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산 첫 150-150 가입선수
前 야구선수이자 90년대에 등장한 타이거즈의 레전드.
1990년도에 해태 타이거즈에서 데뷔하여 10년을 뛰고 FA로 이적해 LG에서 04년까지 4년간 선수생활을 했다. 마지막엔 다시 KIA로 넘어와 1년을 더 뛰고 2005년 은퇴. 등번호는 5번 ( 해태 ) - 33번 ( LG, 2001 ) - 5번 ( LG ) - 38번 ( KIA, 2005 ) . 96, 97 시즌 해태가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2연패를 했을때 타자진에서 이종범과 투톱을 이룬 선수였다.
이종범의 신인 시절 이전부터 이미 해태의 4번을 차지하던 김성한, 한대화가 노쇠화로 서서히 실력이 저하되면서 4번타자를 하게되었다. 프로 입단은 홍현우가 3년 빨랐지만, 홍현우가 고교 졸업 후에 바로 입단했던 반면 이종범은 대학을 거치고 입단하여 선수 경력 자체는 이종범이 더 길다. 나이도 이종범이 2살 더 많다 ( 홍연우가 1년 일찍 입학했기에 1년 선후배 관계 ) . 해태의 최연소 4번타자였으며, 90년 중반 타이거즈의 제 2차 전성기에 이종범과 함께 타이거즈의 타선을 이끌던 이끌던 쌍두마차였다. 이로 인해 젊은그대 이 별명이 유명해 게임에서도 자주 특성 이름으로 사용되곤 한다. 프야매에서는 앞서 말한 해태의 최연소 4번타자와 젊은그대가 커리어하이 홍현우의 전용 특성으로 구현되었다. 다만 해최4는 장타특성, 젊은 그대는 2루 도루 특성이라 효율성에 있어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편, 마구마구에서는 베테랑효과로 2루수 파워형 하점이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이후 LG에서의 FA 부진으로 전성기인 해태 시절의 명성이 크게 퇴색했다.
시즌 페이스가 빠른 편으로, 초반에 마구 몰아치면서 매년 올스타전 즈음에 들어설 때는 홈런 순위 5위 이내에도 들곤 했다. 그러나 수비부담이 큰 2루수 및 3루수를을 주로 맡았을 뿐더러, 매년 전경기 가까이 출전하면서 체력부담이 크다보니 후반기에는 타율과 홈런이 상당히 줄어들어들곤 했다. 그래서 늘 홈런 10위에 들 정도로 기량이 빼어났지만, 동시대에 활약한 팀동료 이종범에게 1990년대 해태의 간판을 내주어야 했다. 또한 90년대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이었던 양준혁과 더불어 팀의 중심타자로서 선구안마저 뛰어난 전형적인 OPS형 타자이기도 했다.
이제는 지나간 얘기지만, 이 선수가 김기태 김기태는 광주 출신에 광주일고를 나왔고 심지어 그 이종범과도 동네친한 형 동생이였다. 그러나 쌍방울 다음으로 지명권을 가진 해태가 김기태 대신 다른 호남 출신의 대졸 투수를 지명했고, 김기태는 신생구단 쌍방울에 먼저 지명되어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삼성, SK를 거쳐 은퇴하였으나 후에 감독으로 고향 팀 유니폼을 입게 된다., 박재홍 박재홍은 고등학교 졸업 후 연고 팀 해태의 구타문화와 열악한 환경 등으로 1차지명을 받고도 이를 거부하고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에도 해태 입단을 계속 거부하다가 결국엔 지명권 트레이드로 현대에 입단하게 된다. 결국은 나중에 KIA로 와서 2년간 죽쑤다 SK로 가긴 했지만...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면? 90년대 해태의 중심타선은 80년대 김봉연-김성한-한대화로 이어지는 전설의 클린업과도 충분히 비교되거나 그 이상의 강타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고, 늘 부실했던 90년대 해태타선을 이종범과 함께 먹여살렸다시피한 해태타선의 살림꾼이었다. 그나마 93년까지는 어찌저찌 짜임새있는 타선이였으나 94년 한대화가 LG로, 장채근이 쌍방울로 이적하고 91년 이후 노쇠화를 뚜렷하게 드러낸 김성한이 96년 은퇴하면서 정말 답 없는 타선으로 전락했다. 그나마 팀에 남아있던 이순철은 94년도를 기점으로 타율과 OPS가 급락했고, 그 분은 그래도 꾸준히 활약했으나 80년대 핵타선과 비교하면 상당히 아쉬운 수준이었다. 정말 이 시기의 해태 타이거즈 타선은 이종범과 홍현우 단 둘이 끌고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태 타이거즈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유명하지만, LG 트윈스의 흑역사. 당시 한국 FA시장 최악의 먹튀로 평가받았으며, 이후 진필중 - 마해영 - 박명환으로 이어지는 LG의 FA잔혹사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트레이드 마크였던 잔털 하나없는 빡빡 민 머리 머리숱이 워낙 적었기 때문에 20대 시절부터 가발을 쓰고 다닐 정도였다고. 결국 거추장스러웠던지 95년 2월 전지훈련 때 아예 빡빡 밀어버렸다고 한다. 다만 이후로도 머리를 기른 적은 있는 듯. 머리숱이 있는 채로 찍은 골든글러브 수상 사진도 있고, 96년 유니폼이 바뀌고 찍은 사진 중 구레나룻이 삐져나와 있는 사진도 있다. 아래 사진도 그렇다.로 인해 '홍미륵'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본래 유명했던 별명은 젊은 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