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황제의 고명딸로 이복 언니들이 몇 있긴 했으나, 모두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죽고 말았다. 고종황제의 정실인 명성황후 민씨도 딸을 낳았으나, 태어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죽었다. 아직 정식으로 공주 책봉을 받기도 전이었다. 그 외에 자신이 고종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이문용 여사도 있었지만 진위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순종황제, 의친왕, 영친왕에게는 이복 여동생이 된다. 생모는 복녕당 ( 福寧堂 ) 귀인 양춘기 ( 梁春基 ) 이다. 양씨는 본래 궁녀였다가, 승은을 입어 덕혜옹주를 낳고 후궁이 되었다. 양씨의 친정오빠는 백정으로 조선에서 가장 미천한 신분이었으나, 여동생 덕분에 관복을 입고 궐에 출입하는 귀한 신분으로 벼락출세했다.
‘덕혜’ ( 德惠 ) 는 1921년에 이복오빠 순종황제가 내려준 작호인데, 그 이전에 따로 이름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 한국 측의 기록에는 그냥 ‘아기씨’, ‘복녕당 아기’, 일본 측의 기록에는 姬 ( ひめ, 아가씨 ) 로만 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훗날 대한민국 호적에도 ‘이덕혜’ ( 李德惠 ) 가 성명으로 올라갔다. 덕혜옹주의 삶을 다룬 여러 매체에서도 ‘황녀 이덕혜’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덕혜옹주는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한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대한제국의 황녀였던 적이 없다. 일제강점기 이후에 태어난 덕혜옹주, 이우#s-1 등도 고종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일반적으로 대한제국의 황족으로 간주하는 편이지만 엄밀하게 따지자면 이들은 대한제국의 황족은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 대한제국의 황태자비였던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친왕의 아내라는 이유로 황태자비로 간주되는 이방자와 마찬가지로, 덕혜옹주도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의 딸이라는 점에서 통상적으로는 대한제국의 황녀로 간주되는 편이다. 따라서 '대한제국 ( or 조선 ) 의 마지막 황녀'라는 그녀의 타이틀은 사실 틀린 셈. 대한제국에는 황녀가 없었고, 조선의 마지막 ( 정식 봉작받은 ) 왕녀는 철종의 외동딸인 영혜옹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