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도읍성 안에는 작지만 아름다운 연못이 하나 있습니다. 이름부터가 '성 안에 있는 연못'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성내지(城內池)인데요. 문헌 상에는 성내지 혹은 성내제로 기록이 되어있는 곳은 청도의 남산에서 흘러내린 물을 가두기 위해 제방을 축조하여 인공적으로 조성한 못입니다. 못의 기능은 전쟁시 화재 대비 방호수, 경작 농수, 성내 배수를 위한 시설 등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발굴을 통해 제방의 규모를 확인한 바 현존하는 우리나라 읍성 중 그 예가 많지 않을뿐더러 규모가 크고 보존상태도 양호합니다. 못으로 남겨져 있던 성내지는 청도읍성의 조경과 관람환경 개선을 위해 한국식 전통정원으로 탈바....... <img src="https://blogthumb.pstatic.net/MjAyNTEwMDdfNzcg/MDAxNzU5ODE3MzU3OTgw.UcOKiuSnJgT7Mb-_HU-btmyxg-gouS2XayhEzxm5EMUg.6IHWEOdueP_T4MCqZcU9LRAQhrhZ441UKjoKKyU-M7sg.JPEG/%B8%DE%C0%CE_%BF%A9%C7%E0_%C6%F7%BD%BA%C6%AE_-_%B1%B9%B3%BB_%BF%B5%B3%B2_2025_%285%29.jpg?type=s3" />
[향토문화]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아..동명리 명월진 서문과 옹성 터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298910 1960년대에 한림항 방파제 공사에 골재로 써 버렸기 때문이다. 동명리 명월진 서문과 옹성 터 위치 ; 동명리 2260번지의 서쪽 끝 시대 ; 조선(1510년) 유형 ; 방어시설(鎭城) 명월진성은 비양도에 왜선이 자주 정박하면서 민가에 피해가 크자 조정의 해안방어를 위한 계책에 따라 조선 중종5년(1510) 제주목사 장림(張琳) 때 쌓은 성이다.(상세 내용은 ‘명월진성’ 참조) 성에는 3곳에 문이 있었는데 동문은 동명리 2261번지(명월성로72)의 동쪽 끝에, 서문은 동명리 2260번지 서쪽 끝에, 남문은 명월리 2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