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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진주성
국립진주박물관의 진주성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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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의 변천과정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서 본성동에 걸쳐 있는 둘레 1.7km의 석성 ( 石城 ) 으로, 삼국시대 백제 때 처음 축성되었다. 임진왜란 당시에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인 진주 대첩의 현장이기도 하다. 진주시를 찾는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들르는 진주의 대표 명소이다. 지방에 위치해있으며 중세의 도성을 보존하고있는 대표적인 수학여행지라는 점에서 프랑스의 카르카손과 비슷하다, 진주성은 1963년 1월 21일에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3대 대첩인 진주 대첩의 현장이자 임진왜란의 최대 격전지로 현대의 진주성은 내성뿐이다. 위의 이미지에서 조선시대 진주성 규모에서 볼수 있듯 외성까지 포함하면 훨씬 큰 성이지만 일제시대 도시개발과정에서 외성들이 헐려 현재의 내성만 남았다. 외성은 몇차례 증/개축이 있었는데 특히 임진왜란 직전인 1591년에 크게 증축되어 당시 조선도 나름대로 일본의 침공을 예상하고 전쟁대비를 했음을 알수 있게 해준다.
시내의 중심부에 위치해있어 관광객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진주논개제를 비롯해 개천예술제, 제야 타종행사, 각종 사생대회 등등 진주시에서 개최되는 다양한 야외 행사가 진주성에서 열린다. 성공적인 지역 축제의 사례로 꼽히는 진주남강유등축제의 행사장으로도 매년 사용되고 있다. 본래 축제 기간 동안은 무료입장이었으나 2015~2017년은 유료화가 진행되어 성인 1만 원의 입장료를 지불해야만 진주성에 들어갈 수 있었다. 2018년 다시 무료화로 전환되었다.
원래 남쪽의 남강, 그리고 북쪽은 연못이 해자 ( 垓子 ) 역할을 하는 천혜의 요새였으나, 일제강점기 때부터 도시 개발이 진행되며 연못들은 전부 매립되어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서장대 아래 나불천을 북쪽으로 이어 지금의 진주경찰서, 진주교육지원청, 중앙로터리, 동방호텔 일대를 해자로 하는 둘레 4km의 외성 ( 外城 ) 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외성 복원의 의미로 촉석문부터 진주교 사이 구간에 진주대첩 광장을 조성하고 있으며, 문화재 발굴 과정에서 조선시대 외성, 고려시대 토성 ( 土城 ) 과 통일신라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수로도 발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