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두려워하는 것은 사서 ( 史書 ) 뿐이다. 《춘추 ( 春秋 ) 》에 이르기를 ‘어버이를 위하는 자는 은휘 ( 隱諱 ) 한다.’ 하였으니, 사관 ( 史官 ) 은 시정 ( 時政 ) 만 기록해야지 임금의 일을 기록하는 것은 마땅치 못하다. 근래 사관 ( 史官 ) 들은 임금의 일이라면 남김없이 기록하려 하면서 아랫사람의 일은 은휘하여 쓰지 않으니 죄가 또한 크다. 이제 이미 사관에게 임금의 일을 쓰지 못하게 하였으나 아예 역사가 없는 것이 더욱 낫다. 임금의 행사는 역사에 구애될 수 없다.
연산군일기 63권, 연산 12년 8월 14일 辛酉 5번째기사
조선 제10대 국왕이다. 조선에서 광해군과 함께 폐위된 후 복위되지 못한 왕이다. 단종은 숙종 때 복위되었다.
휘는 융 ( 㦕 ) 이다. 폐위되었기에 묘호와 시호가 없다. 생전에 받은 헌천홍도경문위무대왕 ( 憲天弘道經文緯武大王 ) 이라는 존호가 남아있다. 성종과 폐비 윤씨의 적장자로 태어나 원자로 책봉되었고, 성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연산군보다는 폐왕 ( 廢王 ) 이라고 많이 불린다. []
한국에서 폭군의 대명사이다. 고려 충혜왕 같은 더 심한 폭군도 있지만 연산군의 인지도가 월등히 높다. 재위 초반의 치세는 괜찮았지만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두 차례 사화를 벌이며 갑자사화 이후 죄없는 사람을들을 잔혹하게 처벌하거나 또는 죽였다. 사치와 향락에 빠져 국정을 태만히 했다.
1506년 중종반정이 일어나 폐위되어 교동도로 유배를 간 뒤 31세 나이로 사망했다. 연산군은 이후 조선에서 걸왕과 주왕에 비유되었다. 공포정치로 엄청나게 강력한 왕권을 누렸으나 결국 견디지 못한 신하들에 의해 반정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