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8월 7일에 데뷔한 대한민국의 7인조 보이밴드이다.
2015년, 13년 만에 드디어 7명의 완전체로 재결합했으나 이후 다시 사실상의 무기한 활동 중지에 들어갔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후술.
DSP 미디어에서 기획된 팀으로 SM엔터테인먼트에서 기획한 H.O.T.에 맞서 젝스키스를 만들었고 S.E.S.에 맞서 핑클을 만들었듯이, 클릭비는 신화의 라이벌 격으로 만들었던 그룹이다.
이른바 'SM+1'이라 하여 젝스키스가 6명 ( H.O.T.+1 ) , 핑클이 4명 ( S.E.S.+1 ) 으로 멤버를 구성했듯이, 클릭비 역시 7명 ( 신화+1 ) 으로 멤버를 구성했다.
팀명의 뜻은 성공, 히트하다, 의기 투합한다라는 뜻의 Click과고 Band, Boy's, Best 등 B로 시작하는 여러 긍정적인 낱말의 이니셜이다.
한국식 아이돌 밴드의 원조라고 볼 수 있는 그룹으로, 초기에는 기타, 드럼, 베이스 기타, 키보드#s-2가 모두 갖추어진 밴드의 형태를 띠고 락과 댄스가 조합된 음악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악기 파트를 맡지 않은 멤버는 에반이 유일하며 메인 보컬과 댄스 or 퍼포먼스만 소화했다.
이후 3명의 멤버가 탈퇴하면서 음악적 전환이 불가피해 지자 4집 이후부터는 밴드 없이 댄스 그룹으로만 활동했다. FT아일랜드나 CN BLUE가 나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아이돌 밴드에 대한 평가가 대체로 그러하듯, 이들 역시 실력은 준수했으나 활동에 있어 진정성을 의심받기도 했다. 악기 연주를 제대로 할 줄도 모르는 애들이 어설프게 흉내만 낸다는 비난과 비아냥이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하지만 클릭비 활동이 중단된 이후에도 개인적으로 밴드 활동을 이어가거나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해나가는 멤버들의 행보들을 보면 멤버 본인들은 악기 연주와 무대에 생각보다 훨씬 진지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노민혁은 1990년대 중반부터 기타 신동으로 유명세를 탈 정도로 수준급의 기타 실력을 갖고 있었고, 노민혁과의 연으로 합류한 하현곤도 클릭비에 합류하기 전부터 이미 수준급의 드럼 실력을 갖춘 드러머 지망생이었다. 특히 하현곤은 드럼 이외에도 기타와 피아노 연주도 가능하다. 즉, 클릭비는 기획형 밴드 아이돌이긴 했지만, 팀 내에 밴드 사운드의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실력을 갖춘 멤버가 있었다는 소리. 실제로 노민혁과 하현곤은 해체 후 각자 밴드를 새로 꾸리거나, 싱어송라이터 형태로 활동하면서 지금까지도 악기를 놓지 않는 진지한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당시 1세대 아이돌 중에서는 멤버들의 평균적인 비주얼이 가장 준수했던 팀으로 평가받고 있다. 클릭비는 7인체제 밴드로 시작해서 꽃미남 아이돌로 팬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7인 체제 밴드와 댄스의 조합. 그리고 예능이면 예능. 얼굴이면 얼굴. 노래. 춤 모든 게 완벽했기에 많은 소속사들의 경계대상이었으며 특히 H.O.T.의 토니 안은 클릭비를 처음 봤을 때 어떻게 저렇게 예쁘고 잘생긴 애들로만 7명을 모아놨는지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과거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특이사항으로는 방송국에서 동시간대 예능은 허용이 안됐으나 유일하게 클릭비만 허용이 되었던 적도 있다. 그리고 4인 체제의 첫 앨범 4집 로 활동할 당시 NRG와 라이벌 기믹이 섰다. 2003년 NRG와 예능 '용호상박'을 함께했다. 이때의 인연으로 아직까지 클릭비와 NRG의 멤버들끼리 친한 모습을 종종 보여주곤 한다.
공식 팬클럽의 이름은 니지 ( 虹 ) .
일본어로 '무지개'라는 뜻으로 멤버가 일곱 명이라 그에 맞게 지어졌다.
풍선 색은 초록색이다.
여담으로 노민혁을 제외한 멤버들 모두 여동생이 없다.
클릭비는 사실 활동 당시보다 해체한 뒤 더욱 노래가 인정받은 케이스다. 활동 당시에는 아이돌이라는 한계로 인해 그들의 음악성과 무대에 대한 비아냥들이 많았으나 이후 작곡가 주영훈은 복면가왕에 오종혁이 나오자 클릭비가 여러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노래들을 했던 그룹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심폐소생송에 완전체로 등장했을 때는 대선배인 가수 이현우가 이들은 춤과 밴드를 합친 정말 파격적이고 도전적인 음악을 했던 재미있고 매력 있는 팀이었다고 극찬을 했다.
비를 누른 가수라 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