</span></b></i></p> <p style="text-align: left;">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PCDwZ/dJMcahv9Jj3/VbU28yCNdHKBMIsDE03kN0/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가운데 멀리 보이는 비지터센터로 돌아가는 길은 왼편이라고 알려주는 그림자 독사진 마지막으로 보여드리며 1부를 마친다. 21세기 미국에서도 여전히 'Benedict Arnold'란 이름은 (한국의 이완용처럼 나라를 팔아먹은) 반역자의 동의어로 쓰이지만, 최근의 역사학계는 그의 배신이 탐욕이나 사익을 추구했다기 보다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개인적 좌절감 등의 요인이 컸다고 보며, 그래서 그를 복잡한 동기를 가진 영웅이자 비극적인 인물로 재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단다.</p> <p> </p> <p> </p> <p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family: 'Noto Serif KR'; color: #006dd7;">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span><span style="font-family: 'Noto Serif KR'; color: #006dd7;"></span></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Center"><a href="https://www.youtube.com/channel/UComDLlRMGWjRGdpzety0x7Q" target="_blank"><img height="75" src="https://blog.kakaocdn.net/dn/BCK35/btsPHGY1sYv/aiBTuQVs5WRzTho5eL1LAK/img.gif" width="500" /></a></figure> </p>
<p>가로가 긴 직사각형 모양의 펜실베니아 주 동쪽을 비스듬히 종단하는 81번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북쪽으로 주경계를 넘으면, 뉴욕(New York) 주의 핑거레잌스(Finger Lakes) 지역이 나온다. 뉴욕 주의 비공식적인 11개 지역 구분은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011934480" rel="noopener" target="_blank">여기를 클릭해서 마지막의 지도</a>를 보시면 되고, 그 중 손가락처럼 길쭉한 모양의 호수들이 많이 있어서 핑거레이크라 이름 붙은 지역에 대한 설명은, 작년 가을에 아내와 함께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615845580" rel="noopener" target="_blank">'뉴욕주 최고의 절경'을 찾아갔던 여행기의 첫번째 세부지도</a>를 클릭해서 보시면 된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bhG40/dJMcag4TQ4Z/1CLojW7o162dZAK83uZQc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올해의 유일한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738986356" rel="noopener" target="_blank">'듣보잡 취미생활'</a>로 10월말에 위기주부 혼자 다녀왔던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4058842408" rel="noopener" target="_blank">북부 뉴욕주 2박3일 여행</a>에서 두번째 목적지를 찾아가는 길에, 그 핑거레이크들 중의 하나인 스캐니에틀레스 호수(Skaneateles Lake)의 선착장에 잠시 차를 세웠다. 여기서 건너편까지 동서 방향의 폭은 1.5마일인 반면에 남북으로의 길이는 16마일이나 되니까 기다란 호수가 맞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epZqZ/dJMcaaDB3G7/QWM0UXYeDAW48Ji6abKMm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내륙의 고지대라서 그런지 여기 호숫가는 벌써 가을 단풍이 끝물인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잠시 여행자의 시선을 끌기엔 충분했다. 그러나 한가롭게 단풍구경을 할 여유가 없는 빡빡한 일정이라서 바로 다시 차에 올라서 옆의 다른 호수 북쪽 끝에 있는 마을을 찾아갔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S6RdY/dJMcaaDB3G8/m09bVkSGPKFh8XaP7XnIs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시골길을 달리다 오번(Auburn)이란 도시 경계를 지나자마자 카운티에서 세워놓은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 이름의 안내판이 나온다. '그녀 민족의 모세(Moses of Her People)'와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 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686432595" rel="noopener" target="_blank">메릴랜드 주에 있는 그녀의 출생지와 활동을 기리는 다른 국립 공원을 작년말에 방문했던 아래의 여행기를 먼저 보시면 된다.</a><br /><br /><span style="font-family: 'Noto Serif KR';"></span></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686432595" target="_blank"><img height="574" src="https://blog.kakaocdn.net/dn/bVu0NO/dJMcag4TQ4Y/KgajZIiuxdO7etvLm5e1w1/img.png" width="480" /></a></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span style="font-family: 'Noto Serif KR';">"정말로 그녀의 얼굴이 들어간 미국 20달러 지폐가 만들어져 통용되는 날이 올까?"</span><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H27HJ/dJMcag4TQ41/hABsVhqdCEoiKO5Qk8Tyb0/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a href="https://www.nps.gov/hart" rel="noopener" target="_blank"><b>해리엇터브먼 국립역사공원(Harriet Tubman National Historical Park)</b></a>을 검색하면 나오는 위치가 이 곳인데, 저 안쪽 주차장에 의외로 차들이 제법 많아서 놀랐던게 가장 먼저 기억이 난다. 그녀는 캐나다에서 약 10년간 도피생활을 한 후인 1859년에 미국으로 돌아와 이 동네에 정착하게 되는데, 먼저 왼편으로 보이는 하얀색 목조 건물부터 설명을 드린다. <a href="http://www.google.com/maps/d/viewer?mid=zGN_bB0flpac.kWwQgQpCK83U&msa=0&ll=42.91147,-76.56373" rel="noopener" target="_blank">(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a><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2400" src="https://blog.kakaocdn.net/dn/xroyR/dJMcadAk0Dh/NCkWjYOyJujjTukcIgrk1k/img.jpg" width="6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그녀가 다른 가난하고 나이 든 흑인과 원주민들을 위해 1896년에 땅을 사서 지었던 양로원(Home for the Aged) 건물을 1953년에 복원한 것이다. 하지만 1975년에 국가유적(National Historic Landmark)으로 지정되었다는 명패만 있을 뿐 국립공원청 로고 등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caRGRM/dJMcag4TQ44/tMeuWrjlxe5KYyZxp6A9c0/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관련 장소들을 묶어서 2017년 1월에 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된 이후에도, 양로원과 인접한 생가는 그녀로부터 기증받았던 교회에서 별도로 만든 재단에서 계속 소유 및 관리를 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연방정부 셧다운 중임에도 위기주부가 도착하기 직전에 투어가 있어서 그렇게 차들이 많았던 것이고, 투어 요금은 일인당 7달러라고 안내판에 씌여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fb1fo/dJMcaaDB3G9/sway5qxIGaRKNNcYRZZtq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바로 남쪽에 두 여성분이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있는 벽돌집이 그녀가 1913년에 약 90세로 사망할 때까지 살았던 집으로, 시경계를 벗어나서 정확한 행정구역 상으로는 플레밍(Fleming) 마을에 속한다. 처음 부모님을 모시고 이사를 올 때는 목조주택이었지만 1880년에 화재로 전소된 후에 벽돌로 새로 지어서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란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vaOjt/dJMcadAk0DB/u24ftrHLC8fvgRjyTsgsG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해리엇 터브먼이 여기 정착할 수 있도록 집을 마련해준 사람은 이 지역 유지의 딸로 노예제 폐지론자인 Frances Adeline Seward인데, 바로 뉴욕 주지사와 상원의원을 거쳐 링컨의 국무장관으로 지명되고 나중에 알래스카를 매입한 것으로 유명한 윌리엄 H. 슈워드(William Henry Seward)의 아내이다.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200104487" rel="noopener" target="_blank">참고로 재작년에 맨하탄의 매디슨스퀘어 공원에 있는 슈워드 국무장관의 동상을 보여드린 적이 있다.</a><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CslXW/dJMcaaDB3Ha/lvSGIYu92CWge8nhAXpEp1/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다음으로 국립역사공원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곳을 보기 위해서 오번 시의 중심에 있는 포트힐 묘지(Fort Hill Cemetery)를 찾아왔다. 인적없는 넓은 공동묘지라서 그냥 2박3일 동안 2,000 km 가까이 잘 달려준 자동차 독사진 하나 찍어줬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qCiRV/dJMcadAk0DW/uKNobpZDiRtcSJRmhuKd5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유명인답게 커다란 나무 아래에 성조기와 함께 넓게 자리를 잡고 있어서, 그녀가 잠든 곳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묘비에 이름이 Harriet Tubman Davis라고 적혀있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이 탈출시킨 22세 연하의 넬슨 데이비스(Nelson Davis)란 남성과 1869년에 결혼했기 때문이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2400" src="https://blog.kakaocdn.net/dn/I15lg/dJMcadAk0DO/WIKgx7YQuuRFPVZvhimlfk/img.jpg" width="6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묘비의 뒷면에는 그녀의 업적 및 생애와 함께 <b><span style="font-family: 'Noto Serif KR';">"잘 했어, 하나님의 종"</span></b>이란 글귀가 씌여있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cTM5wR/dJMcadAk0Dj/p8bs8ZNNx1aGxPiVXZ8e1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묘비 위에 놓여있던 작은 돌들까지 잠깐 구경하고는 다음 목적지를 찾아 다시 차로 이동하는데,<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dm7Fgk/dJMcadAk0D0/vOQixlnIMu6FIhYKGK5aL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수 많은 묘비들 위로 노란 단풍이 아주 멋있어서, 잠시 창문을 내리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장소는 묘지 바로 옆의 주택가에 있는 그녀가 생전에 열심히 출석하고, 자신이 만든 양로원과 사후에 집 등을 모두 기증한 교회이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2400" src="https://blog.kakaocdn.net/dn/bJssC5/dJMcadAk0Dk/0mNsVjZEdNOGtjwEYq8lV0/img.jpg" width="6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1891년에 지어진 톰슨 AME 시온교회(Thompson African Methodist Episcopal Zion Church)로 앞서 보여드린 양로원과 생가와는 달리, 이 건물은 연방정부가 매입해서 내외부를 완전히 수리한 후에 주중에는 국립공원청 비지터센터로 사용되고, 주일에는 신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zuiTN/dJMcag4TQ40/ShjdeaPYBp3dfLqoAuCtP0/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공원 홈페이지의 대표사진이 이렇게 교회를 올려다 본 모습이라서 같은 구도로 한 번 찍어봤는데... 정말 이상한 점은 여기도 국립 역사공원임을 알리는 간판 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공원이 트럼프가 처음 4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열흘전에 오바마 행정부와 의회에서 부랴부랴 설립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 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2400" src="https://blog.kakaocdn.net/dn/cgIgLC/dJMcaaDB3G6/Jzukrfq3SRjBc5anVRggTK/img.jpg" width="6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그래도 명색이 내셔널파크와 버금가는 권위의 국립역사공원 방문기니까 NPS 로고라도 하나 등장해야 할 듯 해서, 비지터센터 겸 교회 정문에 붙어있던 안내문 사진을 마지막으로 보여드리며 마친다~ 그나저나 사상최장 기록을 계속 갈아치우고 있는 이번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은 언제까지 계속되려나? 우리집에도 급여를 바로 못받고 있지만 필수인력으로 오늘도 새벽 출근한 공무원이 한 분 계시는데 말이다. ㅎㅎ</p> <p> </p> <p> </p> <p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family: 'Noto Serif KR'; color: #006dd7;">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span><span style="font-family: 'Noto Serif KR'; color: #006dd7;"></span></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Center"><a href="https://www.youtube.com/channel/UComDLlRMGWjRGdpzety0x7Q" target="_blank"><img height="75" src="https://blog.kakaocdn.net/dn/BCK35/btsPHGY1sYv/aiBTuQVs5WRzTho5eL1LAK/img.gif" width="500" /></a></figure> </p>
<p>이 곳을 다녀와서 첫번째로 들었던 의문은 이러한 행사가 왜 당시 대도시였던 뉴욕이나 보스턴에서 열린게 아니라, 뉴욕주 북부의 작은 도시에서 열렸냐 하는 점이었다. 그 해답의 배경은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로체스터(Rochester)를 중심으로 한 온타리오 호수 남쪽의 산업지대가 다양한 개혁운동과 노예제 반대운동의 중심지로, 당시 주민들의 의식이 가장 진보적이었던 지역이라는데 있다. 그래서 위기주부의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4058842408" rel="noopener" target="_blank">업스테이트 뉴욕 2박3일 여행</a>의 세번째 목적지가, 로체스터에서 동쪽으로 50마일 정도 떨어진 세네카 폴스(Seneca Falls)였던 것이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VxSke/dJMcagKEcSs/Ux3fBakWS0WJKcyEsZJHM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4069292918" rel="noopener" target="_blank">해리엇터브먼 NHP 구경</a>을 마치고 국도 20번을 타고 20분 정도 서쪽으로 달려서, 핑거레이크들 중에서 가장 길고 면적도 사실상 공동 1위인 카유가 호수(Cayuga Lake) 북쪽의 세네카폴스 중심가로 왔다. 뉴욕주 교육부에서 세워 놓은 안내판이 보이는데, 여성의 권리를 주제로 공개토의가 진행된 현대적인 컨벤션 대회로는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최초라 보는 것이 타당하단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xpR6a/dJMcacO0XDK/AbNR0PcuHgrniFrhhYLdr0/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1848년 7월 19일부터 이틀간, 여기 웨슬리언 예배당(Wesleyan Chapel)에서 도합 300명 정도의 남녀 참석자들이 모여서 회의를 한 후에, 미국 독립선언문을 차용한 "모든 남자와 여자는 동등하게 창조되었다(All men and women are created equal)"라는 주장을 포함한 <Declaration of Sentiments>를 채택하게 된다. 참고로 아주 낡아보이는 벽 일부만 당시 예배당의 잔재이고, 깨끗한 건물 대부분은 2011년에 완전히 복원된 것이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bpvGb/dJMcagKEcSt/DBVGkKHuUpMQpbR3uaK5c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a href="https://www.nps.gov/wori" rel="noopener" target="_blank"><b>여성인권 국립역사공원(Women's Rights National Historical Park)</b></a>을 여기에 만드는 법안은 1980년에 일찌감치 통과되었지만, 벽화가 그려진 비지터센터는 1993년에야 문을 열었고 대부분의 복원사업은 2000년대 들어서 진행되기 시작했단다. 특히 1998년에 세네카폴스 선언 150주년 행사가 여기서 열릴 때, 당시 영부인이던 힐러리 클린턴이 참석해서 연설을 한게 공원을 알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2400" src="https://blog.kakaocdn.net/dn/bLXaY7/dJMcacO0XDL/29x1sK2H9OVpgi671iNndK/img.jpg" width="6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이 때 출입문 왼쪽에 붙어있는 종이가 뭔지는 시리즈 전편들을 보신 분이라면 이제 말 안해도 잘 아실테고, 다행히 닫힌 문 좌우로 큰 유리창이 있어서 살짝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a href="http://www.google.com/maps/d/viewer?mid=zGN_bB0flpac.kWwQgQpCK83U&msa=0&ll=42.91075,-76.79996" rel="noopener" target="_blank">(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a><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pNGoD/dJMcagKEcSr/FaYhScutASDFRwtfsUmw8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비지터센터 내부에서 유일하게 볼만한 전시가 컨벤션 참가자 20명을 실물 크기로 만든 <The First Wave>라는 청동 조각품이라는데, 안에 못들어가는 대신에 이렇게 유리창을 통해서 가장 핵심적인 6인의 '색칠놀이' 벽화를 보는 것으로 퉁을 쳤다.^^ 그림 제일 오른편에 그려진 남성은 그 전해에 로체스터로 이주해서 노예제 폐지 활동을 하던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로, 자신이 발행하는 신문에 컨벤션이 개최됨을 알리고 유일한 흑인으로 참가해서, 대회 이틀째 가장 논란이 된 여성의 참정권을 결의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연설을 해서 이를 관철시켰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2400" src="https://blog.kakaocdn.net/dn/qEc5C/dJMcacO0XDG/iOpIkWsGFLhpL6WaSF9Utk/img.jpg" width="6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노예해방론자로 '19세기에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힌 사람'이란 타이틀도 가지고 있는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298819630" rel="noopener" target="_blank">프레더릭 더글러스에 대해서는 워싱턴DC에 있는 그를 기리는 국립사적지 방문기를 클릭해서 보시면 된다.</a> 아래쪽의 책은 컨벤션을 제안하고 주도한 엘리자베스 스탠턴(Elizabeth Cady Stanton)이 말년에 여성의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한 책으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동시에 19세기말에 여성운동의 분열을 야기하기도 했단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UDsS7/dJMcacO0XDF/ISm0HUIiUe6kzjObM0cKP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맞은편 안내판에 색칠놀이에 등장했던 여성 5인의 사진이 있는데 가운데가 스탠턴이고, 제일 오른쪽이 필라델피아에서 방문한 루크레시아 모트(Lucretia Mott)이다. 두 여성은 1840년에 런던에서 열린 제1차 세계 노예제 폐지대회에 남편들과 함께 참여하면서 처음 만났는데, 여자는 방청만 허용되고 토론과 투표는 허용되지 않자,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함께 여성 평등권 운동을 하기로 의기투합한다. 그 후 스탠턴이 보스턴에서 여기로 이사했고, 모트가 남편과 함께 인근 오번(Auburn)에 있는 여동생 집을 방문해있는 동안에 세네카폴스에서 급히 컨벤션을 열기로 한 것이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diyhJH/dJMcafEYmOn/mjpnRYZqXfGaEvBLtpo7f1/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운하 건너편에 있다고 공원 지도에 표시되어 있던 스탠턴의 집을 찾아가기 위해 차로 다리를 건너는데, 딱 봐도 여성인권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커다란 벽화가 정면에 있어서 빨간불에 사진을 찍었다. 1848년의 여성이 현대의 여성에게 불꽃을 전달하는 모습의 <The Flame Keepers>란 제목의 그림으로, 보도 위에 여성 벽화가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작게 보이는데, 정확히 불과 한 달전에 새로 완성되서 반짝반짝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AmSQA/dJMcafEYmOo/dhPXyGY8hSxspC6zZN1mm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운하를 따라서 추가로 관련된 동상들이 있다고 해서 잠시 차를 세우고 도로를 건넜다. 앞서 언급한 150주년을 기념해서 뉴욕 주에서 설치한 이 동상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운동가로 여겨지는 수잔 앤서니(Susan B. Anthony)가 1851년에 여기서 가운데 여성의 소개로 스탠턴을 처음 만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vfOju/dJMcafEYmOk/SlRK14VzHuipXJqT5iOPZ0/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좌우의 둘은 이후 50년 이상 여성운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동지로 함께 활동하며, 1869년에 여성 투표권 획득을 목표로 하는 전국여성참정권협회(National Woman Suffrage Association, NWSA)를 공동 설립한다. 그런데 자꾸 동상들 사이로 보이는 호숫가의 으리으리한 성같은 저택에만 눈길이...<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cDTtRX/dJMcacO0XDI/XCsh0Qt6x5KA0OmwLxE9N1/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가격이 얼마나 할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개인 집이 아니라 교회 건물이어서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 운하가 지나가는 앞쪽의 호수 이름도, 얼마 전에 한국 뉴스에 자주 나왔던 명품 목걸이의 브랜드와 같은 반클리프(Van Cleef)로 지도에 표시되어 있던게 뇌리에 남았다.^^ 주차한 곳으로 돌아가니 앞서 여성 3명의 동상에 비해서 아주 초라해 보이게 남성 3명을 묘사한, 미국 독립 후부터 1920년에 여성 참정권 수정헌법이 통과될 때까지의 연대기가 둘러져 있는 <Passage> 조형물도 있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cUX4T1/dJMcacO0XDH/Vv15qYmxpXkxdU8pWkcIx0/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폭탄머리와 턱수염의 오른쪽은 프레더릭 더글러스이고, 가운데는 루크레시아의 남편이자 1848년 컨벤션의 둘쨋날 의장을 맡았던 제임스 모트(James Mott)로, 1864년에 최초의 남녀공학 대학들 중의 하나로 개교해서 지금도 리버럴아츠 칼리지 4대 명문을 일컫는 W.A.S.P. 중의 하나인 스와스모어 대학(Swarthmore College)을 다른 퀘이커 교도들과 함께 설립했다. 그리고 왼쪽은 20세기초에 여성 참정권 운동을 강력히 지지했던 급진주의 정치 운동가인 맥스 이스트먼(Max Eastman)이란 인물이란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vLoIg/dJMcagKEcSw/rtl2vFZRfZwK8mkqJZulC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커다란 국립공원청 로고를 말뚝에 박아놓은게 눈에 띄던 엘리자베스 스탠턴의 집 앞에 차를 세웠다. 그녀는 7명의 자녀를 키웠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이 집에서 보내며 주로 사상가, 작가, 전략가의 역할을 맡았고, 반면에 독신이었던 앤서니는 조직가, 운동가, 연설가로 전국을 누비며 그녀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상호 보완적인 역할분담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단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tWdYS/dJMcagKEcSu/0IJAkWxun7dEu4UG3THdj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왼쪽의 스탠턴은 1902년에, 오른쪽의 앤서니는 1906년에 둘 다 86세로 사망했지만, 여성의 참정권을 명시한 미국 수정헌법 제19조가 1920년에 통과되면서 그녀들의 반세기에 걸친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되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워싱턴DC의 캐피톨힐에 있는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386157544" rel="noopener" target="_blank">벨몬트·폴 여성평등(Belmont-Paul Women's Equality) 준국립공원 방문기를 클릭해서 보시면 된다.</a> 이렇게 또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는 미국역사 공부를 실컷 하게 만들고는 다음 목적지로 출발하기 전에 세네카폴스에서 유달리 기름값이 쌌던 주유소를 찾아갔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qlxpe/dJMcacO0XDJ/ogaC0B1EWqdqT1dyfQ087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원주민이 운영하는 곳으로 건물 안에는 작은 카지노도 있었고, 광고판의 'Seneca Select'는 미동부 원주민들이 소유한 담배 브랜드로 공장이 근처에 있단다. 텅텅빈 기름통을 가득 채우고, 국립 공원 비지터센터들이 문을 닫아서 여기 화장실도 이용한 후에, 벌써 6년이나 지난 추억인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1646025372" rel="noopener" target="_blank">딸을 대학교에 입학시키고 보스턴에서 나이아가라 폭포</a>로 향할 때 달렸던 90번 고속도로를, 이번에는 반대방향인 동쪽으로 소나기를 맞으며 달려서 찾아간 나혼자 2박3일 듣보잡 여행의 다음 목적지는 로마(Rome)에 있는 미국 독립전쟁 유적지였다.</p> <p> </p> <p> </p> <p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family: 'Noto Serif KR'; color: #006dd7;">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span><span style="font-family: 'Noto Serif KR'; color: #006dd7;"></span></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Center"><a href="https://www.youtube.com/channel/UComDLlRMGWjRGdpzety0x7Q" target="_blank"><img height="75" src="https://blog.kakaocdn.net/dn/BCK35/btsPHGY1sYv/aiBTuQVs5WRzTho5eL1LAK/img.gif" width="500" /></a></figure>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