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초한쟁패기, 전한 ( 前漢 ) 한고제 ( 漢高祖 ) 시대 정치가. 진 ( 秦 ) 시대에도 관직을 지냈다. 이후 유방 ( 劉邦 ) 의 막료 ( 幕僚 ) 로 그의 천하통일에 공헌하였으며, 유방에게 그 막대한 공을 인정받아 가장 많은 식읍을 하사받았다. 유방이 직접 3만 호의 식읍을 내리려고 한 장량이 있지만, 장량 본인이 거절하였다.
찬후 ( 酇侯 ) 로 봉해지고 식읍 7,000호를 하사받았다. 전설의 관직이라 할 수 있는 상국 ( 相國 ) 에 임명되고 "구석#s-2 ( 九錫 ) "을 수여받아 한나라 역사에서도 최고의 명예를 누렸다. 시호인 문종 ( 文終 ) 과 합칭해 차문종후 ( 酇文終侯 ) 라고도 한다.
통칭 보급계의 끝판왕으로 보급왕. 유방이 십수만의 대군을 이끌고 항우와 싸워 매번 영혼까지 털릴 때마다 흩어진 병력과 물자를 다시 추스리고 후방에서 마르지 않는 물자와 지원병력을 보내주어 싸움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항우 입장에선 유방의 대군을 상대로 무인지경이 되어 신나게 털었는데도 유방이 대체 어디서 났는지 모를 병력으로 끊임없이 도전해오니 의아할 지경이었을 것이다. 현대전에서도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만큼 보급의 중요성이 여전하듯, 소하의 Show Me The Money 치트키 같은 무한의 후방 보급과 지원 능력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괜히 한신, 장량과 더불어 삼걸로 꼽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 마술에는 다 비법이 있었는데 원래 구 진나라 영역은 중원에서 인구도 가장 많고 경제력도 가장 막강한 지역이었다. 그리고 후술할 각종 진나라의 지리와 산물에 대해 기록된 서적 및 서류를 확보한 덕에 ( 이 물건들은 만약 소하가 빼돌리지 않았다면 항우에 의해 전부 태워질 운명이었다. ) 소하는 효율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유방에게 보급을 할 수 있었다.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려 후대에 능력있는 재상을 평하는 글에는 반드시 관중과 소하가 언급된다. 대표적인 것이 제갈량을 평가한 진수의 각주로 "제갈량의 국정운영능력은 관중과 소하에 비견되나 한신, 왕자 성보가 있던 소하와 관중과 달리 뛰어난 장수가 없어서 군사적인 재능은 보여주지 못했다."고 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