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야구인.
前 삼성 라이온즈, 치바 롯데 마린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오릭스 버팔로즈 소속의 1루수이자 現 SBS, SBS Sports 야구 해설위원이면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연수코치도 역임하고 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장타자이며 KBO 리그 역사상 최고의 슬러거로 꼽힌다. 대한민국 국적의 야구 선수 중 개인 통산 최다 홈런 1위 ( 626개 ) 기록과 개인 통산 최다 안타 2위 ( 2842개 )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인 개인 통산 최다 안타 1위는 일본에서만 무려 3085안타를 친 장훈. 다만 '한국인 최고의 타자'라고는 보기 어려운 게, 메이저리그에서 3할, 20-20을 달성한 추신수가 있으며 일본에서의 성적도 이대호보다는 아래다. 여러 가지 면모를 전부 분석했을 때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타자'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 그러나 이승엽은 KBO 최고의 장타력을 자랑했고, 위기의 순간마다 보여준 스타성으로 'KBO 최고의 슈퍼스타'라 칭하기에는 손색이 없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추신수, 강정호, 이대호 다음가는 강타자로 불릴만한 어마어마한 선수였다.
삼성의 이만수 - 양준혁 - 이승엽 본좌라인이며, 영결라인이다. 언론상에 주로 나오는 별명 겸 수식어는 국민타자. 인터넷 상에선 합법적 병역 브로커와 오푼이, 그리고 일본에서 부르던 애칭이던 승짱, 국민적 ( 敵 ) 일본어로 과녁을 뜻하는 '적'과 '테키'로 독음이 같다. 야갤에서는 여기서 파생해 읍민타자, 읍민적이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등이 있다. 시민타자라는 표현은 대구내에서만 응원하라고 비하하려고 부른거 같은데.. 엄밀히 말하면 맞는표현. 당시 대구 운동장은 대구로만 불렸지 타지 사람들한테는 정식 표현인 대구 시민운동장이라는 표현이 없었다. 말그대로 홈구장이 시민구장에서 원정경기보다 많은 홈런을 쳤으므로 맞는 말이다. 시민구장의 대표타자라고 하면 손색이 없다. 말그대로 이만수와 양준혁의 위에 올라가므로... 네이버에서 그의 선수 말년에 그의 안티들이 '개승삽'이라면서 비난하기는 했지만 그의 나이와 활약을 아는 삼성 올드팬들은 이승엽이 아무리 못하더라도, 절대로 그런 모욕적인 표현을 쓰지 않는다. 다만 이승엽의 전성기를 모르고 팬서비스를 중요시하는 삼성 뉴팬들에게 이승엽은 비교적 이미지가 좋지 않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덕분에 디시인사이드 국내야구 갤러리에서 "중요한 순간 꼭 2점을 뽑아준다"라고 하여 "이점엽"이라는 별명을 만들었다. 또한, 슬럼프도 없이 부진하지 않고 언제나 꾸준하게 좋은 활약을 펼친다고 해서 자칭 이름에다 호를 붙여서 "역시 이승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나씩 적어보자면 2000 시드니 올림픽 당시 일본과 치른 예선전에서 괴물투수로 불리던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상대로 2점 홈런을 날렸고, 동메달 결정전에서 또 다시 마쓰자카를 상대로 결정적인 2타점 2루타를 날렸다. 2006 WBC 때 도쿄돔에서 일본과 예선을 치르며 8회에 결승 역전 2점 홈런, 2Round 멕시코전에서 결승 2점 홈런,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일본과 치른 준결승전 당시 8회에 결승 역전 2점 홈런, 쿠바와 치른 결승전에서도 1회에 선제 2점 홈런 등 2와 인연이 깊다. 마지막 은퇴 경기에서도 1회 선제 2점 홈런에 2회 연타석 홈런까지.
또 다른 별명인 합법적 병역 브로커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이후에 붙은 별명이다. 이유는 지금까지 합법적으로 후배들에게 병역 특례 티켓을 쥐어준 것만 해도 엄청난 숫자에 이르기 때문. 2000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6 WBC 4강,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로 40명 정도의 선수들에게 병역 특례를 선물로 주었다. 자신은 팔꿈치 수술로 면제가 되었지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현하는 대인배적 면모를 보여준다. 2012년 국내로 복귀한 이후에는 기존 일본쪽에서 불리던 국민적 타자라는 걸 변형하여, 잘할 때부터 못할 때까지 처녀자리 초은하단적 - 국부 은하군적 - 은하적 - 태양계적 - 세계적 - 유라시아적 - 아시아적 - 국민적 -경상도적 - 대구시민적 - 수성구민적 - 읍민적 - 면민적 - 가정적 - 개인적 - 분자적 - 원자적 - 나노적 사실 이건 2ch 유저의 글이 원본이다. 최근엔 더 작아져서 힉스적 까지도 내려간다. 잘하면 갤럭시 타자가 되기도. 타자로 다양하게 변화하며 불린다. 하지만 타팀팬이라면 희화화 할 수 있겠지만, 삼성의 역사를 아는 삼성팬이 하는건 자살골이나 마찬가지다.
2000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을 침몰시킨 장본인도 다름 아닌 이승엽이였고, 2006 WBC에서 미국을 1회 초구 홈런으로 관광시킨 장본인도 이승엽이였다. 결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로 구성된 팀마저도 이승엽을 고의사구로 골라내는 하지만 이후 타석에 들어선 최희섭이 쓰리런 홈런을 날려버렸다. 굴욕을 맛봐야 했다. 일본에서 말하듯 정말 국민적인 타자.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칠고 터프한 스포츠 선수의 이미지와는 달리 사생활도 깔끔하고 신사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다만 2000년에 풍파를 불러온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건 때 아무런 일도 하지 않다가 뒤늦게 참여한 경력이 있어 이 때문에 이미지가 많이 깎이고 비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승엽이 선수협 파동 당시 만 24세였고 다만 그보다 불과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은 김재현, 심정수 등이 선수협에 참가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할 부분이다., 나이에 비해 한국 야구계에서 비중이 지나치게 무거웠던 관계로 당시 어린 이승엽이 옳은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며 특히나 당시 삼성 구단의 주장을 맡고 있던 사람은 선수협 오적으로 유명한 김기태였고, 당시 양준혁과 주먹다짐까지 벌여가며 삼성 선수들을 선수협에서 발을 빼도록 주도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게다가 삼성그룹은 무노조를 경영정책으로 내세워서 기업을 경영하는 걸로 유명하다. 이승엽의 참가는 무리였다는 점 때문에 비난 여론이 그리 많지는 않다. 실제로 선수협을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던 삼성 구단에서는 그 당시 이미 국민적 스타로 떠오른 이승엽에게 갖은 회유책을 썼으며 이승엽 본인도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모르겠다"라고 선배 선수들에게 울면서 통화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달리 정작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창립 당사자들이 이승엽을 옹호했었다는 점 절친한 선후배 관계였던 양준혁의 옹호야 그렇다 치더라도, 심지어 그 강병규조차도 이승엽에게 선수협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비난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을 감안하면 다소 무리가 있는 셈. 이 후 2001년에는 결국 단독으로 선수협에 가입했고 다만 이 당시에는 이승엽이 사실상 삼성 구단과 짜고 가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지만 선수협은 이 후 이승엽을 얼굴 마담으로서 활용했었고, 앞서도 말했듯 선수협 당사자들은 이 당시의 이승엽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 후로도 선수협과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 가입 당시 기사 [][][]
그는 이른 나이에 유명해져 데뷔 시즌까지만 해도 이승엽은 홈런타자 이미지가 적었다. 1990년대 말부터 급작스레 홈런타자가 된 것. 최정을 생각하면 가장 편하다. 나이가 들어서까지 대활약한 것으로 유명한데, 한국 나이 42까지 2할8푼에 20홈런.80타점을 기록했다. 다만 지명타자로 주로 출전해서 그런지 역대 20홈런 타자 중 WAR 최하위에 들기는 한다. 그러나 만 나이 41세 WAR 순위로 보면 위에서 순위권에 든다. 마지막 시즌은 왠만한 팀 6번에 갖다놔도 준수한 수준, 3년 후 기준으로 금강불괴라고 생각되었던 2020년 3살 연하였던 김태균과 동갑이었던 박용택이 얼만큼 출전했는지 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