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경쟁 상대는 다른 음료수가 아니라 물이다. 우리는 음료수 시장에서 4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독보적인 1위지만 전체 물 시장에서는 고작 3%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우린 아직 한참 멀었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필수품인 물을 경쟁상대로 언급하는 것부터가 이 음료의 위상을 말해준다. 코카콜라가 '탄산음료'라는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마시는 것'이라는 카테고리로 브랜드 정체성을 재설정해서 더 원대한 목표를 설정하는 전략.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경쟁상대가 아니라 한 차원 높은 경쟁상대를 제시하는 전략이다. 실제로 이 전략의 도입 이후 코카콜라는 자사의 경쟁력을 산출할 때 소비자가 마시는 콜라 중 자사 제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아니라, 소비자가 마시는 모든 음료수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 즉 위 점유율을 계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카콜라 前 CEO 로베르토 고이주에타 쿠바 출신으로 1981년부터 코카콜라의 CEO로 재직했으며, 1997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코카콜라의 시가총액은 [달러에서 1467억 달러로 상승하는 결과를 이루어냈다. 그야말로 코카콜라의 잭 웰치 같은 존재.]
미국의 약사인 존 스티스 펨버턴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원래는 소화제, 와인이 들어갔었다. 하지만 와인에 함유된 알코올 때문에 많은 사람이 마시지 못하자, 와인 대신 탄산수를 첨가해서 새로운 음료를 만들었고, 펨버튼의 경리직원이었던 프랭크 M. 로빈슨 ( Frank M. Robinson ) 이 주성분의 이름을 조합해 코카콜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특히 로빈슨은 독특한 흘림체 모양의 코카콜라의 로고를 디자인한 인물이기도 하다. [ ] 1886년 당시에는 첨가물 없이 순수히 코카잎 추출 성분과 콜라나무 껍질 원액과 탄산수로 만들어졌었으며, 이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첨가물을 더 넣고 만든 것이 오늘날의 콜라다.
이 음료는 그가 운영하는 약국의 소다수 판매 진열대에서 잔당 5센트로 판매되었지만 별로 판매량이 좋지 않았고, 2년 후 그는 이 청량음료에 대한 제조, 판매 등 모든 권리를 단돈 122만 2천 원에 팔아버렸다. 존 펨버턴은 코카콜라의 권리를 판매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위암으로 별세했다. 그 때문에 죽기 이전에 본인의 역작을 능력 있는 사업가에게 맡겼다는 얘기도 있다. 이 권리를 구매한 사람이 약제상인 에이서 캔들러이다. 에이서 캔들러는 이 청량음료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존 스티스 펨버턴의 전 동업자였던 프랭크 로빈슨 ( Frank Robinson ) 과 함께 1892년에 코카-콜라 컴퍼니 ( The Coca-Cola Company, TCCC ) 를 설립했다. 이후 에이서 캔들러의 탁월한 영업 능력으로 판매량은 급증하였고,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청량음료로 성장하게 되었다.
현재 코카콜라 병의 디자인은 1915년 캔들러가 상금 500달러를 걸고 보기만 해도 코카콜라임을 알 수 있을 만큼 특색 있는 병을 만들기 위해 공모전을 열어서 채택한 것이다. 이 공모전에서 루트 유리 공장 ( The Root Glass Company ) 의 디자이너였던 알렉산더 사무엘슨 ( Alexander Samuelson ) 과 얼 딘 ( Earl Dean ) 등 직원 5명이 제안한 디자인이 뽑혔다. 일설에는 코르셋 낀 드레스를 보고 만들었다는 말도 있었지만, 사실 어이없게도 코카나 콜라에서 병모양을 생각해냈던 것이 아니라 전혀 관련없는 카카오 열매로 착각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콜라 업계 부동의 1위라고 인정받지만, 시대와 지역에 따라선 라이벌인 펩시가 우세를 점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펩시가 다이어트 코크와 2, 3위를 다투면서 라이벌이라는 말이 무색해져버렸다.
사실 2012년까지만 해도 인터브랜드 선정 브랜드 가치 순위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할 만큼 강력한 브랜드였다. 마이크로소프트나 맥도날드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2013년부터 IT기업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닷컴, 애플, 삼성전자 등의 브랜드 가치가 급성장하였고, 이에 2020년 기준으로는 6위에 랭크되어 있다. 파일
본사는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