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미국 노스롭 그루먼의 전신인 노스롭사가 개발한 경량급 전투기. 별명은 F-5A/B '프리덤 파이터 ( Freedom Fighter ) ', F-5E/F '타이거 II ( Tiger II ) ' 참고로 제2차 세계대전기 미 육군항공대의 쌍발 엔진 전투기인 P-38에도 이 F-5라는 식별명의 기체가 있었다. ( 당시에 육군항공대에서는 F가 정찰기로 분류됐다. )
1950년대 중반 노스롭사는 경량 초음속 전투기 계획을 세웠다. 한국전쟁의 공중전을 분석, 추후 경량 고기동 전투기의 수요를 예측하여 단순한 생김새를 가진 값싼 전투기를 만든다는 구상이었다. 초기 명칭은 N-156이었다.
당시 미 해군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많은 수의 소형 호위항공모함을 운용하고 있었다. 이를 놓치지 않은 노스롭은 기존의 구상안에서 엔진을 쌍발로 바꾸어 동체안에 집어넣고 기존의 직선익을 삼각익으로 바꾸어 마하급의 고속전투기 N-156을 개발했다. 쌍발 전투기인 이유는 미 해군의 요구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미 해군은 함재기로써의 운용을 염두에 둔 쌍발기 우월주의를 가지고 있다. 지상에서 주로 작전하는 공군이라면 엔진이 정지하는 비상 상황에서 어떻게든 활강해서 인근 공항, 하다못해 평야에라도 비상착륙을 시도할 수 있겠지만, 망망대해에서 작전하는 해군 항공대 특성상 기체와 조종사가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항공모함이나 인근 섬의 활주로까지 도달해야 하기 때문에 ( 착수도 가능하지만 익면적이 작은 제트 전투기에게는 어렵고 위험할 뿐더러, 제때 구조받지 못하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 이때 쌍발기라면 엔진 하나가 사고로 정지하더라도 남은 엔진의 추력으로 비행을 계속할 수 있으므로 비상착함/착륙을 성공시킬 확률이 크게 올라간다는 계산이 서는 것이다. 허나 이상과 현실은 역시나 좀 달랐기에, 정작 미 해군에서 활약한 함상전투기나 함상공격기 중에는 F-8이나 A-4, A-7의 예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오히려 단발기들도 상당히 많았다. 물론 현재야 대부분의 함재기가 쌍발기인 F/A-18계열로 통일되었지만... 노스롭은 N-156을 호위항공모함에서 운용 가능한 전투기로 미 해군에게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미 해군이 호위항공모함 운용을 포기함으로서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한편 당시 미 공군은 기존의 T-33을 대체할 새로운 훈련기를 모색하고 있었는데, 이에 노스롭은 N-156의 훈련기 버전인 N-156T을 제작하여 미 공군에게도 엄청난 홍보를 퍼부었다. 미 공군이 의외로 여기에 큰 관심을 보이자 노스롭은 N-156T에 미 공군의 요구사항을 반영했고 이것이 T-38이다. 마침내 1956년 미 공군이 T-38을 채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T-38은 1959년부터 1972년까지 1,158대가 생산되었다. 미국은 T-38을 계속 우려먹다가 2016년에야 신형 훈련기 도입을 위해서 T-X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한편 노스롭은 N-156의 전투기 사양인 단좌형 N-156F의 개발도 이어갔다. N-156F은 1958년 프로토타입이 나왔고, 1959년 첫 비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미 공군은 N-156F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록히드의 F-104를 채택했다. 이렇게 N-156F는 사장될 운명인 듯 했다.
한편 그때 미 정부는 '2급 동맹국'에게 제공할 적당한 성능을 지닌 값싼 전투기 1급 동맹국 NATO, 일본, 사우디를 제외한 다른 국가들. 특히 한국과 대만 같은 개발도상국의 국가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가격이 싸야 한다는 조건이 붙은 것이다. 사실 한국은 서방제 무기를 주로 도입하는 개도국들에게 일종의 바로미터 역할을 하던 나라였다. 고가의 최신 무기를 도입하기는 어렵지만 왠만큼 무기를 도입할 능력이 있고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에 비해 군사적 열세였고 제한적인 에산하에서 전투력을 극대화해야만 하는 전략적인 상황에 처해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나라들이 한국에서 도입해서 잘 운용하는지를 살펴보고 해당 무기 도입을 결정하곤 했었다. 한국의 무기도입 상황이 개도국이면서 미국에 우호적이었던 나라들에게는 좋은 참고서가 되었던 것이다.를 물색하고 있었는데, 이 요건을 충족한 전투기가 N-156F였다. 미 정부는 대외 수출용 경량 초음속 전투기로 노스롭의 N-156F을 채택했고, N-156F는 F-5라는 제식명칭을 부여받았다. 한편 미 육군이 근접항공지원 작전용으로 F-5 도입을 검토했지만 미 국방부가 거부했다.
1972년에 구 소련의 MiG-21에 대항하기 위해 성능을 대폭 개량한 F-5E/F 타이거 II가 개발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F-5 판매로 짭짤하게 챙긴 노스롭은 똑같은 컨셉의 후계기종으로 F-20을 독자개발하였으나 여러번의 추락사고 끝에 단 1대도 팔지 못하고 처참하게 망했다. 특히 F-5를 대규모로 운용하고 있던 한국에 F-20을 수출하기 위해서 노력했으나 결국 F-16에 밀려서 실패 F-20의 숨통을 끊은 것은 F-16의 1급 동맹국 이외 국가에 대한 대외판매제한 철폐지만 한국에서는 시범비행에서의 추락사고 때문에 도입이 취소됐다. F-5를 잔뜩 도입하다못해 국내조립생산 ( KF-5E/F ) 까지 하고 있던 당시에도 한국 공군은 F-5의 개량형인 F-20을 원하지 않았고, 이에 노스롭은 정치권에 뇌물을 먹이고 수원비행장에서 시범비행 행사를 열었는데 여기서 추락사고를 내는 바람에 뇌물을 먹은 정치권도 공군에 F-20 도입을 강요할 수 없어진 것이다. 정작 추락사고 자체는 기체와 상관 없는 급기동 중 조종사 의식상실 ( G-LOC ) 때문이었지만.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노스롭 스캔들 항목 참조.
한편 노스롭이 설계한 YF-17, F/A-18, F/A-18E/F에도 T-38과 F-5의 설계가 반영되었다. 심지어 YF-23마저도 동체 부분의 설계 등에서 F-5의 계보를 어느 정도 간접적으로 이었다는 썰도 있다.
이 외에도 팔라비 왕조시절 이란에서는 F-5E를 자체 생산한다거나 이를 개량한 전투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혹자는 이러한 예를 들며 T-38과 F-5가 훌륭한 기본 설계로 50년을 우려먹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평하기도 하지만, 이론의 여지가 많은 평가다. T-38과 F-5의 설계를 이어받은 후계기인 F-20은 미국 뿐만 아니라 당시 한국 같은 개발도상국에도 철저히 외면받고 실패한 기종이다. YF-17과 F/A-18, F/A-18E/F, YF-23은 F-5의 설계요소를 일부 이어받았지만 전체적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설계라고 볼 수 있다. 또 YF-17은 F-16에 밀려 끝내 채택되지 못하고 사라진 비운의 기종이다. YF-17은 훗날 기골 등의 본격적인 재설계를 통해 F/A-18 ( F-18 ) 호넷으로 부활했으며 이후 개량되어 F/A-18E/F 슈퍼 호넷도 등장했다. 1984년 수원공항 에어쇼에서 F-20가 추락했을 때 한국 공군 관계자가 "그것 봐... 뛰어봤자 벼룩이랬지."라는 말을 내뱉은 것에서도 한국 공군 안의 F-5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저평가 역시 딱히 공정한 평가는 아닌데, F-5는 어디까지나 2선급 동맹국에 제공될 값싸고 민첩한 전투기로 설계된 기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렴한 로우급 전투기로서의 F-5는 매우 성공적인 기종이었다. 이는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까지 소련은 물론 공산권 전체의 주력 전투기였던 MiG-21과의 모의 근접공중전에서도 F-5가 우세한 모습을 보였다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F-5의 설계는 하이급, 혹은 개발로부터 20년도 더 지난 시기의 최신 전투기에 요구되는 능력을 가정하거나 요구하지 않았다. F-5의 설계는 개발 목적을 아주 충실하게 달성했으며, 그런 의미에서 "좋은 설계"라고 불러도 딱히 틀린 말이 아니다.
베트남 전쟁의 마지막 역사의 한 장면에 등장한 기종이기도 하다. 1975년 4월 8일, 베트남 공화국 공군의 응우옌 탄 트렁 중위가 조종하던 F-5E가 비엔호아 기지를 이륙한 후 독립궁에 폭탄 2발을 투하한 후 월맹측에 투항하였다. 사이공의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대표단 대변인은 응우옌 탄 트렁 중위가 대위로 1계급 진급했으며 제2급 혁명훈장을 수여받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