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제4대 황제이자 몽골 제국 제43대 대칸. 청나라 뿐 아니라 전 중국사를 통틀어서도 가장 뛰어난 군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중국 역사상 가장 긴 61년이란 긴 세월 동안 청나라를 통치했다. 사실 강희제의 손자이자 제6대 황제인 건륭제가 더 많은 나이에 즉위하여 비슷하게 60년간 재위하다가 강희제의 기록을 경신하지 않고 싶어서 스스로 퇴위하고 향후 4년 동안 섭정했다. ( 단, 건륭제가 말년에 사치향락을 부리면서 장수할 수 있는 근거라도 있었던 것과는 달리 강희제는 말년에 후계자 분쟁으로 인한 혼란으로 그렇지 않아도 바쁜 정무처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 즉위 당시 겨우 8살의 어린 나이였으며, 1722년 사망 당시에는 69살이었다. 1616년에 건국되어 1912년에 멸망하여, 전체 기간이 300년이 채 되지 않는 청나라 역사의 1/5이 넘는 기간이 강희제의 시대인 셈.
그는 엄청난 공부와 수양을 통해 지식과 교양을 쌓았으며 한편으로는 직접 전쟁을 지휘하고 원정을 강행한 것에서 보이듯이 만주족 전통의 무술과 기마술을 단련하는 데에도 힘썼다. 강희제는 진정한 의미에서 문무를 겸비한 만주족의 군주였다.[]
처음으로 중국에서 태어나 유학을 배우며 자랐고 만주식 이름과 중국식 이름을 동시에 가진 최초의 청나라 황제였다. 요컨대 중국 전체를 지배한 왕조로서의 청나라의 시작은 실질적으로 강희제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세계사적으로도 손꼽힐 만큼 매우 뛰어난 군주로서, 오늘날까지도 천고일제 ( 千古一帝, 천 년에 한번 나오는 황제 ) 라고 불릴 정도의 위대한 황제로 여겨지고 있다. 묘호도 일반적으로 중국에서는 나라의 창건자 정도의 업적이 아니면 祖를 붙이지 않는데 조를 썼을 뿐 아니라 성스럽다는 뜻의 聖자도 붙어있어 성조 ( 聖祖 ) 라는 아주 드문 묘호를 썼다. 성조라는 묘호는 중국 주요 왕조 중 추존 군주를 제외하면 사례가 없다. 비슷한 묘호의 사례로는 요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요성종 ( 聖宗 ) 정도가 있다. 그래서 강희대제라고도 한다. 마치 대한민국에서 조선의 세종을 세종대왕이라 하듯이.
을 편찬하면서 만주 황실에서 중국어를 사용하는 것을 허가한다. 그러니까 강희제 때부터 본격적으로 만주족이 한화되어간다고 봐도 될 듯. 강희제 자신은 만주어와 중국어에 모두 능통하여, 관리들에게 반드시 만주어와 중국어 공용으로 공문서를 작성해서 자신에게 보고하게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