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역대 최강의 브루드 워 프로토스 선수로 평가받는다.
신예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으며 신예 시절부터 독보적으로 주목받았다 서술되어 있었으나 혁명 전의 김택용은 그저 유망한 선수일 뿐이었다. 프로리그에선 부진했던 선수였고 개인리그도 곰TV MSL 이전에는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16강이 전부인 소위 말해 포텐셜만 있는 선수였다. 스타일도 커세어 다크 체제는 3.3 혁명 때 갖추게 된 거지 이전에는 박지호 열화판이라 불리는, 준수한 외모를 가진 평범한 물량 토스로 평가받았다. MSL 로열로더 출신으로,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양대 개인 리그 ( , MSL ) 총합 3회 우승, 1회 준우승 참고로, 3회 우승, 1회 준우승 모두 MSL에서만 기록한 것이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선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을 기록하였고, MSL 금배지를 보유한 유일무이의 프로토스 게이머였다. 또 MSL에서의 프로토스 최후의 우승자, MSL 2연속 우승자 등의 기록으로 많은 팬들의 관심을 받는 게이머이다.
양대 개인 리그 7회 연속 예선 통과에 성공하면서 양대 개인 리그 최다 연속 예선 통과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종전 기록은 최연성의 6회 연속 본선 진출.. 김택용의 메이저 데뷔는 2006년이기 때문에 박성준의 기록보다는 포스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 그러나 김택용은 그가 데뷔한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곰TV MSL 시즌1 이후 본선 진출에 실패한 대회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 단 한 번 밖에 없었다. 17번의 대회 중 16번을 진출한 것은 분명 엄청난 기록이다. 1번의 탈락도 3.3 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신인 시절이다. 중간에 광탈하고 와일드 카드로 진출하기도 했지만, 주최 측에서 이전부터 공식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에어 스타리그 2011 오프 라인 예선 4강에서 탈락하면서 기록이 종료되었다. 그 외에 다른 기록들은 하단의 진 기록 / 명 기록 문서 참조.
2007년 3월 3일, 본좌#s-3의 시대를 종결시키면서 모든 스타 팬의 머릿속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킨 이 게이머는 그 이후로도 꾸준히 프로리그 에서 활약하였다. 특히나 프로토스의 저그전 극복 역사에서 그의 이름은 뺄래야 뺄 수가 없다. 그 후 시작된 택뱅리쌍의 시대에서도 다른 강자들과 함께 불꽃 튀는 승부를 보이며 스타판을 흥분으로 달구는 스타1 정상급 프로토스 플레이어로서 그 위치를 단단히 지켰다.
하지만 개인 리그의 성적 저하로 시작된 부진이 스타2 전환 후, 전체적인 실력 저하로 나타나면서 김택용은 점점 잊혀져 갔다. 프로리그에서 간간히 1승이라도 거두어 주면서 분전했지만 결국 격차를 따라잡기는 힘들었는지 2013년 9월 9일에 프로게이머 은퇴를 발표하였다. 갑작스레 은퇴를 선언한 허영무와는 달리 김택용은 기량이 상당히 떨어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은퇴를 납득하는 팬들도 많았으나 그래도 택뱅리쌍의 한 축을 이루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였기에 은퇴의 파장은 허영무 못지않았다.
은퇴 이후엔 아프리카TV 에서 스타크래프트 게임 방송을 진행하며 각종 리그에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