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시대의 군웅이자, 고려의 전신이 되는 나라인 후고구려, 마진, 태봉의 유일한 군주.
말 그대로 한국사의 창업 군주들 중에서도 가장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일개 떠돌이 승려에 지나지 않았지만 자신의 무력적 소양과 인심을 끌어들이는 능력 만을 바탕으로 점차 세를 불려 한반도의 중부와 남쪽의 경상북도 일부 지역, 그리고 수군을 이용해 후백제의 후방이던 나주와 목포, 진도와 그 부속 섬들을 점령해 당시 삼한의 3분의 2를 평정하는 등 엄청난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재위 말년에 벌어진 가혹한 폭정과 무자비한 숙청 오늘날의 정신건강의학으로 볼 때, 왕위에 오르면서 편집성 성격장애와 같은 정신병이 발병하였고 망상, 환각, 의심 등의 행동 이상이 악화되면서 무자비한 폭군이 된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평화신문 ( 2015.09.13 ) : ( 아! 어쩌나 ) 310. 현대판 궁예], 지나치게 독선적인 정치 철학으로 인해 염증을 느낀 홍유, 신숭겸, 배현경, 복지겸, 김락, 염상 등이 일으킨 왕건의 정변으로 축출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한국사의 숱한 정치지도자들 중에서도 가장 아웃사이더적 면모가 강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출생의 비밀, 애꾸눈, 미륵을 자칭한 종교적인 이미지, 초기의 성인군자 같은 모습과 대비되는 말기의 타락 등 여러 면이 겹쳐 수수께끼 같은 면모도 제법 보여주는 군주이다. 어떤 유형이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국사에서 특이한 삶을 살다간 군주라고 할 수 있다. 굳이 외국에서 비슷한 유형을 찾자면 중국사에서 황건적의 난을 주도한 장각이나 태평천국운동의 지도자 홍수전 같은 종교 민란의 지도자 정도가 있겠다. 물론 제정일치에 지도자가 종교 지도자도 겸임한 사례는 고대에 흔했으나, 궁예나 홍수전처럼 종교의 수장, 더 나아가 ( 자칭 ) 신과 왕을 동일시하며 신정 일치 왕국을 시도한 사례는 찾기 힘든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