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제16대 임금. 본명은 이종. 조선왕조의 네 번째 반정인 인조반정으로 1차 왕자의 난 ( 태종 1398년 ) , 계유정난 ( 세조 1453년 ) , 중종반정 ( 중종 1506년 ) , 인조반정 ( 인조 1623년 ) 백부 광해군과 지지세력인 북인 ( 대북파 ) 일파를 축출하여 왕위에 올랐다.
아버지는 선조와 후궁 인빈 김씨의 5남인 정원군이며, 어머니는 연주군부인 구씨다. 선조는 또 다른 후궁 공빈 김씨에게서 임해군과 광해군을 낳았고, 늦게 맞이한 계비 인목왕후에게서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을 낳았다. 따라서 임해군, 광해군, 영창대군은 인조의 삼촌, 정명공주는 인조의 고모가 된다. 다만 선조와 인목왕후의 나이 차이가 하도 많아서 ( 32년 ) , 고모 정명공주와 삼촌 영창대군은 능양군보다 더 어렸다. 그리고 명목상 할머니인 인목왕후는 능양군보다 고작 11살 위였다.
정원군과 연주군부인 구씨의 장남 태어난 순서로만 보면 장남이자 적자는 인조, 차남이자 서자인 능풍군, 그리고 3남이자 적자인 능원대군, 그 다음이 4남이자 적자인 능창대군이다.으로 태어나 능양군 작호는 친어머니의 본관인 전라남도 화순군의 옛 고을인 '능주 ( 綾州, 현 능주면 등 화순군 서남부 ) '에서 유래했다. 형제들도 마찬가지.으로 책봉되었다. 원래 인조는 왕위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으나, 인조반정이라는 쿠데타 과정을 통해서 왕위에 오른다.
왕비는 두 명으로, 능양군 시절부터 함께 지내온 인열왕후 ( 仁烈王后 ) 와, 그녀가 1635년 늦둥이를 낳다가 사망하고 3년 후인 1638년에 간택된 장렬왕후 ( 莊烈王后 ) 이다. 장렬왕후는 인조가 사망한 뒤에 대비로서 자의대비로 불렸는데, 간택 당시 나이가 겨우 14세 ( 1624년생 ) 로, 명목상 자식인 효종 ( 1619년생 ) 보다도 5살 어렸다. 효종이 사망한 뒤 그녀의 입장을 두고 정치 격론이 벌어지는데, 이것을 예송논쟁이라고 한다.
인조의 집권은 실질적인 조선 제2왕조의 창건으로 평가된다. 조선후기 300년 간 진행된 제도개혁의 논의는 인조 시대에 시작되었으며, 왕통상으로도 인조 이후 즉위한 조선의 임금은 마지막 군주인 순종 순종은 인조의 10대손이자 인조의 3남 인평대군의 9대손이다.까지 모두 인조의 후손들이다. 다만 인조의 직계는 헌종-철종에서 끊겼으며, 고종은 인조의 삼남 인평대군의 후손이다. 일단 형식적인 양자관계를 따지면 왕통은 계속 이어지는 걸로 여긴다.
처음으로 청에서 시호를 받은 임금이지만 조선 조정은 조선전기와 마찬가지로 중국왕조에서 내린 시호를 받기만 하고 실제로는 중국과의 외교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는 부분적인 외왕내제의 정치를 이어갔다. 예시로 조선왕조실록의 표제를 살펴 보면 선조실록까지는 태조실록, 태종실록, 세종실록, 문종실록, 세조실록, 예종실록, 성종실록, 선조실록처럼 조선의 묘호 뒤에 명의 시호를 붙이는 방식으로 사용해 왔지만 인조실록부터는 청의 시호를 빼고 '인조대왕실록'과 같은 형식으로 조선의 묘호만 제목에서 쓰게 된다. 명의 시호를 받았지만 청에 복속한 뒤에 묘호가 주어진 정종실록도 앞표지에 '정종공정대왕실록'이라 안 쓰이고 '정종대왕실록'으로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