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제15대 국왕이자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군주.
양위 및 폐위로 묘호가 추숭되지 않았던 4인의 조선 국왕 중 한 임금이다. 다른 3명은 2대 공정왕, 6대 노산군, 10대 연산군이다. 다만 공정왕은 묘호만 없었을 뿐 능호도 후'릉'이라 하고 실록도 일기가 아니라 공정왕'실록'이었으며 종묘에 신주가 모셔지는 등 정식 군주의 대우를 받았으며, 공정왕과 노산군은 숙종 대에 들어서 각각 정종과 단종으로 추숭되었으므로, 결국에는 연산군과 같이 둘밖에 남지 않았다. 더불어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노산군, 연산군과 같이 '실록'이 아닌 '일기'의 형식으로 그들에 대한 기록이 실린 노산군일기는 후에 단종실록으로 개수 ( 改受 ) 되었으나 알맹이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단 셋뿐인 임금 중 하나이다.
세자 시절에는 아버지 선조가 버리고 간 국토에 남아 목숨을 걸고 전쟁영웅으로서의 행보를 보여주었으나, 왕이 되자 무리한 왕권강화에 대한 집착 증세는 당파와 문무를 초월한 중신들의 반감을 사게 되면서 쫓겨나게 된다.
평가가 갈리는 재위 후반기를 떼놓고 보더라도 세자 시절 구국을 위해 분조 ( 分朝 ) 활동으로 전장을 누볐던 면모부터 노년기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 끝에 숨을 거두기에 이르기까지 군주가 아닌 한 인간의 생애로 보면 굉장히 파란만장하고 굴곡이 큰 편이어서 업적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아니라 현대인들의 취향에 따라 역사적 담론보다는 정치적인 재해석과 이념적인 투영이 더욱 많은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