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토문화] 다양한 형태의 생활상 연구 도움..오등동 오드싱마을성담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5284 죽성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오드싱에 정착.. 죽성마을은 잃어버린 마을이 되어 버렸다. 오등동 오드싱마을성담 위치 ; 제주시 오등동 608-5, 612, 616번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방어시설(마을성담) 오드싱은 오등생의 토박이 지명으로, 『제주읍지』(1783년)에 ‘오등생리’(吾登生里)라 적혀 있다. 4·3 당시 이승만 정부에 의해 제주도 중산간 마을 소개령이 내려져 1948년 11월 중순경부터 소개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오등리에는 1948년 11월 7일 토벌대가 느닷없이 들이닥쳐 마을을 불태워버리자 주민들....... <img src="https://blogthumb.pstatic.net/MjAyNTA3MDFfMTQ4/MDAxNzUxMzIwOTAyOTQz.Njb8ho-ByYxzQ_HnbvqtmlPLe8GjTyiheH2m46N_yHUg.023LOwM11wUUQL9DCXYk5F7taAKgR_tuNlcqkVtcckYg.JPEG/305284_293865_407.jpg?type=s3" />
[향토문화] 제주읍 가장 높은 지대 위치..오등동 죽성마을(잃어버린 마을) 터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294942 1948년 11월 7일 군인들이 죽성을 포함한 오등리 마을 전체를 초토화 오등동 죽성마을(잃어버린 마을) 터 위치 ; 제주시 오등동 61, 176, 243, 437번지 일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마을 터 4·3 당시 오등리 죽성마을(ᄀᆞ다시)은 제주읍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하였으며, 전형적인 중산간마을로서 36가호가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었다. 오등리에서도 큰 마을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죽성 사람이 오등리 구장도 여러 번 맡았었다. 1948년 4월 3일에는 오드싱오름에서 봉화가 올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