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좋은, 훌륭한 뮤지션을 잃었다는 거... 너무 안타깝습니다." ( 2014년 신해철 사망 직후 )
조용필
대한민국의 前 가수, 싱어송라이터, 음악 • 음반 프로듀서, 라디오 DJ이자 사회운동가. 2014년 의료사고로 사망하였다.
의 리드보컬. 한국 대중음악사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인물로, 마왕이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져있다.
록 음악부터 시작해서 일렉트로니카 ( 테크노 ) , 재즈, 국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시도했고, 전공을 살려 일반적 대중가요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철학적 노랫말을 많이 지었으며, 평단의 호평과 함께 상업적으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둔 뮤지션이다. 또한 작사, 작곡, 편곡, 악기 연주는 물론 프로듀싱과 엔지니어링 및 음악 작업을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까지 한 만능의 뮤지션이었다. 또한 대한민국 컴퓨터 음악 ( 소위 미디 음악 ) 의 선구자 겸 개척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음악계의 피해자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문서 참조. 싸이, 서태지 등도 신해철에게 샘플러를 비롯하여 각종 미디음악 장비 사용법 등을 배웠다고 한다. 서태지의 경우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밝힌 것으로는 친척인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피디랑 싸우곤 하는 그의 악명 덕분에 무서워하며 찾아갔는데 의외로 따뜻하게 맞아주고 하나하나 성심성의껏 알려줬었다고 술회했다. 그걸 들은 유희열 역시 음악하는 후배들에게 너무 잘해줬었다고 맞장구를 쳤다.
1988년부터 활동했으며 데뷔 이후 30년이 넘도록 결론은 대부분 "현실은 시궁창", "우리는 스스로를 불행으로 몰고 가고 있다"로 귀결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초월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가 공존하긴 한다. 성드립이나 자조적인 블랙유머도 심심찮게 구사하는 편이다. 데뷔 10주년까지 나온 노래의 대부분은 위와 같으며, 데뷔 10~20주년 사이에는 진지하던 가사에 많은 공격성과 약간의 유머를 섞는다. 데뷔 20주년이 넘은 뒤에 나온 노래들은 대개 자조적 유머나 특정 세력을 향한 블랙유머가 꽤 있는 편이다.
본인이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인 FM 음악도시에서는 "시장"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이후 진행했던 고스트스테이션 및 팬들 사이에는 마왕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영어로는 보통 Demon Lord ( 데몬 로드 ) 로 []된다. 다만 마왕이라는 신해철의 별명은 고스트스테이션보다 훨씬 전인 1998년 6월 25일, 동아일보 25면의 기사에 이미 마왕이라는 별명이 언급되어 있다. 고스트스테이션 진행시에 본인 스스로를 '대마왕'이라고 칭하고, 청취자들을 '어둠의 아이들'이라고 칭했던 게 시초다. 당시 신해철의 미디어 노출이 적었던 시절이었기에 신해철의 팬들의 고스트스테이션 청취율은 상당히 높았고, 자연스럽게 팬덤 내에서도 '대마왕'이라는 호칭이 정착되어, 고스트스테이션 종방 후에도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 후 '마왕', '대뫙', '뫙' 등으로 줄여 부르는 팬들도 많이 있었고, 매스컴에서 '마왕'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면서 팬들 사이에서도 '마왕'으로 통일되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마왕이라는 별명은 지상파 TV 등지에서도 심심찮게 소개되곤 했다. 라디오와 전혀 상관없는 내용을 다루는 인터넷 기사에서조차 '마왕'이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기도. 사실상 마왕이라는 말은 현재 신해철의 호나 다름없다.
한편 신해철은 크롬 ( Crom ) 이라는 예명을 가지고 있는데, 올리버 크롬웰에서 따왔으며, 넥스트 4집~모노크롬 작업을 위해 영국에 체류하던 시절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그의 이름 대신 엔지니어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그래서 그의 트위터 계정도 Crom Shin.
가족 관계로는 1남 1녀 중 둘째이자 막내로 2살 위의 누나를 두고 있다. 친척이 많다고 한다. 아버지 쪽은 10남매 중 장남이고 어머니 쪽은 7남매다. 그래서인지 신해철 포함 자녀를 둘만 두었다고 한다. 평균 자녀 수가 4~5명인 1960년대 당시에는 많이 적은 편이었다. 그 당시엔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이니… 이후 신해철은 미스 뉴욕 출신의 방송인 윤원희와 결혼하여 마찬가지로 1남 1녀의 자녀를 두게 된다. 자녀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2살 터울의 누나-남동생 남매라는 점도 같다. ( 신하연 양 - 신동원 군 )
한편 신중현의 아들이나 신대철의 동생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다. 신중현의 아들인 신대철도 평산 신씨 34세손 '澈'자 항렬을 쓰다 보니 이러한 오해가 더 심해진다. 실제로 시나위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신대철이 록씬에서 맹활약한 덕에 같은 장르를 종사하는 신해철과 혼동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방송 관계자들 역시 이러한 혼동은 마찬가지인지라 실제로 신인 시절 음악 방송 녹화를 마치고 내려오는 신해철에게 PD가 "아버지 잘 계시냐"라고 묻고, 그가 지칭한 아버지가 신중현이라는 걸 알게 된 신해철이 "우리 아버지 아닙니다"라고 답했음에도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하라며 어깨를 두드리곤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담으로 신해철의 아버지는 약사였으며, 신해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신대철이 출연하여 둘을 혼동한 이야기 당장 2014년 여름 휴가를 떠난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대신 진행할 때 자신을 신대철로 부르는 청취자에게 "크, 게, 라디오를 켜고!" 드립을 치기도 했다.나 서로 의형제를 맺으면서 지낸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참고로 신해철 의료사고 사망사건의 발단이 된 것도, 신해철 사망 이후 신대철이 트위터로 매우 격노한 것부터 시작했다.
이외에 그가 신문에 연재했던 []를 참고하면 신해철이 어떠한 인물인지를 보다 더 잘 알 수 있다. 다만 해당 에세이가 1집 활동 중이었던 1990년에 연재되었다는 것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즉 데뷔한 지 채 5년도 안 된 그 당시의 신해철과, 대마초 사건을 한 번 더 겪고, 새 밴드인 넥스트와 비트겐슈타인의 해체를 겪고, 모노크롬으로 수준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고, 다시 넥스트를 뭉쳐 로열필과 협연하고 데뷔한 지 20주년이 넘었으며 ( 현재는 30주년 ) 사회운동가로서 발돋움했던 말년의 신해철과는 철저히 다를 수 있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에 남긴 에세이도 참고하면 좋다. [] 출처는 1998년에 출간된 라는 책인데, 당시 우리나라에서 무라카미 류가 화제가 되자, 류의 팬인 신해철이 그에 대한 생각을 에세이로 남긴 것이다. 글 내용에 그의 성장과정이 언급되어 있으며, 사회에 대한 관점도 엿볼 수 있다.
참고로 이 글을 발표한 후 신해철은 대마초 비범죄화를 주장했는데, 이 글의 내용에 비춰 보면, 대마초를 권장하는 의미의 비범죄화가 아니라,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자는 의미의 비범죄화임을 알 수 있다. 대마초를 경험한 동기는 환각 상태에서 음악이 어떻게 들리는지 궁금해서였는데, 창작에 있어서 큰 의미는 없다면서, 대마초가 합법화될지라도 자신은 절대 대마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넷 문화 초창기인 90년대 말, 2000년대에 등장했던 급진적인 네티즌들은 대마초의 효능, 효과를 강조하며 대마 합헙화를 주장하였으나, 이들과는 살짝 결이 다르며, 오히려 대마초에 대한 환상을 차단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오히려 고스트스테이션 등에서 평소 했던 발언들을 보면, 취한 상태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강력 비판하는 등, 의외로 보수적인 면모도 있었다. 술 먹고 개 되는 걸 알면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 남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그게 대마 흡입이든 음주이든 처벌하는 게 맞으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면 관대하게 넘어가자는 게 본인의 지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