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세자. 휘는 이선 ( 李愃 ) . 자는 윤관 ( 允寬 ) . 영조의 차남으로 어머니는 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이다. 정실 아내는 혜경궁 홍씨 ( 헌경의황후 ) 이며 그녀와의 사이에서 정조를 낳았다. 현대에선 아버지와 오랜 갈등 끝에 만 27세의 젊은 나이로 7월의 땡볕 더위에 쌀 담는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굶어 ( 아마도 탈수로 ) 죽은 것 ( 임오화변 ) 으로 유명하다. 영조가 늦은 나이 ( 42살 ) 에 얻은 아들로, 좋게 봐주자면 영조의 기대가 너무 커서, 나쁘게 ( 있는 그대로 ) 말하자면 감내하기 힘들 정도의 갈굼으로, 정신병을 얻어 기행과 비행을 일삼다가 결국 고통스럽게 죽었다.
원래 영조가 내린 시호는 사도 ( 思悼 ) 단 두 글자였다. 그러나 정조가 즉위하자마자 '장헌 ( 莊獻 ) '을 [올려] '사도장헌세자'가 되었고, 정조 7년 ( 1783 ) 에는 [추가]되어 '사도수덕돈경장헌세자'가 되었으며, 정조 8년 ( 1784 ) [], 다시 정조 18년 ( 1794 ) []를 올렸고, 한참 뒤인 철종 사도세자의 서출 증손자 5년 ( 1854 ) []를 더함으로써 최종적인 정식 시호가 '사도수덕돈경홍인경지장륜융범기명창휴찬원헌성계상현희장헌세자'로 길어졌다. 간혹 '장헌세자가 죽어서 '사도세자'라는 칭호를 얻었다'라는 말이 돌곤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장헌 ( 莊獻 ) 과 사도 ( 思悼 ) 둘 다 죽은 뒤에 붙은 시호이기 때문에 둘 중 어느 것을 써도 틀리지 않다.
고종 때 4대조인 양고조부로서 묘호가 '조 ( 祖 ) '로 격상되고 황제로 재추존됐다. 고종은 1863년 음력 12월에 즉위한 뒤에 사도장헌세자를 장종 신문환무장헌광효대왕 ( 莊宗 神文桓武莊獻廣孝大王 ) 으로 추존했고, 대한제국이 수립된 후에는 '장조 의황제 ( 莊祖 懿皇帝 ) '의 높은 시호로 황제로서 재추존했다.
조선 후기의 임금들 ( 정순헌철고순 ) 중 고종과 순종을 제외하고는 ( 이 둘도 법적으로는 사도세자의 후손이다. ) 모두 사도세자의 핏줄 ( 혈족 ) 이다. 사도세자 - 정조 - 순조 - 효명세자 - 헌종이 한 줄기, 사도세자 - 은언군 - 전계대원군 - 철종이 한 줄기. 고종은 인조에서 갈라져나온 줄기로 전 왕인 철종과는 무려 핏줄로 17촌 ( 거의 남남 ) 이다. 정리하자면 철종 이변 - 전계대원군 이광 - 은언군 이인 - 사도세자 이선 - 영조 이금 - 숙종 이순 - 현종 이연 - 효종 이호 - 인조 이종 ( 공통 조상 ) - 인평대군 이요 - 복녕군 이욱 ( 혹은 이유 ) - 의원군 이혁 - 안흥군 이숙 - 진사 이진익 - 이병원 - 남연군 이구 ( 군으로 봉작 후 이채중에서 개명 ) - 흥선대원군 이하응 - 고종 이형 이렇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