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중앙부에 위치한 시. 서울특별시에 집중되어 있는 정부 기능을 분담하기 위해 지어진 행정도시이자 계획도시이고, 대표적인 전원도시이자 서울특별시의 위성도시다. 1986년 시흥군 과천면 ( 경기도 과천출장소 ) 에서 시로 승격되었다.
전통적인 부촌이며, 북으로는 서울특별시의 서초구와 관악구, 동으로는 청계산 능선을 따라 경기도 성남시, 남쪽으로는 의왕시, 남서쪽으로는 안양시에 접한다. 관할 행정동은 중앙, 갈현, 별양, 부림, 과천, 문원의 6개동이 있다. 중앙동 일부 ( 법정동 중앙동 ) 와 별양동, 부림동, 갈현동 일부 ( 원문동 ) , 과천동 일부 ( 주암동 ) 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개발제한구역 ( 그린벨트 ) 이다. 이는 시 면적의 약 89%에 달한다. 그린벨트가 너무 많아서 아예 시정홍보지에 '그린벨트에서 허가 없이 가능한 행위들'을 공지해 줄 정도이다. 게다가 과천시 전체 면적 가운데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각각 33%와 26%, 약 60%를 소유하며 대주주 역할을 맡고 있다. 반면 과천시가 소유한 지분은 겨우 6%에 불과해 자체적인 개발사업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
면적은 35.9㎢로, 전국의 시, 군 중에서 두 번째로 좁은 기초자치단체이다. 가장 좁은 지역은 같은 경기도면서 서울특별시 동북부에 위치한 구리시로 33.3㎢이다. 다만 인구는 구리시가 19만 여 명으로 3배 이상 많다.
안양권과 고등학교 학군을 공유하지만 전화도 1985년 8월 서울 통화권 편입 이전에는 과천도 안양 통화권이었다. 지역번호에 서울 강남과 같은 02-5XX국을 사용하고 도시가스는 안양, 군포, 의왕이 삼천리그룹의 공급 권역인데 반해 과천은 코원에너지서비스의 공급 권역에 포함된다는 차이가 있다.
인구는 64,549명 과천은 본래 행정기능 분담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도시이므로 도시계획 상의 인구는 5만명이었다. 주거정비사업으로 2017년까지 인구감소현상이 나타났다가 2020년부터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향후 인구수 15만명 도달시 의왕에 묶인 선거구 분리도 가능해 보인다. 수준이고 주변이 관악산, 청계산, 우면산, 양재천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쾌적한 주거 환경을 자랑하는 도시로 유명하며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처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대대적인 주거 정비사업을 진행 중인 최근까지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는 거의 도맡아서 하고 있다. [서울대], [총리실 산하 국토연구원],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한국외대 국가브랜드연구센터] 여기에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다양한 분야에 걸친 전국 최고 수준의 주민복지 환경이라 할 수 있다. []
2021년 1월, KB시세 기준 과천 아파트는 평당 5,721만원 꼴로 평당 7,380만원의 서울 강남구와 평당 6,360만원의 서초구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뒤로는 평당 5,267만원의 송파구, 평당 4,989만원의 용산구 순서이다. 이는 경기도 최상위권인 평당 4,159만원의 성남시 분당구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참고로 분당구는 판교신도시 등 신축 아파트의 영향으로 경기권에서 가격이 상당히 높지만 분당신도시도 30년차에 들어선 1990년대 신도시다. 반면 과천은 1980년대 초반의 시범신도시로 주공아파트는 모두 신축아파트로 변모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전국 3위권의 평당가를 저층 주공아파트의 재건축 대지지분에 의한 뻥튀기라고 폄하하기도 하나, 대부분의 저층 아파트는 2017년도에 이주완료 및 철거를 하여 멸실주택으로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더군다나, 현재 남은 재건축 아파트들은 중층 단지로서 현재 평수보다 지분이 적은 곳들이라 그러한 주장은 더이상 통용되지 않지 않으며 최근에는 신축아파트로 이루어진 시세가 이전보다 훨씬 고공행진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정부청사의 공무원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 거주인구 통계에서는 가구주의 사업종사 비율이 60%에 이르고 [] 관리자·전문가 비중이 가장 높게 나타난다.[] 실제로 1986년 과천신도시 초기에도 7만여명의 시민중 약 60%가 대학·대학원 출신이었으며 약 16%의 비율을 차지하던 정부부처 사무관 11,013명 이외에 국·공영 및 일반 기업체외 사원, 판·검·변호사, 문화예술인, 언론인, 예비역장성 등 다양한 직업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