愛姬 ( 1568~1653 )
일본 전국시대의 인물. 타무라 키요아키의 외동딸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은 케이스로 외동이어도 측실에 의해 태어난 이복형제의 기록이 있을 텐데 ( 유아 사망으로 혼자 살아남았거나 하는 식 ) 메고히메는 측실 소생의 이복형제의 기록이 없다. 타무라 히로아키 역시 측실에 대한 기록이 없다.로 다테 마사무네의 정실이다. 통칭 '타무라고젠 ( 田村御前 ) '.
12세가 되던 1579년에 마사무네에게 시집갔다. 일설에는 이 때 마사무네와 메고히메가 둘 다 너무 어렸기에 정식 혼례를 한동안 미루었다고도 한다. NHK 대하드라마 독안룡 마사무네에서는 이 설을 채용. 당시 메고히메의 친정인 타무라 가는 세력이 크지 못했기에 영지가 항상 주변국의 침략에 노출되어 있었다. 게다가 아버지 키요아키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의 아들이 타무라 가를 잇는 것을 조건으로 이뤄진 결혼이었고, 또한 타무라 가 입장에서는 유력 가문인 다테와 인척관계를 맺음으로써 자기 영지의 방위를 강화하려는 계산도 있었다. 그런데 메고히메가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사무네가 독살당할 뻔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 암살 미수 사건의 배후에 하필 친정인 타무라 씨와 내통하는 자가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 때문에 메고히메의 유모를 비롯해서 메고히메를 모시던 시녀들까지 줄줄이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한동안 마사무네와 사이가 나빴다고도 전해지며 두 사람 사이의 첫 아이인 이로하히메가 결혼한지 15년만에 태어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후에 화해하여 전술한 이로하히메, 센다이 번 2대 번주가 되는 차남 타다무네 장남인 히데무네는 측실의 자식으로, 도요토미 가와 가까웠기 때문에 센다이 번을 상속받지 못했다. 대신 이요 우와지마 번의 초대 번주가 된다. 등 4명의 자녀를 두었다.
훗날 도요토미의 인질이 되어 교토의 취락제에 자리한 다테 저택으로 거처를 옮겼다. 오랫동안의 인질생활로 메고히메는 도요토미로부터 가문의 부흥을 위해 목숨을 건 처세를 반복하는 남편을 이해하게 된다. 이 무렵 교토에 있으면서 마사무네에게 종종 편지를 통해 교토의 정세를 알리는 등 다테 가의 외교관 역할을 하면서 마사무네를 보좌했는데, 이 당시 남편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천하는 아직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서방님께서는 천지의 도리를 따라 거취를 정하십시오. 제 신변은 심려치 마십시오. 늘 비수를 품에 지니고 있습니다. 맹세코 치욕을 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사무네는 이 편지를 받고 '과연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 타무라씨의 선조로 나라 시대의 무장이자 초대 정이대장군. 매우 용맹했다고 전해진다.의 후예'라 감탄했다 한다. 이러한 내용으로 보아 상당히 의연하고 강단 있는 성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편지 내용 때문에 몇몇 개그성 2차 창작에서는 상기의 편지 뒷부분에 "그 원숭이 놈한테 당하기 전에 내가 먼저 족쳐버릴게요♡" ( ... ) 라는 식의 내용이 덧붙는 것도 더러 있다 ( ... ) .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상당히 가정적인 인품의 소유자였던 것으로도 보이는데, 훗날 메고히메가 출가하던 당시 즈이간지의 주지였던 운교 선사가 그녀에 대해 말하기를 "가정을 잘 다스리고, 총명하며 자비심 깊은 분"이라 하였다고 한다. 대하드라마 독안룡 마사무네에서도 이를 반영해서, 자신이 낳은 자식들뿐만 아니라 측실 소생의 자식들에게도 차별을 두지 않고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1636년 마사무네가 죽은 뒤 출가하여 법명을 요토쿠인 ( 陽徳院 ) 이라 하였고, 남편의 목상을 만들 것을 명하기도 했다. 이 목상은 현재도 즈이간지에 보존되어 있는데, 대부분 두 눈이 멀쩡하게 묘사된 다른 조각상들과는 달리 애꾸눈으로 묘사되어 있어 마사무네의 생전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 중 하나로 손꼽힌다. 원래 마사무네는 생전에 자신의 초상화나 조각상 등을 만들 때 항상 두 눈을 멀쩡하게 그리거나 새겨 넣도록 지시했으나, 메고히메는 남편의 생전 모습을 있는 그대로 후세에 남기기를 바라는 뜻에서 실제 모습대로 애꾸눈으로 조각된 목상을 제작하게 했다고 한다.
1653년 1월 24일에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유언으로 친정 타무라 가의 재흥을 소망해 결국 그녀의 손자가 타무라 가를 잇는다. 원래 메고히메는 둘째 아들을 친정에 양자로 보내려 했으나, 둘째와 셋째 아들이 잇달아 요절했기 때문에 결국 타다무네의 셋째 아들이 타무라 가를 잇게 되었다.
이름의 한자 '愛'의 독음이 흔히 읽는 방식이 아닌 지라 일반적으로 '愛'라고 표기할 경우 거의 '아이 ( あい ) '라고 읽는다. 참고로 도호쿠 방언으로 표준어의 'かわいい'에 해당하는 말을 'めんこい'라고 하는데, 메고히메의 한자 독음은 아마도 여기에서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에서도 후리가나 표기법을 두고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위키백과 일본어판에는 일단 '요시히메'와 '메고히메'의 두 가지 표기가 병기되어 있으나,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지고 사실상 정식 표기로 굳어진 이름은 메고히메다. 요시히메로 읽을 경우 시어머니와 동명이인으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에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로도 보인다 ( 단, 마사무네의 모친은 이름의 한자가 義姬로 다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