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에 대한 믿음, 할 말은 하는 용기
아침의 베스트셀러, 조선일보. 2020년 창간 100주년을 앞두고 2019년부터 밀기 시작한 홍보 멘트이다.
대한민국의 조간 일간 신문. 강경한 보수 우파 반공주의 성향의 신문사이다. 한국의 보수 우파 신문 3대장인, 이른바 조중동 중에서 언제나 첫 번째로 꼽히는 언론이다. '조중동' 용어에 대해서는 나 먼저 원리에 따라 중앙일보에서는 굳이 그렇게 불러야 할 일이 있다면 '중조동', 동아일보에서는 '동조중'이라고 애써 자기들끼리 부르긴 한다만, 사람들은 그냥 늘 조중동이라고만 부른다. 실제 언론사 자체적으로도 보수주의 2019년 12월 21일 사보에서 방상훈 사장이 신년사에서 조선일보를 "보수 언론"으로 언급한 내용이 있다.[] 성향을 표방한다. 1920년 일제강점기 중 소위 문화통치 시기에 언론 탄압이 완화되었을 때 탄생하여, 2020년 3월 5일 창간 100주년을 맞이하였다.
2019년도 한국 ABC협회 유료부수 통계에서도 2위 동아일보와 상당한 격차를 벌린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전국 각 지역별로도 부산일보가 1위인 부산광역시와 매일신문이 1위인 대구광역시를 제외한 모든 시도 지역에서 일간지 유료부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나마도 부산과 대구에서도 조선일보가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후술된 내용이나 신문 항목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렇게 알려진 유료부수나 발행부수의 대부분이 뻥튀기 부수인 것은 이미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물론 업계 모든 회사들이 뻥튀기 부수이기 대문에 상대적인 순위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절대적인 부수 규모 자체는 알려진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어쨌든 1970년대 말 발행부수 1위를 기록한 이래로 줄곧 발행부수나 유료부수가 제일 많으며 한국 ABC 협회 기준 2019년 ( 2018년 조사 ) 유료부수 119만 부, 23개 신문사 중 1위, 따라서 적어도 신문사 가운데에서는 가장 큰 매체 영향력을 발휘하는 언론이기도 하다. 그래서 늘 스스로 '1등 신문'임을 내세운다. 물론 2000년대 후반부터는 점차 신문 자체가 사양산업으로 접어들기 시작했고, 매체로써의 신문 영향력 또한 급격히 쪼그라드는 세상이 된 터라, 과거처럼 '신문 중의 영향력 1위'가 더이상 '언론 중의 1위'가 아니게 되었다. 일례로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매년 조사하여 발표하는 '언론수용자 조사' 통계를 보면,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조선일보가 모든 매체를 통들어 영향력 및 신뢰도 조사 모두에서 줄곧 3위 안에 꼽혔으나, 2020년 현재 통계 기준으로 보면 여러 지상파 채널 및 종편과 포털 사이트에 밀려 영향력 및 신뢰도 조사 순위 모두에서 10위로 추락했다. 과거에는 '신문사 기자가 진짜 기자이지, 방송사 기자는 기자도 아니다'는 말이 언론계에서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방송의 영향력이 신문을 압도한 지가 한참 오래되었고, 기자 지망생들 조차 기왕이면 방송사 기자를 하려고 하지, 굳이 신문사 기자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과거 한 때는 '중앙 일간지 소속 기자'라는 명함만으로도 큰 힘을 발휘하는 세상이었지만, 지금은 조중동에 합격한 신입 수습기자들이 방송사에서 동시에 합격 연락이 오면, 죄다 신문사를 버리고 냉큼 방송사로 달려가는 분위기가 정착된 지 이미 오래이다.
박정희의 집권 시기인 1960~70년대에는 동아일보와 같은 독보적인 1등 신문은 아니었지만, 박정희 정권과 깊게 결탁하는 한편 1960년대 후반, 조선일보가 코리아나 호텔을 지을 때 일본으로부터 약 400만 달러에 달하는 상업차관을 들여온 사건이 있었다. 당시 400만 달러라면 굉장히 큰 돈이었는데, 시중 은행의 금리가 연 26%일 때, 조선일보가 부담한 금리는 겨우 7%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이 조선일보에 엄청난 특혜를 준 것이다., 이를 통해 마련한 자금력을 동원하여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 동아일보에 버금가는 위치를 공고히 하게 된다. 이후 조선일보가 본격적으로 급성장하게 된 계기는 전두환의 집권과 제5공화국 시기로 볼 수 있다. 12.12 쿠데타 이후에는 전두환 신군부에 적극 영합하면서 피해를 보지 않았고, 언론통폐합의 설계자인 허문도가 조선일보 출신이었던 덕을 보았다. 또한 중앙일보나 동아일보와는 다르게, 조선일보는 당시 방송사업에 진출하지 않은 상태였던 터라 방송사를 빼앗길 꺼리도 없었다. 조선일보는 80년대 전두환 정부 시기에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할 수 있었다. 심지어 당시 조선일보 사장이던 방우영은 전두환이 집권을 위해 만든 초법적 통치기구인 국보위에 입법위원으로 참여하며 노골적으로 결탁했을 정도였으며, 특히 전두환이 집권을 눈앞에 두었던 시기인 8월 23일에는 그 유명한 '인간 전두환 -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의 행동'이라는 용비어천가급 [기사]를 쓰며 전두환에 대한 우상화 작업에 전력을 쏟았다. 원래 이 기사는 조선일보의 기사 라이브러리에서 아주 오랫동안 삭제되어 있었는데, 창간 100주년 기념으로 조선일보가 자체 아카이브를 '조선 뉴스 라이브러리 100'으로 개편하면서 비로소 공개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몇몇 언론 비평지나 언론 비평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 직접 국회도서관에 가서 해당 기사에 관한 마이크로 필름을 열람한 후 썼던 분석 기사를 통해 공개되어 있었다. 또한 조선일보가 80년대에 급성장 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언론통폐합 이었는데, 당시 조선일보의 주요 경쟁지인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방송사를 KBS에게 강제로 헌납했고 한국일보 역시 자매지인 서울경제신문의 사업을 접어야하는 등 모두 언론통폐합으로 엄청난 재산을 뺏긴 반면, 조선일보는 일부 개혁 성향의 기자들만 해직시키는 선에서 처리했고, 전두환 정부에 깊이 참여하는 등 5공과 지속적 동반자 관계를 형성해 압도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전성기는 1990년대로 꼽을 수 있는데, 1987년 6월 항쟁으로 언론 자유화가 되고 지면 제한이 없어지자 의욕적인 확장에 나서서 발행 부수가 200만 부를 넘겼고 여기서 감안할 점은 온갖 사은품에 전단지 수준으로 뿌려대서 유료부수 규모의 거품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실상 대한민국 신문들은 진보-보수나 좌우파를 떠나, 사실상 구독료 수입이 아닌 기업 광고료 수입으로 먹고 살다보니, 각종 사은품은 물론이고 1년치 구독료 공짜 서비스도 충분히 가능할 정도로 마구 무가지를 뿌려대는 수준이다. 이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대형 족벌 언론이나, 매일경제신문이나 한국경제신문 같은 경제신문들이 특히 심각하다., 보수 정치권이나 경제계와 결탁하여 촘촘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한편, 당시 폭발적으로 팽창하던 미디어 광고 시장의 수혜도 톡톡히 누렸다.
또한 1987년 민주화 직후부터 1990년대 초중반기에 걸쳐 김대중을 적극적으로 비토해서 反DJ 정서를 고착시키는 한편, 1990년 3당 합당과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김영삼을 적극적으로 편들어 준 뒤,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써 매체 영향력을 입증하며 승승장구했다. 특히 당시 조선일보의 논조는 제14대 대통령 선거 직전에 터진 초원복집 사건 관련 보도 사례에서 단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심지어 정치 권력을 옹립하는 기능으로써의 거대 언론 권력이 최초로 부각된 사례가 김영삼 정부와 조선일보의 결탁이었다는 분석이 이후 언론학계에서 나올 정도였다. 조선일보는 민주화 이후로도 노동운동이나 민주화운동가에 대해서 부정적인 논조를 보여왔고, 김대중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보도를 많이 내놓았지만 김영삼과는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김영삼은 언론을 대하는 데 능숙했고, 또 그가 이끄는 상도동계는 민주화 진영임에도 조선일보와 유사한 보수 우파 성향을 가졌기 때문에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덕분인지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김영삼 대통령 당선자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바로 다음날 서울 흑석동에 있는 조선일보 방우영 회장의 집을 방문하여 만찬을 함께 하기도 했다. 당시 조선일보가 가졌던 막강한 권력을 보여준 단적인 장면이었다. 사실 언론들이 자신의 성향에 따라 특정 세력과 결탁하거나 특정 정치인을 밀어주는 건 다른 언론들도 비슷한 처지이다. 말하자면 조중동은 전통적인 보수정당 세력을 노골적으로 밀어주고, 한겨레나 경향신문의 경우에는 민주당계 정당을 의식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비민주당계 진보정당 세력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다가 이 시기는 언론 통제도 누그러질 때라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도 덤이었다. 물론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도 같이 200만부를 넘겼기 때문에 혼자 독주를 하지는 못했지만 전통적으로 볼 때, 조선일보는 반공주의와 안보 체제를 내세우는 '이념 보수', 중앙일보는 삼성그룹 계열 언론라는 태생적 특성에 기인한 탓에 경제적으로 보수적인 노선을 걷는 '시장 보수', 동아일보는 상대적으로 민주당계 정당을 밀어주는 개혁 성향의 신문으로 분류되곤 했다. 다만 중앙일보는 언론 통폐합의 영향으로 87년 민주화 이후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 정책에 부정적인 스텐스를 보이긴 했으며, 한편 동아일보는 2000년 즈음을 기점으로 완연한 보수 언론으로 변모하여,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이른바 조중동 체제가 완성된다. 한편 한국일보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여러 논조와 색채가 뒤섞인 신문이었다., 어쨌든 영향력으로나 매출액으로나 이때 만큼의 전성기는 없었다. 사실 이 전성기 시절에도 조선일보가 능력있는 기자들을 많이 보유했던 것과는 별개로 오보를 많이 냈던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어쨌든 시간이 훌러 1997년 대선에서도 조선일보는 이회창과 이인제를 놓고 이회창을 선택했고, 한동안 이인제가 승승장구해서 지지율이 이회창을 크게 앞섰을 때에도 중앙일보와 합작해서 이회창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기도 했지만, 일례로 1997년 당시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둔 상태에서, 조선일보 사옥 근처에서 조선일보의 편파 보도에 관해 항의 시위를 하는 새정치국민회의와 국민신당 선거 운동원들을 향해 조선일보의 김대중 주필이 술에 잔뜩 취한 채로 손가락질을 하며 "국민회의, 국민신당. 까불지 마. 내일 모레면 너희들은 다 죽은 목숨이야."라며 주정을 부렸던 사건은 유명하다. IMF 외환위기가 한창 닥쳐왔던 때라서 표 분산을 완전히 막지 못한 채로 결국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발행부수가 200만부를 여전히 넘을 정도로 영향력이 강했기에 국민의 정부를 적극적으로 견제하고 비토하는 역할을 담당했고, 2001년부터는 동아일보도 보수 진영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며 이른바 조중동 3사가 전부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총재이자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을 밀어주는 스탠스가 되었다.
조중동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널리 정착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절정에 이르렀던 2001년에는 발행부수가 248만 부에 달했고,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을 당선시키지는 못했지만, 이후 각종 이슈를 만들어내면서 정말 별볼일 없는 일로도 참여정부를 까댔다. 물론 보수층들에게는 잘 먹혔으며 진보언론도 참여정부를 깠던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효과는 배가 되었다. 참여정부의 지지율을 하락시켰으며,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 이후로는 박근혜를 밀어주면서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데 공을 세웠고, 종편 출범 이후부터는 TV조선도 50대 이상 보수층에게 꽤나 강력하게 어필하면서, 여전히 종이신문 자체 발행부수에 비해 보수층에서 만큼은 높은 매체 영향력을 행사했다.
조선일보 전성기의 마지막 시점은 대략 2000년대 초반 즈음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일례로 2001년에 조선일보 편집국장에 취임한 변용식 기자가 어느 인터뷰에서 ["전국 국민의 4분의 1이 같은 시간에 조선일보 기사를 본다"], "영향력 면에서 정치권력을 능가한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하여 구설에 오를 정도였으며 언론수용자 조사 기준으로 보면, 2000년 당시에는 1주일에 최소 하루 이상 종이신문을 보는 국민의 비율, 즉 신문 열독률이 81.4%였고, 가구별 신문 구독률도 52.3%였다. 다시말해 시민들 대부분이 매일 신문을 읽는 시대였던 것이다. 특히 종이신문 중에서도 조선일보는 단연 독보적인 선두주자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2020년 조사 기준으로 보면, 신문 구독률은 6.3%이고, 열독률도 10.2% 정도밖에 안 되며, 특히 매일 신문을 읽는다고 답변하는 사람은 심지어 불과 1.1%밖에 안 된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각종 언론 비평에서 '천만 독자 조선일보'라는 표현이 간혹 등장할 정도였다.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 초고속 인터넷과 컴퓨터의 보급이 점차 이뤄짐에 따라 언론매체의 환경 또한 온라인으로 점점 이동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0년대 후반부터는 스마트폰의 급격한 보급과 함께 통신 환경 또한 모바일 위주로 급변하기 시작하면서 신문 구독률이나 열독률이 급락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조선일보의 매체로써의 영향력도 함께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단적인 예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조선일보가 기사를 쓰면 여론이 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였지만, 세월이 흘러 현재는 조선일보가 1면에 뭘 쓰든, 사설에 뭘 쓰든 여론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특히 2010년대 중반 이후 부터는 매체 영향력의 확연한 축소세와 더불어 취재력의 한계 또한 뚜렷하게 관측되는데, 이는 종이신문 산업 전체의 영향력 축소와도 직접적으로 결부된 것으로 보인다. 발행부수나 유료부수 집계는 신문 업계에서는 이미 가짜 유료부수 만들기로 허수와 다름 없이 인식된 지도 오래이고, 조선일보의 유료부수도 대외적으로 알려진 약 120만 부 정도와는 다르게 100만부 밑으로 떨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 ABC 공사에서 발표하는 유료부수는 신문대금의 45%만 지불해도 유료부수 1부로 집계해 주고, 짧은 집계 실사 기간동안 신문 사측에서 보급소로 강제 밀어넣기 영업을 통해 유료부수를 부풀리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에, 발표 자체의 공신력이 없어진 지 오래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일례로 종이신문의 가구 구독률이 약 60% 가량 되던 2000년 경 조선일보의 유료부수가 약 200만 부였는데, 종이신문 구독률이 6.3%로 떨어져 종이신문 구독률 자체가 과거에 비해 약 10분의 1 수준이 된 2020년에 조선일보의 유료부수가 약 119만 부로 발표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 이에 대해서는 급격히 줄어든 가구 구독 대신 영업장 구독 회사, 사무실, 가게, 관공서 등 쪽에 집중하여 유료부수 숫자를 어느 정도 방어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지만, 영업장 구독 확대를 통한 부수 방어에도 한계가 있고, 또한 영업장 구독은 그 특성상 신문 독자가 제대로 특정되지 않기 때문에 매체의 집중도와 독자에 대한 영향력이 매우 미약해지므로, 줄어든 유료부수나 구독률보다도 훨씬 더 매체 영향력이 더욱 쪼그라들었다는 것이 중평.
실제 조선일보의 매체 영향력 상실은 객관적인 통계 자료로도 입증되는데, 단적으로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매년 수행하는 언론 수용자 조사의 결과를 보면, 2010년의 신문 열독률 조사 "지난 1주일 동안 ( 하루 이상 ) 읽은 종이 신문은 무엇입니까?"에 대한 응답에서 조선일보의 열독율이 17.7%로 조사 되었던 것이, 10년 후인 2020년의 조사에서는 3.2%가 나왔다. 10년 만에 열독률이 5분의 1 이하로 급락한 것이다. 물론 이는 종이신문 산업 전체가 쪼그라들어서 그런 것인지라 모든 신문사가 전반적으로 비슷한 비율로 열독률이 줄어든 것인데, 특히 종이신문 업계 선두주자이던 조선일보는 열독률에 관한 절대 수치에서 매우 큰 타격을 입었다.[] 2016년 제20대 총선,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로는 2010년대 전반기에 비해서도 영향력이 크게 줄어든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는 평이 많으며, 즉, 영향력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더라도 힘이 크게 약해졌다는 것이다. 19대 대선을 앞두고 주요 언론사들이 안철수를 밀어주었지만 정작 안철수가 토론회에서 초보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결과적으로 3위에 그치면서 언론사들의 영향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을 반증해버린 셈이 되었고 그 덕택에 자연스레 영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조선일보가 이회창을 당선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1.6%P, 2.3P 차이로 석패한 것이라 영향력은 유지할 수 있었던 데 반해서, 보수언론-진보언론 상당수가 안철수를 밀어주었음에도 3위에 그친 것은 영향력 과시라는 측면에서 볼 때 뼈아픈 타격일 수밖에 없다. 전통적인 보수층에서도 상당수가 조선일보가 박근혜를 비토한 것에 배신감을 느끼고 다양한 극우파 인터넷 대안 언론이나 극우 유튜브 등으로 갈아타는 현상이 관측되기도 했다.
한편 종편 채널인 TV조선이 탄생하면서 완전히 레거시 미디어로 전락한 종이 신문에서 벗어나 방송으로 진출한 후, 60대 이상의 노년층을 타겟으로 하는 전략이 성공하여 2020년 들어서는 JTBC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시청률 경쟁을 하고 있다. 물론 광고주들에게 가장 중요한 숫자인 '2049 타켓 시청률'면에서 보면, JTBC가 지상파 3사나 tvN과 비슷한 레벨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것에 반해 TV조선은 해당 청년 세대에게는 존재감이나 소구력이 전혀 없는 형편이다. 참고로 20대 초반에서 40대 후반까지는 소비 성향이 크고, 문화 생활의 동향 및 최신 트렌드에 민감하기 때문에 방송국에 광고를 내는 광고주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대인데, 당연히 이 세대를 타겟으로 한 광고나 프로그램은 광고 효과가 크므로 단가 또한 상당히 비싸다. 종편 경쟁사인 JTBC의 채널 영향력이 급속도로 커진 판이어서, 중장기적으로는 방씨 가문 우위의 조중동 체제가 홍씨 가문 우위의 중조동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현재 조선일보 계열에 대한 가장 불안한 지점은 방송통신위원회 차원에서의 TV조선의 방송 재허가 취소와, 사주 가문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이다. 실제 TV조선은 늘 방송 재허가 여부에 대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또한 방상훈 회장의 아들인 방준오와 방정오에 대한 지분 상속 작업이 제대로 아직 이뤄지지 않은 터라, 계열사 분할-합병 작업이나 지분 상속 사항 등에 따라 앞으로 상속 및 승계의 불법성 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인터넷 언론 시장을 내다보고 상당히 이른 시기인 1995년에 조선일보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하였고, 전자책 국내 도입 초기에 선제적으로 전자책 단말기를 만들기도 하었다. 오랫동안 여러 한자검정시험들을 후원하고 있다.
2017년 6월 24일, 대한민국 최초로 지령 30000호를 넘었다. 2020년 3월 5일, 창간 100주년을 맞이하였다.
노조는 미가맹. 원래는 언노련 소속이었지만 민주노총 산하에서 산별노조화되면서 탈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