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 대전 당시 M4 셔먼 중형전차를 대체하기 위해 미 군수부에서 시작된 프로젝트. 하지만 개발하면서 발생한 문제점들과 수뇌부의 오판 등으로 양산이 미뤄지는 등 많은 일을 겪은 후 양산형인 M26 퍼싱에 도달하기까지 개발된 프로토타입 시리즈.
M4 셔먼을 대체하기 위한 계획은 셔먼의 본격적인 대량생산 시작 이후 등장한다. 더 나은 성능의 전차가 필요했던 전선에서의 요구사항을 토대로 프로토타입의 개발이 시작된다. 그러나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독일의 3, 4호 전차들과 극소수의 티거들을 상대로 셔먼의 훌륭한 셔먼은 첫 등장 당시 의외로 중장갑 전차였다. 기존의 주력전차로 셔먼을 격파할 수 없었던 독일 아프리카 군단은 88mm 대공포까지 동원해서 파괴할 정도였다. 전과를 보고받은 수뇌부는 75mm 주포의 성능이 충분하다고 판단, 무장과 장갑 강화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다. 이는 북아프리카라 전선의 특수성을 파악하지 못한 수뇌부의 큰 오판으로, 이후 유럽으로 넘어간 연합군 전차병들이 줄줄이 희생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러한 삽질이 계속되는 와중에 트라이던트 회담 ( 1943년 5월 25일 ) 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날짜가 잡히게 된다. 전선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던 높으신 분들은 신형 전차가 D-Day전에 완성되기 힘들 것으로 판단되자, 신형 주포인 76mm M1만 상륙작전 전인 1943년 6월부터 셔먼에 T23의 포탑을 장착하여 양산 준비에 들어가 1944년 1월 양산을 시작했고 ( E6셔먼 ) , 90mm M3 대전차포를 탑재한 대전차 자주포도 생산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둘 다 대서양을 건너면서 D-Day를 놓쳐 버려, 영국군의 전차들과 미군의 셔먼들은 75mm 주포를 장착한 채로 독일전차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장착한 신형주포는 시원치 않았고 기존의 75mm 주포보다 성능이 나았지만, 티거나 판터등 독일의 중 ( 형 ) 전차를 효과적으로 파괴하기 위해서는 근접사격을 해야 했다., 90mm 대전차 자주포는 자주포의 한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90mm 장착 전차에 대한 전선에서의 요구가 쇄도하여 T26E3를 M26 퍼싱으로 선정하고 양산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많았고 전쟁이 끝나서 까지 해결을 지속하여, 추중비는 M46, 기동 신뢰성은 M47, 연비는 M60에서 해결하게 된다.
T20부터 T27이 있지만 차이점이 별로 없어 한 곳에 서술한다. 특징으로는 세계 최초로 T20 프로젝트에서 엔진과 변속기가 합쳐진 파워팩을 사용했으며 실전배치한 전차는 T26E3 ( M26 퍼싱 ) 이다. [관련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