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말기의 군인이자 후백제의 초대 국왕이다.
후삼국시대의 문을 열고 스스로 닫은 인물. 후삼국시대는 그가 후백제를 세우면서 공식적으로 시작했으며 그가 후백제를 멸망시키면서 비로소 끝났다. 창업군주로서 자신이 건국한 나라를 스스로 무너뜨렸으니 한국사, 아니 전세계사적으로 보아도 이런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 간 군웅을 찾기 힘들다.
황간 견씨 ( 黃澗甄氏 ) 의 시조이기도 하다. 견훤의 성씨는 '완산 견 ( 진 ) '씨이다. 이씨가 아니다. 아버지는 이씨였지만 견훤은 이씨가 아닌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아들들인 신검, 양검, 용검, 금강 또한 성씨가 이씨가 아닌 견 ( 진 ) 씨로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아버지인 아자개 문서를 참조.
892년부터 935년 음력 3월까지 후백제 ( 後百濟 ) 의 군주로 재위한 그는 본래 남북국시대 신라의 장군으로 신라 서남 해안 ( 전라남도 ) 에서 해적을 토벌하기 위해 배치되어 있었으나 889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거병하여 892년에 무진주 ( 지금의 광주광역시 ) 를 점령하고 왕을 칭했는데 이때 공식적인 건국은 아니고 일단은 왕이면서도 신라왕의 신하를 자칭하는 애매한 스탠스를 취하다 900년에 비로소 완산주 ( 完山州, 지금의 전주시 ) 에 도읍하여 3백여년 전에 멸망한 백제의 부활을 선포한다. 이 때 견훤이 재건한 백제는 먼저 있었던 백제와 구분하기 위해 후백제로 부른다.
신라, 궁예, 왕건 등과 후삼국의 패권을 놓고 수십 년간 다투었으나 935년 음력 3월에 적장자인 신검이 일으킨 정변으로 왕위에서 축출되었고 대리 집정을 하던 신검이 왕위에 오른다. 같은 해 음력 10월 17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권력을 잃어버린 견훤은 과거에 적이었던 고려 태조에게 귀순하였고 십만이 넘는 고려군의 선봉으로 후백제를 총공격하였다. 그렇게 이듬해 음력 9월 8일에 후백제가 멸망하였고 견훤은 등창을 앓다가 후백제가 무너진 다음날인 936년 음력 9월 9일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