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농경지 된 줴영밭..성산읍 고성리 줴영밭(잃어버린마을) 터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1383 '마을 동산이 쥐 모양으로 생겼고 넓은 평원에서 주민들이 놀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성산읍 고성리 줴영밭(잃어버린마을) 터 위치 ; 성산읍 고성리 2060-1번지(서성일로1168번길21∼23) 일대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잃어버린마을 터 성산읍 고성리는 조선시대부터 정의현이었다가 정의면으로 이어져 오다 1933년 일제에 의해 성산읍으로 개칭되었다. 그 중심 지역인 고성리를 1구(현 고성리)와 2구(현 신양리)로 나누었다. 1934년에는 면소재지를 성산리로 옮겼다. 그것은 일본인 학교인 성산....... <img src="https://blogthumb.pstatic.net/MjAyNTA0MDdfNjUg/MDAxNzQzOTk1MjU0MDAx._tWmxG0copQPNhuUrFetnt50PlTIg7aKd7zaKpK4dFgg.6vBWlQ6HS7ta7LhKJmXkFoBxLhBw3_QbLHqKZWYSgq8g.JPEG/301383_290332_1859.jpg?type=s3" />
[향토문화] 새로 떠오르는 태양 같은 마을..성산읍 신양리 향사 터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301379 일제강점기 부녀자 대상 야학 열었던 곳..4·3때 구타·취조·고문하거나 총살 장소 성산읍 신양리 향사 터 위치 ; 고성리 539-5번지(섭지코지로26번길19)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학살 터 신양리는 고성리에 사는 주민 일부가 고기잡이나 해녀 일을 하기 위해 움막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설촌된 마을이다. 해산물이 많이 나고 살기에 편하니까 사방에서 몰려들어서 마을이 커졌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 정의면 고성리에 속한 하나의 작은 마을이었다가 1933년 고성리 2구로 분구되었다. 방뒤, 방두포(房斗浦)로....... <img src="https://blogthumb.pstatic.net/MjAyNTA0MDRfMjQ0/MDAxNzQzNzI1MDUyNjk3.NQzx2RTFT4ea2l7e_6dQ8tNEDChW1B642pBIwAf4tk0g.HnIV-BdqQYn9rrqdNP5wQGFxBcQsBeZRQ4nF32lbbuQg.JPEG/301379_290309_1617.jpg?type=s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