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같은 절이 은근히 있지만 보통 '황룡사'라고 하면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320-1번지에 있었던 신라 시대의 대규모 사찰을 가리킨다. 지금은 터만 남았기 때문에 문화재청 등에서 부르는 공식 명칭은 황룡사지 ( 皇龍寺址 ) . 이렇게 터만 남은 자리를 가리키는 접미사처럼 쓰이는 '지'를 땅 지 ( 地 ) 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터 지 ( 址 ) 이다. 한국 전근대 역사상 최대급이었던 80 m 60 m 후반 정도였다는 설도 있다.가량의 황룡사 9층 목탑이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80 m면 현대로 치면 15층 아파트 두 배 높이다. 고려나 조선에 있었던 목탑들의 높이가 불확실하긴 하지만, 황룡사의 고려 버전에 해당하는 보제사의 목탑은 높이 200 척 ( 약 60 m ) 이 넘는 5층 목탑이라 하여 황룡사 9층 목탑보다는 낮았을 것으로 보이며, 흥왕사는 목탑에 비해 규모가 작은 석탑 및 금탑으로 대신했다. 황룡사 목탑은 고려시대에도 개경의 고려 정치인들의 기행문을 보면 동경에 갔을 때 들러보고 높이와 전망에 감탄하는 관광명소였다. 그리고 조선왕조는 불교를 국가 정책으로 배척했기 때문에 조선 이전부터 원래 있던 것 외엔 높은 목탑을 만들지 못했다. 결국 기록상으로는 황룡사 목탑 이후 천삼백여 년이 지나서야 대한민국에서 한진빌딩 ( 82 m, 1969년 ) ) 이 세워져 이 높이를 갱신했다. 불국사와 함께 신라를 대표하는 사찰이며 백제의 미륵사, 고구려의 정릉사와 함께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사찰이었다. 물론 대표적인 한국 건축물이기도 하다.
황룡사는 신라 이후 고려시대까지 거대한 9층 목탑과 함께 남아 있었으나 사실 황룡사에는 목탑 말고도 작은 쌍탑지가 있다. 황룡사 뒷편에 있는데.. 워낙 존재감이 없어서 묻혔다. 2중기단을 갖춘 3층 석탑 2개가 존재하였다. 1238년 몽골 제국이 침공했을 때 ( 제3차 여몽전쟁 ) 황룡사도 불탔고 최씨 무신정권이 강화도에 숨어 본토를 방치한 탓에 가장 후방인 경상도 지역까지 유린당했다. 이후 지금까지 터만 남았다. 1963년에 사적 제6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로 경주시 황용동 327번지에 있는 황룡사 ( 黃龍寺 ) 는 한자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