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 ( 大航海時代 ) 는 유럽인들이 항해술을 발전시켜 아메리카로 가는 항로와,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와 동남아시아, 동아시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하고 최초로 세계를 일주하는 등 다양한 지리상의 발견을 이룩한 시대를 말한다. 그래서 중국어로는 이 점을 강조한 '지리대발견'이라고 부른다.
본래 대항해시대를 뜻하는 '에이지 오브 디스커버리 ( Age of Discovery ) '는 직역하면 '발견의 시대'라는 뜻인데, 이는 오롯이 유럽인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역사관이 투영된 말이다. 즉, '침략자이자 가해자'인 유럽인들이 자신들 입장에서 붙인 명칭일 뿐이고 아메리카와 아시아, 오세아니아와 다른 여러 지역의 피해 국가 입장에서는 '침략자들의 유입' 역사적 인식론에서, 이 시대의 '발견'은 타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발견이 아닌, 이종족을 지배하고 군림하기 위한 발견으로 설명한다.일 뿐이라는 점이다. 또 이를 번역한 '대항해시대'는 일본어 '大航海時代 ( 다이코우카이지다이 ) '를 중역한 말이다. 따라서 최근 대한민국의 역사 교과서 등지에는 대항해시대라는 말을 쓰기보다는, 비교적 중립적이라 할 수 있는 '신항로 개척'으로 용어를 바꾸고 있는 추세이다. 검인정화 이전 중등과정 국정 사회교과서도 제5차교육과정 중인 1989년 '지리상의 발견'을 '신항로 발견'으로 바꿨다.
대체로 포르투갈의 엔히크 왕자를 주축으로 한 15세기 초중반의 대서양 방면 해외 진출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후 에스파냐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유럽-아메리카 항로의 개척, 바스코 다 가마의 아프리카 남단을 통한 인도항로의 개척, 그리고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세계일주 항해가 이루어진 15세기 말-16세기 초반에 정점에 달하였다. 이 영향으로 고대 이후 동서양이 교역하는 육상 통로였던 비단길은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줄어들게 되었고, 대항해시대의 중요성에 주목하는 서구 중심적 옛 사관에서는 대항해시대 이후 내륙 실크로드가 교역루트로서 아예 몰락했다고 단정하기도 했지만, 이쪽도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퍼센트가 줄어들었을 뿐 16세기 이후에도 이들 유라시아 내륙교역로의 무역랑의 절대량은 계속 증가했으며, 티무르 제국과 제국 붕괴 이후의 코칸드 칸국, 부하라 칸국, 히바 칸국 등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러시아, 페르시아, 인도, 중국을 엮는 삼각무역의 요충지로서 전성기를 지내며 번성하였다. 근대 실크로드를 장악한 러시아는 이곳에서의 모피무역을 비롯한 각종 교역에서 얻은 자본을 통하여 표트르 대제의 서구화와 러시아의 주요 열강 등극으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한다. 그러나 대항해 시대 이후 동서양 무역의 전체 파이가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대서양이 아닌 북유럽 일대에서 해상 무역을 독점하던 한자 동맹도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된다. 그리고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한 식민제국 건설, 영국과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 설립을 끝으로 대항해시대는 막을 내리고 유럽은 식민지 땅따먹기에 혈안이 되는 근대 제국주의 시대로 넘어가게 된다는 점에서 세계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아랍국가들은 중계무역을 통한 경제발전이 올스톱하게 돼서 현재에도 전근대적 요소가 남아있다.
요약하자면 한정된 교역만을 이어가거나 아예 서로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각 문명권들이 본격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한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