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토문화] 1948년 11월 20일경 마을 초토화..봉개동 도고내가름(잃어버린마을) 터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0973 살아남은 사람들은 더 깊은 산중으로 숨어 들어가서 쫓기다 죽어갔다. 봉개동 도고내가름(잃어버린마을) 터 위치 ; 제주시 봉개동 2146번지 일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마을터 도고내가름은 봉개동 동카름이나 큰가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었다. 강윤표, 강승표 등 10여 가호의 주민들이 농축업에 종사하며 살던 조그만 마을이었다. 봉개리는 1948년 11월 20일경 마을은 초토화되었다. 마을이 불타 버리자 주민들은 낮에는 인근 야산에 피신했다가 밤이면 마을로 돌아와 불타 버린 집 옆....... <img src="https://blogthumb.pstatic.net/MjAyNTA0MDFfOTIg/MDAxNzQzNDY4OTA1MDI4.J7pUL6BYeuBzvJXWEgzg9KrO7wTqARXnpfblsvWLT6kg.gG5154CL5gXRmp9iM4op0AGW33Km49L5qQm9_rsAc6Ig.JPEG/300973_289976_316.jpg?type=s3" />
[향토문화] 주민 12명 희생..가시리 달랭이ᄆᆞ루=흙붉은동산(학살터)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299384 9연대 군인들은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 30여명을 총살하였다 가시리 달랭이ᄆᆞ루=흙붉은동산(학살터) 위치 ; 가시리 712-10번지 일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학살터 달랭이ᄆᆞ르는 흙붉은 동산(ᄒᆞᆰ붉은동산)이라고도 하며, 1948년 11월 15일 가시리 주민 12명이 희생된 곳이다. 희생된 분들은 마을에서 성읍리 방향으로 피신중 냇가에 숨어 있던 고신춘씨 등 12명이었다. 현장의 안내판에는 냇가에 숨었다고 되어 있으나 가까운 곳에는 내가 없고, 남서쪽 직선거리 990m(도로를 따라서는 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