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샤는 전통음악 연주, 무용 공연, 시 짓기 같은 예능에 종사하는 일본의 전통 기생이다. 게이샤라는 말은 일본의 고유어가 아닌 한자 성어로서, 재주 예 ( 芸 /게이 ) 자에 놈 자 ( 者/샤 ) 자가 합쳐져 예술에 능통한 사람을 뜻하며, 한국 독음으로 읽으면 '예자'다. 주로 간토 지방, 특히 도쿄에서 쓰는 표현이다. 더불어 게이기 ( 예기, 니이가타/삿포로 등지에서 쓴다. 芸妓 ) , 게이코 ( 예자, 간사이, 특히 교토에서 쓰는 표현이다. 芸子 ) 라고도 한다.
원래 게이샤는 남성 예능인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메이지 시대 이후로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사용되기 시작했다. 전통 문화가 지금도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교토에서는 게이샤라고 하지 않고 게이코라고 부른다. 게이샤는 예능인을 통틀어 말하거나 그중에서 남자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는 일은 주로 오자시키 ( 연회, 술자리 ) 자리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시 지으며 손님들을 상대하는 것이다. 게이샤가 성매매를 시작한 것은 에도 시대 중기부터의 일로 그 이전에는 성매매는 하지 않았다. 에도 시대에도 성매매를 하는 유녀 ( 매춘부 ) 와 그렇지 않은 게이샤는 분리되어 있었고, 그래서 단순히 춤과 노래가 가능한 매춘부로 여겨지지 않고 일종의 직업 여성으로 여겨져, 메이지 시대 이후에는 게이샤가 가수 같은 일반 예술인으로 데뷔하는 것도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과거나 지금이나 게이샤들은 주로 하나마치 ( 花街, 꽃마을 ) , 혹은 카가이라고 불리는 게이샤들의 구역에서 생활하고 일한다. 수습 게이샤나 아직 '지마에'가 되지 못한 신참들은 '오키야'라는 전통 게이샤 소속사에서 생활하고, 성공하여 재력이 있는 게이샤들은 자신의 집을 따로 소유하여 그곳에서 산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게이샤들의 고상한 세계를 두고 카류카이 ( 花柳界, 화류계 ) 이 단어는 한국과 중국에서도 모두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엄밀히 따지자면 [원조. ]라고 부른다.
여기서 게이샤가 살아가는 구역의 개념은 카류카이>카가이=하나마치 이다. 예를 들어 도쿄 카류카이 안에는 신바시, 아사쿠사, 아카사카, 무코지마, 카구라자카, 하치오지 등의 카가이 ( 하나마치 ) 들이 있고, 서쪽 교토의 카류카이 안에는 교토의 고카가이 ( 다섯 하나마치 ) 로 불리는 기온 코부, 폰토쵸, 카미시치켄, 미야가와쵸, 기온 히가시의 다섯 카가이들이 있는 것이다.
흔히 게이샤라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하얗게 얼굴을 분칠한 채 화려한 기모노를 입고 부채를 든 모습이지만, 사실 이 모습은 게이샤 보다는 교토의 마이코들이나 간토를 비롯한 타 지역의 한교쿠 같은 견습 게이샤들의 것이다. 정식 게이샤들은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오시로이 ( 일본 전통 백분 화장 ) 도 하지 않고 기모노도 비교적 수수하고 평범한 것을 입는다. 견습 게이샤인 마이코에 대해선 항목 참조.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게이샤 문서보다 수십 배는 더 알차고 많은 정보들이 있다 간토 특히 도쿄에서는 이런 견습 게이샤들을 한교쿠 ( 半玉 ) , 또는 술 접대부라는 뜻의 오샤쿠 ( 御酌 ) 라고 부른다.
교토의 게이샤와 도쿄의 게이샤는 꽤 많은 점이 다르다. 교토의 게이샤는 대체로 나이가 어린 편이며, 정식 게이샤가 되기 위해 5년 정도의 힘들고 긴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반면 도쿄의 게이샤는 6개월에서 1년만 수련하면 정식 게이샤가 될 수 있고, 대체로 나이가 많은 편이다. 100년 전 까지만 해도 일본 전국에 거의 10만 명에 가까운 게이샤들이 있었으나 현재는 현저히 줄어들어 2,000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관광지에서 게이샤 분장을 하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평범한 연극배우들이거나 관광객 ( ... ) 들이다. 현존하는 게이샤들은 하나마치 밖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을 자극하는 요소 중 하나다. 말 없이 다소곳하고 얌전하게 남성들의 편의를 배려해주는 동양 여성이라는 그들의 판타지가 투영된 대상이라고 볼 수 있겠다.
특정 예술 ( 전통 무용, 샤미센, 후에, 태고 같은 악기, 전통민요 등등 ) 만을 파고 들기에 학식이나 다양한 현대적 기예를 기대하기란 어려웠다. 현대의 게이샤도 어려서부터 학업을 포기하게 되어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교토 게이샤들의 경우, 의무교육 ( 중학교 졸업 ) 만 마치고 게이샤로서의 수련을 시작한다. 1970년대 최고의 게이샤였던 이와사키 미네코는 자서전 에서 이러한 시스템에 대해 강한 아쉬움을 토로하며, 게이샤 수련생 소녀들의 교육 및 외국어 학습의 필요성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