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戰列艦
영어: Ship-of-the-line
목조 범선시대 군함의 최종 테크트리. 일반적으로 유럽식의 범선 전함이라면 바로 떠올리는 형태이다.
범선시대에서 전열함이 가지는 위상은 전함과 같다.
고대 역사에 남을 만한 대해전은 주로 지중해가 무대로, 노를 젓는 갤리선이 주력함이었고 접현시켜 백병전을 벌이거나 충각 전술로 배끼리 충돌하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이후 화약과 대포가 개량을 거듭하고 대항해시대가 도래하며 해전의 주역은 서서히 범선으로 이동했다. 활과 노 ( 弩 ) 에서 대포로 화력 방사 방법도 발전했다.
그런데 당시 대포는 현재와 달리 화약을 폭발시켜 탄환을 날리는 방식이었다. 탄환의 운동에너지로 목표물에 충돌해 피해를 주는 형식으로 한 방에 배를 격침시킬 수는 없었다. 통짜 쇠구슬을 서로 쏴댔다는 뜻이다. 고폭탄을 만들 지식은 없었던 대신, 많은 대포를 장착해 부족한 관통력과 살상력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전투력을 올렸다. 쉽게 이야기하면 예전 대포는 상대 군함을 단숨에 격침시키기는 어려워서 2차 대전 당시의 전함처럼 3연장 포탑 3~4개 정도의 포만 운용했다가는 도저히 격침 자체가 불가능해 현측에다 대포로 도배를 했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복층 갑판구조를 가진 함선이 개발되고 반대로 다수의 포화를 견딜 수 있는 장갑과 구조가 요구됐다. 전열함으로 넘어오던 과도기에는 3층 갑판 갤리온이 나왔고, 이를 더 개량한 것이 전열함이다. 당시 함선 간 포격전이 벌어졌을 때 어떤 상황이 발생하는가 제대로 묘사한 영화로는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가 있다.
그렇지만 당시 전열함의 대포는 파괴력이 작든 크든 적함 격침에 비효율적인 건 사실이었다. 당시 3급 전열함의 상부 포갑판에 탑재된 18파운드 포는 30m 이내에서 무려 75센티 두께의 참나무를 관통했다. 탄속이 너무 빨라 반대편 갑판을 뚫고 나가버렸던 것이 오히려 문제였다. 이를 보완해 탄속이 느리고 포환이 큰 카로네이드 포가 나왔다. 하지만 부족한 화력은 마찬가지였다. 라운드샷 수십 발을 퍼맞고도 양쪽함 모두 떠있었고, 혹 흘수선 근처에 맞아 침수가 돼도 긴급보수를 하면 침몰하는 일도 적었다.
마스트가 전부 부러져서 항행능력을 상실하거나 간부 내지 수병의 피해가 너무 커서 사기가 저하로 끝나는 게 당시 해전의 양상이었다. 화약고 유폭만은 달랐는데, 핫샷 등 뜨겁게 열받은 포탄이 화약고를 때리면서 전열함들이 터져나갔다. 이를 참고해 포탄 자체를 고폭탄으로 업그레이드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1830년경에 프랑스에서 작열탄을 사용하는 대포를 개발했고, 같은 시기 프랑스에서 증기 추진 전열함이 개발되었다. 증기추진으로 인해 더 나은 기동성이 확보되고 작열탄을 통해 당시 인화성 소재로 가득찬 범선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게되자 이후 데미지를 줄여보고자 범선의 선체를 철갑으로 강화하거나 아예 철제 선체를 가진 철갑함이 나왔고. 그 철갑을 관통하기 위해서 범장을 포기하고 강력한 증기추진과 함께 확실한 한방을 보장하기 위해 선체 중앙에 대구경, 고관통 주포탑을 설치하기 시작한 게 전드레드노트급 함선이며, 주포의 화력이 강해지자 가능해진 장거리 교전에서 쓸모 없는 현측포를 들어내고 주포만 남겨둔 게 드레드노트급이다. 이윽고 전열함의 시대가 저문다.
하지만 전열함 시대에도 포격을 할 시 대부분이 흘수선 위쪽을 맞으므로 격침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굳이 격침을 하려면 파도를 이용해서 적선의 흘수선 아래 부분이 드러날 때 타이밍 맞춰 쏘는 방법이 있는데, 당시 포격 방식으로는 그런 흘수선 하단 "조준사격"이 타이밍 맞추기도 어려울뿐더러 여러 가지 면에서 상당히 힘들었다. 그냥 흘수선 위쪽을 마구마구 때려서 걸레짝을 만들어놓고 백병전에 돌입하거나 적 승조원의 숫자를 줄여버리는 등으로 상대함이 항복하면 승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목재라는 특성상 잘 가라앉지도 않아서, 대개 승리한 쪽은 항복한 함정을 나포, 자함 승조원 일부를 차출해 본국에 먼저 보내거나 자함과 동행시켜 끌고 가곤 했다. 게다가, 당시엔 나포한 적국 함선이나 상선 및 화물을 정부가 종류와 상태 등을 보고 가격을 매겨 매입하여 나포해 온 함장을 포함한 모든 승조원들에게 상금, 즉 돈을 줬으므로 지금도 그렇지만 군함을 건조하는 데에는 막대한 비용과 긴 시간이 소모되므로 금방 수리해서 투입할 수 있는 나포함의 가치는 상당히 컸다. 군함 건조로 인해 영국에서는 목재가 될 나무가 씨가 말라서 북미의 삼림지대에 의존하는 판이었고 당연히 비용도 그만큼 올라서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요즘 군함은 나포해도 무기체계나 운용 방식이 낯설어 바로 투입할 수 없으나 이 시대는 그러한 점들이 거의 똑같았으므로 가능했던 것이다., 오히려 간신히 이겼더니 적함이 가라앉아 버리면 승리한 쪽 승조원들이 망했다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나포한 배가 전투의 영향으로 불이 나면 포로 신세인 나포된 배의 승조원들은 물론 나포한 쪽의 승조원들까지 합세해 필사적으로 진화를 했다. 마찬가지로 침수가 발생하면 양측 승조원들이 협력해 필사적으로 펌프질을 하기도 했다. 육지와 달리 배를 잃는 순간 생존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지는 바다의 특성과, 뱃사람들 특유의 국적을 넘는 유대감, 근대 서구권의 전투 문화 등으로 교전이 끝나면 대개 상호간의 적개심이 쉽게 가라앉았던 점과 가장 중요한 나포 상금 등이 작용했다. 그리고 당시 일반 선원의 대부분은 강제 징집당한 사람들이어서 충성심도 희박했으므로 제3국 항구에서 해산되거나 심하면 그냥 간부들만 변하고 그대로 운용되는 경우도 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