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일본 야마타이국의 여왕. 중국의 사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과 한국의 사서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만 등장하고 정작 일본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으며 일본 국내에서 전해지는 왕계와도 일치하지 않아 그 정체에 대해 여러 설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식 한자 독음으로 '비미호'라 읽는데 이쪽 이름도 자주 사용된다 ( 동명의 웹툰 '비미호'도 있었다 ) .
其國本亦以男子爲王, 住七八十年, 倭國亂, 相攻伐歷年, 乃共立一女子爲王, 名曰卑彌呼, 事鬼道, 能惑衆, 年已長大, 無夫壻, 有男弟佐治國. 自爲王以來, 少有見者. 以婢千人自侍, 唯有男子一人給飮食, 傳辭出入. 居處宮室樓觀, 城柵嚴設, 常有人持兵守衛.
그 나라 ( 왜 ) 는 본래 또한 남자를 왕으로 삼았는데, 70 ~ 80년을 다스리다가 왜국에 난이 있어/왜국이 어지러워져서 서로 공격하고 정벌하여 오랫동안 서로 싸웠다. 이내 함께 한 여자를 왕으로 세우니, 이름을 히미코라고 한다. ( 그녀는 ) 귀도 ( 鬼道 ) 를 섬기고 사람들을 혹하게 했고 나이가 이미 오래 되었는데 남편이 없고 남동생이 있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돕는다. 왕이 된 이후로 본 적이 있는 자가 적었다. ( 여자 ) 시종 1,000여 인으로 하여금 시중 들게 하며, 오직 남자 한 사람만이 음식을 공급하면 말을 전하여 드나든다. 사는 곳은 궁실과 누각이고 성책을 삼엄하게 둘렀는데, 항상 병사를 두어 지키게 하였다.
ㅡ 삼국지 위서 동이전 왜인조
삼국지 동이전의 기사를 옮겨 실은 것을 제외하면, 이외에 딱 한 군데에서 히미코에 대한 기사가 현전한다. 참고로 한길사판 이강래 역주 삼국사기는 이 기사에서 '卑彌乎'를 그대로 '비미호'라고 번역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문서에서 말하는 '히미코'에 익숙하고 일본어 독법을 잘 모른다면 헷갈릴 수 있다.
二十年 夏五月 倭女王卑彌乎 遣使來聘
( 아달라 이사금 ) 20년 ( 173 ) 여름 5월에 왜의 여왕 히미코가 사신을 보내와 예방하였다.
ㅡ 삼국사기 아달라 이사금 본기
이 기록을 둘 다 신뢰한다면, 히미코는 173년 이전에 왕 자리에 올라 약 70여 년간 일본을 통치했다. 그러나 사학계에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기록된 사건은 설령 사실이라도 사건이 일어난 연도는 오차가 있는 것이 많다고 보는 시각이 많아서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은 삼국사기 초기기록이 비현실적이거나 외국 기록 및 고고학과 맞지 않는 부분을 지적하며 초기기록의 신뢰성 자체를 부정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연구가 축적되면서 다른 사료나 고고학과의 교차검증이 되는 부분도 계속 드러났고 그럼에도 100% 정확한 것은 아니었기에 수정론이 대세가 되었다. 173년의 외교사절 파견이 반드시 173년이라는 보장은 없다. 송나라 대 『태평어람』에 실려 있는 위략의 기사에 따르면 왜국 내의 전쟁은 광화 연간 ( 178 ~ 184 ) 에 있었다고 하므로, 히미코의 즉위 시점이 이보다 늦었을 수도 있다. 이후 위 명제 연간인 경초 ( 景初 ) 2년 ( 238 ) 에 나시메, 츠시고리 등을 사신으로 보낸 것을 시작으로 중국에 조공하여 유명해졌다가, 정시 ( 正始 ) 8년 ( 247 ) 에 죽었다.
正始 … 其八年 … 卑彌呼以死, 大作冢, 徑百餘步, 狥葬者奴婢百餘人. 更立男王, 國中不服, 更相誅殺, 當時殺千餘人. 復立卑彌呼宗女臺與/壹與, 年十三爲王, 國中遂定.
정시 8년 ( 중략 ) 히미코가 죽자, 크게 무덤을 만들었는데 지름이 100여 보이고 노비 100여 명을 순장했다. 다시 남자 왕을 세우자, ( 왜 ) 국 내에서 복종하지 않아 다시 서로 죽였는데 당시 죽인 사람이 1,000여 명이었다. 다시 히미코의 종녀 토요 ( 臺與 ) /이요 ( 壹與 ) 를 세웠는데 13살에 왕이 되었다. ( 그러자 ) ( 왜 ) 국이 따라 안정되었다.
묘사로 보아 히미코는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왜인들을 이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인 통치는 그녀의 남동생이 대리한 것으로 보이지만 히미코의 권위는 후에 남성 왕이 세워지자 다시 난리가 일어났다가 여왕이 세워지자 진정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남성은 대체할 수 없는 권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그녀는 여러 국가들의 합의로 '함께 ( 왕으로 ) 세웠다 ( 共立 ) '고 하므로, '왜국'은 단일체가 아니라 일종의 연맹체적인 국가였을 것이다.
왜국 중에는 대마국부터 시작하여 9개국이 그 경로가 상세히 나와 있고, 21개국이 이름만 나열되어 있으며, 좀 멀리 떨어진 곳에 4개 국가가 존재하고 있다. 이 중 보통 앞의 30개 국가 중 29개국이 여왕국 ( 女王国 ) 휘하에 속한 것으로 본다. 히미코가 중국에 접촉을 시도한 것은 왜 30국 중에 유일하게 여왕국에 저항하던 남쪽 쿠나국 ( 狗奴國 ) 과의 대립 때문으로 보이는데, 중국에서는 당시 기리영 전투 등으로 마한을 패퇴시키는 등 동방 지역에 대해 적극적인 군사 정책을 펴고 있었다. 이때 히미코는 중국에게서 솔선중랑장 · 솔선교위 등의 직위를 얻어내고 황색 깃발 등을 받았다고 하여 군사적 권위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