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신그룹 창업주이자 학교법인 광신학원 - 흥한재단 전 이사장, 일제강점기 조선 최고의 거부로 불렸던 사람, 다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 유명한 ( ... ) 이완용이 300만 원대의 자산가로 2위였으며 휘문고등학교 설립자이자 남이섬 소유자인 민영휘가 6000만 원의 자산가로 1위였다. 이 둘은 1930년대에 사망한 이들이니 1940년대가 된 후에는 박흥식의 순위가 높아졌을 법도 하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체포 대상 1호로 잡은 친일 기업인. 3개월 만에 석방된 후 독재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독점재벌로 군림했지만, 이 사건을 기점으로 박흥식의 몰락이 시작된다. 단 친일인사는 맞으나 엄밀히는 반민족행위자는 아니다. 딱히 식민지배하 조선인을 괴롭혔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으며 그의 행적은 광복 이후 시점에선 그냥 전범부역자로서 미군의 적이었을 뿐 민족을 탄압한 역적이라 보긴 힘든 인물.
민족자본에 의해 최초로 설립된 백화점이며 일제 시기를 다룬 시대극에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화신백화점 조선인 최초의 근대건축가로 불리는 박길용이 설계한 기념비적 건물로서 그대로 존치하자는 의견도 소수 있었으나 당시는 근대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고 등록문화재같은 제도도 없던 시절. 때마침 종로 도로 확장계획이 맞물려 1987년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는 종로타워가 들어섰다.이 바로 이 사람 소유였다. 백화점 뿐만 아니라 당시로서는 큰 규모인 전국 350개의 체인점을 운영하는가 하면 해외무역을 시도하는 등 그야말로 조선 반도의 유통업을 지배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는데, 물론 이러한 승승장구는 허가제 등을 적절히 활용한 조선총독부의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시 말해 매판자본가였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