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는 일반적으로 외상을 지칭하는데, 이는 영미권에서 이 단어가 처음 쓰이는 증상의 원인을 외상으로 본 것에 기인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당뇨나 고혈압처럼 난치병까지 갈 수 있다. 이를 위해 충분한 치료, 상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니 스스로 정신에 상처가 났다고 자각하면 정신과를 찾아가 치료받아야 한다. 신체의 상처는 진통제 덕분에 조금이라도 도피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신과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든 치료 받지 못하면 상처는 곪고 점점 더 벌어져 상대에게 다시 전염이 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PTSD를 쉽게 이해시켜주자면, 본인이 감당 가능한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들로 인해 생겨난 감정, 기억, 생각이 끊임없이 재생되며 본인을 괴롭히는 거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여기부터 학업부진, 현실도피, 자학, 대인기피증, 자아붕괴, 중독 등이 생겨난다.
PTSD는 매우 강렬한 폭력 등 충격적인 상황이 펼쳐지는 공간 속에 던져졌던 사람들, 의사, 간호사, 경찰관, 소방관, 군인, 교도관 등에게 많이 나타난다. 또한, 가정폭력이나 학교폭력 피해를 겪은 사람들에게서도 자주 나타난다. PTSD는 딱히 사람을 가려가며 발현되는 증세가 아니기 때문에 공병 의무관 심지어는 직접 전장에 나서지도 않는 무인정찰기 프레데터 조종사 몸만 현장에 없을 뿐 풀 HD 근접 화면으로, 매번 자신이 누른 발사 버튼에 의해 사람이 갈갈이 찢기는 걸 똑똑히 본다. 중에서 PTSD 환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PTSD 증세는 성범죄, 폭력 같은 범죄에 시달린 피해자들은 물론, 자연재해나 폭발, 충돌 사고 피해자들에게도 나타난다.
2003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의 정신과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영 좋지 않았기 때문에 PTSD 환자들도 별다른 관심을 받지 않고 있었다. 일반인 사이에선 그야말로 없는 정신병 취급. 삼풍백화점 사고 당시에 단신기사 몇 건만 나왔을 정도였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통해 이유를 유추가능하다.
( [바로 앞에서 울부짖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싸늘히 외면하고 지나쳐버린 사건]을 언급한 후 )
세월호 유가족들이 고통스럽다고 울고불고하면요. 저는 박근혜 대통령의 속마음이 이랬을거라고 봐요.
"너희들 그까짓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겪은 고통에 비하면, 너흰 몰라서 그렇지 나는 그것보다 더 큰 고통을 겪었고, 그걸 혼자서 다 이기고 여기까지 왔어.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이런 마음이었을거란 말이죠.
그러니까 트라우마가 치료되지 않으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어요. 전혀 감정이입이 안돼요. 왜냐하면 자기가 받은 그 끔찍한 고통에 계속 매몰되어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고통에 마음의 시점이 이동하질 않거든요. 잘 모르는 사람들은 PTSD 환자들끼리 서로 잘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실제로는 상처받은 사람들끼리 함께하는 것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몇 년을 매일 같이 생지옥을 겪으면서 성적, 육체적, 언어적 모든 면에서 고통을 겪은 학교 또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성폭행 피해자에게 공감한다는 얘기를 하며 조언하면, 성폭행 피해자들은 ‘고작 학교나 가정폭력 따위가 성폭행에게 견줄 수 있냐’라는 말을 하는 식. 설령 같은 일의 피해자들끼리라도 결국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별개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대립과 다툼이 있는 경우가 많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사고 이후 5년간의 이야기를 정리한 책 를 보면, 단일 사건을 당한 사람들임에도 서로 이해하는 데에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사실이 나온다. 그래서 다른 사람한테 또다른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죠. 어쩌면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 몰락해 버린 1차적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며, 실제로 근거가 아주 없는 해석은 아니다. 양친을 1명도 아니고 2명 모두 살인 사건으로 잃는다는 것은 자녀에게 절대 치유 불가능한 충격이며, 실제로 가족이나 지인이 살해당한 것으로 인해 엇나가는 사람들도 아주 많기 때문. 저런 사람들의 경우 부모 유고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부족했을 가능성은 99% 이상.
근데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일단 1950년도 한국전쟁을 겪으며 온국민이 트라우마 환자예요. 그거 한번도 제대로 치료한 적 없어요. 그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자식을 낳고 굉장히 집에서도 폭력적으로 자식들한테 했고, 사회구조도 그렇게 돌아갔고... 제주 4.3 그렇게 민간인이 3만명이 학살당했는데, 그 트라우마 한번도 치료한 적 없어요. 광주항쟁? 한번도 치료한 적 없어요. 정신건강의학과 ( 구 신경정신과 ) 치료 자체에 대한 인식과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저 먹고살기 바빠서 사고로 다리 부러지고 팔 부러지는 것도 겨우 치료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것들이... 트라우마를 입은 사람들이 온 사회에 굉장히 넓게 퍼져있는데... 그런 것들이 이렇게 누적이 되다보면 타인에게 적절한 정도의 공감을 한다든지, 타인의 고통에 감정이입을 한다는 것이 사회구조적으로 굉장히 어려워져요. 사회의 바탕이 그렇게 되죠.
그런 노인들이 자신이 살아온 시절이 너무 끔찍하고, 죽다 살아났고, 형제 몇은 다 죽으면서 거기서 살아남아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이고... 그러니까 "애 하나 죽은 거...? 그거 별 거 아냐. 지금은 세상이 더 좋아져서 돈도 준대. 야~ 나 같았으면 그 정도는~" 이런 마음들이 있어요. 치료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고통에 아직도 깊이 매몰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이렇게 극단적인 사회적인 트라우마가 있을때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이... 말하자면 그런 것들이 반쯤은 괴물이 되는 사람을 양산하는 구조이기 때문이에요.
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
하지만 대구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PTSD라는 개념이 주목 인터넷이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기인지라 그 파급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야간정액제가 물러가고 xDSL기반 회선의 보급도 한몫했다.받기 시작했다. 현재는 적극적으로 치료를 권하는 추세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부터 심리학회 차원에서 화두로 삼고 전국의 연구실들에서 대학원생들을 맹렬히 갈아넣고 있는 상태다. 국내 학회들의 동향을 보면 의외로 많은 수의 PTSD 관련 프로시딩들이 나온다. 보통은 그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게 중독 이슈 같은 것. 특히 이하에 따로 설명하게 될 외상 후 성장 ( Post-traumatic growth ) 이라 부르는 현상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신종플루, HIV, 슈퍼박테리아, 코로나바이러스-19와 같은 20~21세기에 처음 알려진 질병이 아니다. 임진왜란 당시 배설이 전시에 탈영한 원인이 이것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의 인류와도 함께하던 유서깊은 정신적 질병이다. 그 유명한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도 PTSD가 있었고 그의 대표작 절규도 이를 소재로 한 그림이다. 하지만 정신병원 같은 이미지로 인해 한국에서 인식이 좋지 않다.
미국의 경우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크게 주목받았으며, 이후에 질병으로 인식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 모든 참전 군인들에게 같은 증상이 존재하였지만 '질병'으로 명확하게 인식된 것은 아니었으며, 때문에 같은 증상을 부르는 용어들 역시 중구난방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셸 쇼크 ( Shell Shock ) 라고 불렀으나 질병인지 증상인지 경계조차 애매하였으며, 후술할 많은 유사증상 들을 하나로 묶어 칭했다는 단점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이후에는 전투 피로증 ( Battle Fatigue, Combat Fatigue ) , 작전상 탈진상태 ( Operational Exhaustion ) 등의 용어로 불리기도 하였나, 역시 병명을 확정하는 단어로는 무리가 있었다. 베트남전 이후에 용어가 수정되어 현재는 PTSD로 고정된 상태.
PTSD는 흔히들 '전투 스트레스 반응' CSR: Combat Stress Reaction. 일명 전투신경증 으로 착각되지만 둘은 별개의 증상이며 절대 동일한 증상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PTSD와 혼동되기 쉬운 다른 증상들이 있는데 CSR 역시 이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PTSD란 전쟁, 테러, 천재지변, 화재, 신체적 폭행, 강간·강제추행 등 성폭력, 자동차·비행기·기차 등에 의한 사고 등 생명이나 신체를 위협할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 ( 정신적 외상 ‘정신적 외상’이란 충격적이거나 두려운 사건을 직접 당하거나 생생하게 목격하는 것을 말한다. ) 를 경험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 질병이며, 보통 우울증, 불안장애, 또는 공황장애를 동반한다. 반대로 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뒤 정신적인 성장을 보이는 것을 '외상 후 성장'이라고한다.
PTSD로 고통받는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정상참작이 적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불쌍하다 ( 자기 제어가 극도로 힘들다, 매초 매분 지옥 같은 기억이 올라 숨쉬기가 어렵다, 고생을 심하게 했다 ) 와 선량하다 ( 재범의 여지가 없다 ) 는 구별되어야 하며, 애초에 근대 사법체계에서 정신병을 이유로 형을 감형하거나 면제하는 이유인 심신미약이란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인과관계나 책임을 느낄 수 없는 정신 상태를 말하기 때문이다. 불행하고 힘든 경험을 통해 PTSD에 걸렸다고 해서 범죄자가 '선량하다'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그렇다고, 매일같이 우리 사회의 자식, 동생, 형, 누나들이 계속 PTSD의 지옥으로 말려들어가고 있고 그 수가 늘어나 자살과 범죄가 늘어나는 데도 여전히 사회를 방치하고 있는 우리 역시 선량한 건 아니다.
불행한 삶을 살아와 동정이 가는 이들은 선량하고 착실하게만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지만, 오히려 지독한 고통은 사람을 일상에서 벗어난 괴물로 만들기도 한다. 그 누구보다 착하고 양심이 강하고 완벽을 추구하고 순수했기 때문에 오히려 PTSD가 발생한 걸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깊이 상처입고 자신의 양심이 본인을 용서치 않으며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 그리고 마음이 부서지는 건 둘째치고 몸 역시 스트레스에 고통받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거기에 익숙해져서 그 뒤로 평온한 시간이 와도 계속해서 고통받는 상태에 본인을 몰고 간다. 괜히 한번 시작되면 돌아가지 못하는 게 아니다. 연쇄적으로 주변 환경, 마음, 몸이 서로를 괴롭히며 가속화하여 악화되어 간다. 탈선한 폭주 기관차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정상 궤도에서 빠르게 멀어진다.
연쇄살인마나 흉악범들이 불우하고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례는 꽤 흔하다. 이러한 범죄자들도 PTSD 증상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다만 임상심리사에게 심리평가를 의뢰한 정신과 의사의 전문적 판단으로 PTSD를 통해 심신미약 이상의 상태가 되었을 경우에는 형의 감경 사유가 될 수 있다. 보통 그럴 경우에는 다른 정신질환이 같이 온다. 물론 다른 정신질환들도 그렇지만 비난 가능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다양한 논쟁거리 속에서 정신질환인 ( 정신장애인 ) 들 당사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부득이한 처지에 대한 고려라는 인권적 논제는 특히 한국에서는 간과되고 있는 실정이다.
좀 더 조사가 필요하긴 하나, PTSD 환자에서 전두엽의 수축이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현상에 대해 전두엽의 수축이 나타나는 이유가 PTSD에 의해 유발된 수면장애 탓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 그리고 수축 자체에 대해서는 검토가 더 필요하더라도, PTSD 환자인 경우 실제 뇌를 비롯하여 신체의 여러 기관들이 긴장상태로 굳어있거나 볼때마다 움찔 거리게 만드는 거를 매순간 떠올리게 되면 몸이 늘 긴장상태일 수 밖에 없다 기능이 저하되어 있는 걸로 추정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실제로 이들에게 전체 그림을 주고 살펴보게 하면 완전히 그림을 다 머리에 넣지 못하거나, 본인의 손가락을 눈앞에서 8자를 그리게하고 눈으로 쫒으라 시킬 때 눈동자가 따라 움직이지 못하곤 한다. 또한 긴장상태로 인해 장기 근처가 굳어 호흡을 충분히 못하는 경우도 확인된다. 생각에 있어서는 예를 들어 ABC단계로 생각을 거쳐야 답이 나올 경우 B단계에서 본인 뇌가 진행을 거부하여 더이상 생각을 진행 못 시키곤 하며, 그로인해 남이 짚어주면 이해는 하는데 본인 스스로는 상황판단을 못하고 결정장애에다 계획 세우는 것조차 불가능한 문제가 발생한다.
온갖 이유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살인을 해도 PTSD에 잘 걸리지 않는 걸로 보인다. 예를 들면 미국 슬럼가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살인이나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갱단 사이의 총격사건이 매우 흔하게 일어나며 주민 대부분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경우가 많아 언제 어디서 죽더라도 주민들은 큰 충격을 받지 않는다. 대체로 바로 복수를 생각하지 슬픔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한다. 브라질의 파밸라 갱들의 삶과 죽음을 다룬 명화인 시티 오브 갓을 보면 어린애다운 천진난만한 얼굴로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이고 이렇게 사람 목숨이 아무런 무게를 가지지 못 하는 환경에서 일상적으로 자란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그만큼 이런 사람들은 일반적인 사회에서 살아갈 수는 없지만. 예를 들면 슈츠슈타펠에서 막장으로 취급받는 친위대 36 무장척탄병사단 디를레방어 부대 지휘관 오스카 파울 디를레방어는 미성년자 강간과 폭력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사람이었지만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전쟁하는 건 잘했다. 또한 고대로부터 그래왔듯이 종교적인 광신에 사로잡혀도 문제 없다. 예를 들자면 발할라에 갈 수 있단 믿음 하나로 도끼로 서슴 없이 머리를 찍어버리는 노르드인들 말이다. 2차대전기 구 일본제국 등 강한 애국심도 비슷한 효과를 내는 듯하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죽음 등 큰 사건에 익숙해져있거나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다. 슬럼은 전자, 바이킹은 후자다. 바이킹은 종교적 특성상 전사한 남자는 천상에서 대우받는다고 여겨서 전사하는 것을 오히려 명예로 여겼다.
PTSD를 겪는 사람들이 불쌍해보이고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기 쉬울 것 같지만 오히려 다가가면 벽을 두르고 거칠고 신경질적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늘 고통스런 기억이 계속 올라오고 그로 인해 파생된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찬 데다가 살의 충동, 분노, 슬픔, 혐오, 우울함 등의 감정으로 가득차서, 당장 터지기 직전인 걸 간신히 온 힘을 다해 제어 중이다. 불쌍하다고 다가와서 건들면, 나름 노력은 하더라도 따뜻하고 차분하게 반응하기 쉽지 않다.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노인을 다룬 동화 [뚝 떨어진 할아버지]에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갇혔던 유대인 노인이 고문, 학대, 굶주림, 추위 등의 경험으로 가정내에서 폭군으로 군림하는 모습이 나온다. 나중에 손녀와의 교류 때문에 온화해지기는 하지만. 만화 쥐에서도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활을 겪었던 블라덱 슈피겔만은 후처 말라와 아들에게 신경질적이며 고집센 노인으로 나온다. 전처 아냐의 자살에도 그의 성격이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기도 했고.
사람이 아닌 동물에게도 이 PTSD가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미군에서 다루고 있는 군견 중 일부가 [증세를 보인다는 보고가 있다.]
일반인 사이에서는 흔히 트라우마라고도 부르며 해당 문서에 있는 사례 목록들 상당수는 현재 이 문서의 내용과 겹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