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의 수도. 인구는 2018년 기준으로 80만 명 가량으로 크로아티아 전체 인구를 감안하면 상당히 많은 편이다. 크로아티아 전체 인구가 400만명을 살짝 넘는 것을 고려한다면 인구의 20%가 자그레브에 몰려 있는 셈이다. 전국 대비 수도 거주 인구 비중을 고려한다면 대한민국의 서울특별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서울 역시 대한민국 전체 인구 ( 5182만명 ) 의 19%에 달하는 965만명이 거주한다. 본래는 요새 마을인 그라데츠와 성직자 마을인 카프톨로 나뉘어 있었으며 서로 경쟁하는 입장이었으나, 19세기에 새 건물들이 세워지면서 두 마을이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광장과 공공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신도시가 생기는 등 시가지가 사바 범람원까지 확장되면서 경쟁관계가 끝났다. 이후 크로아티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는 19세기~20세기 초까지 크로아티아 독립운동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다.
1918년 10월 크로아티아는 독립을 선언했으나 11월에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 함께 연방국가를 결성하게 되면서 수도로서의 기능을 상실했고, 이후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잠시 괴뢰 정부의 수도가 되었다가, 티토에 의해 해방된다. 이후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치르고 크로아티아가 분리, 독립하면서 다시 수도가 된다.
유명한 관광지로는 반 옐라치치 광장과 자그레브 대성당이라고도 불리는 성 스테판 성당을 비롯한 여러 성당들, 자그레브 국립극장과 자그레브의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트칼치체바 거리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상당수 작품들이 위작 의심을 받고 있긴 하지만 미마라 미술관도 대표적 관광지로 뽑힌다. 여름에 현지인들은 관광중심부에서 제법 거리가 있는 야룬 호수를 주로 찾는다.
유명한 피아니스트 백건우 - 윤정희 부부가 1977년 자그레브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 북송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가, 가까스로 미국 영사관으로 도피해 북송을 모면한 사건이 있었다.
밴드 스틸하트의 밀젠코 마티예비치와 함께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유명 인터넷 방송인 가브리엘 흐라스토비치 또한 이 동네 출신이다. 격투기 팬들의 로망 미르코 필리포비치도 자그레브 주민.
수도임에도 관광객수는 이스트리아 지역 ( 풀라, 로비니 등 ) 이나 달마티아 지역 ( 두브로브니크, 스플리트 등 ) 에 비해 떨어진다. 이는 해안 지역이 아드리아해의 풍광과 함께 길게는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중세 도시를 보존하고 있는 데 비해 ( 특히, 두브로브니크의 경우 워낙 잘 알려진 관광지이기도 하고 ) 자그레브는 약간 과장 보태서 중부 유럽에서는 어디에나 굴러다니는 근대 도시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반 옐라치치 광장에서 아래쪽으로 조금만 더 내려가면 근대도 아니고 아예 소비에트 분위기가 풍기는 대도시가 되어 버린다.
[3월 22일 이곳에서 M5.3의 지진이 발생,] 1명이 사망하고 27명이 부상당하는 인명피해와 26,197동의 건물에 피해가 발생했다. 자그레브에서는 1880년에도 M6.2의 대지진이 발생해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던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