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미국에는 초기 이민자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지은 개척시대 마을 이름들이 많아서, 거의 모든 유명한 유럽의 도시명을 미국지도에서도 찾을 수가 있다. 그 중 가장 알려진 곳은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30106755394" rel="noopener" target="_blank">'빨간 카우보이 모자를 쓴 에펠탑'</a>이 있는 텍사스 주의 파리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빔 벤더스 감독의 1984년작 <Paris, Texas> 제목으로 지명이 그대로 쓰였었고, 최근의 넷플릭스 로맨틱 코미디 영화 <The Wrong Paris>의 배경으로 또 등장했다. 하지만 위기주부가 방문한 뉴욕 주의 롬(Rome)은 이탈리아 이민자와는 전혀 상관이 없고, 미국독립 직후인 18세기말에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공화정에 영감을 받았던 지도자들 사이에 '고전주의 지명'을 붙이는 유행이 불었기 때문이란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eBxKxk/dJMcac2yEzY/Lda9gZGlfMiloTliRAei1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그 로마의 가장 중심지에 콜로세움 대신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은 역사적 요새를 1935년에 준국립공원으로 지정한 <a href="https://www.nps.gov/fost" rel="noopener" target="_blank"><b>포트스탠윅스 내셔널모뉴먼트(Fort Stanwix National Monument)</b></a>이다. 북부 뉴욕 2박3일 여행의 4번째 국립 공원에서야 제대로 만들어진 간판을 처음 만났는데, NPS 로고 아래에 동그란 것은 'Shekolih'란 인삿말을 쓰는 오나이다 부족국(Oneida Indian Nation)의 문양이고, 그 옆의 작은 로고는 나중에 따로 설명을 드릴 예정이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l9261/dJMcacnZ6mj/YkWfNodlPBOLKZIqaraSI0/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동서로 뻗은 모호크 계곡에서 가장 높은 이 지역은 18세기에 대서양 연안과 대륙 내륙을 잇는 중요한 무역로여서, 일찌기 식민지 시대에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429752907" rel="noopener" target="_blank">프렌치 인디언 전쟁(French and Indian War)</a> 중이던 1758년에 영국 장군 존 스탠윅스가 여기 요새를 건설했지만 실제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았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ceJj20/dJMcacnZ6mk/QmzfkCqwWzpbKc9BZYE5t0/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오나이다 수송지(Oneida Carrying Place)라 불린 약 6마일의 육로는, 동쪽으로 흘러 허드슨 강과 합류하는 모호크 강(Mohawk River)과 서쪽으로 흘러 온타리오 호수로 이어지는 우드크릭(Wood Creek)의 두 수로를 연결하는 길이었다. 이렇게 배가 가장 효율적인 화물운송 수단이던 시절에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463741988" rel="noopener" target="_blank">두 물길 사이의 육로 운송을 일컫는 '포티지(portage)'</a>에 대해서는 작년초에 펜실베니아의 관련 국립사적지 방문기에서 설명을 드린 적이 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W8hv0/dJMcacasExJ/zGCPYdXznEcoiy9qoekeH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2005년에 새로 지어졌다는 비지터센터 앞에는 옛날 화물운송에 사용된 바닥이 평평한 목선인 '바토(batteaux)'와 설명판이 만들어져 있는데, 바로 너머로 넓은 도로와 현대적 상가 건물들이 보인다. 그 이유는 지금의 공원 부지가 1960년대까지는 건물과 도로로 완전히 뒤덮혀서 요새의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던 로마 시의 가장 중심가였기 때문이다. <a href="http://www.google.com/maps/d/viewer?mid=zGN_bB0flpac.kWwQgQpCK83U&msa=0&ll=43.21032,-75.45537" rel="noopener" target="_blank">(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a><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xHqB5/dJMcac2yEzT/6bkH7qKbSIrkK8qkoL2wu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당시 어김없이 비지터센터 입구는 안내문과 함께 굳게 닫혀 있었고 공원 브로셔라도 하나 구하고 싶었지만, 그 사이에 위기주부처럼 꿋꿋하게 다녀간 사람들이 많았는지 문 옆의 투명 보관함에도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흑흑~<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2400" src="https://blog.kakaocdn.net/dn/yrybD/dJMcacnZ6ml/zgOUNeLcTUoMCg2dwg5PkK/img.jpg" width="6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유리창을 통해서 인디언과 교역하는 백인의 뒷모습만 구경했는데, 1768년에 영국과 인디언 부족들간의 스탠윅스 조약이 여기서 체결되기도 했고, 미국 독립전쟁이 발발하자 캐나다 쪽에서 남하하는 영국군을 방어할 목적으로 1777년에 대륙군이 요새를 보수하고 주둔하게 된다. 그리고 8월에 약 20일간의 포위공격을 막아내면서 "결코 항복하지 않는 요새(the fort that never surrendered)"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이제 요새를 보여드려야 할 차례인데, 그 전에 위기주부를 아주 기쁘게 했던 작은 표지판 하나를 먼저 소개하면...<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2400" src="https://blog.kakaocdn.net/dn/dv7Ncb/dJMcacasExy/6JRiCz5jVvtKA6otOFECGK/img.jpg" width="6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재작년 말에 다른 두 개의 국립 트레일과 함께 NPS official unit으로 승격이 되었던 <a href="https://www.nps.gov/noco" rel="noopener" target="_blank"><b>노스컨트리 국가경관로(North Country National Scenic Trail)</b></a>에 위기주부가 서있음을 알려주는 이 작은 막대기였다.^^ 캐나다와 국경을 접한 오대호 지역의 8개 주를 지나는 총 길이가 4,800마일(7,700 km)로 미국에서 종주 거리가 가장 국립 트레일이다. 비록 그 길을 불과 몇 미터만 걸었지만 이렇게 기록에 남겼으니 '방문'한 것으로 치면, 여기서 두 개의 공식 유닛이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0842473991" rel="noopener" target="_blank">위기주부의 방문 리스트</a>에 추가되기 때문이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a href="https://www.northcountrytrail.org" target="_blank"><img height="1148" src="https://blog.kakaocdn.net/dn/ccY27O/dJMcac2yEzU/2yKKJWPXzMMIfKhQBgHW00/img.jpg" width="2100" /></a></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줄여서 NCT로 불리는 노스 컨트리 트레일은 위의 지도와 같이 노스다코타 주의 사카카위아 호수 주립공원(Lake Sakakawea State Park)에서 시작하여 미네소타, 위스콘신, 미시간,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뉴욕 주들을 차례로 거쳐 버몬트 주의 그린마운틴 국유림(Green Mountain National Forest)에서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2678947598" rel="noopener" target="_blank">애팔래치안 트레일</a>을 만나며 끝난다. 한마디로 위기주부에게는 지극히 미지의 장소들을 지나는 트레일인데... <span style="font-family: 'Noto Serif KR';">"다음 번에는 NCT 표지판을 어디서 보게 될까?"</span><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CKULc/dJMcac2yEzQ/Fe84jwrV6CEkh65hqyIRv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나무로 된 요새의 외벽 위로 펄럭이는 성조기를 게양해둔 상태로 당시 국립공원청 직원은 무급휴직에 들어갔던 모양이다. 스탠윅스 요새는 13개의 별이 들어간 디자인의 성조기가 전투 중에 최초로 게양된 장소로 알려져있기도 한데, 그 해 6월의 제2차 대륙회의에서 국기 결의안이 채택되었다는 소식이 전투를 준비하던 요새에 전해지자, 병사들이 옷을 잘라 즉석에서 만들어 걸었다는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18세기에 처음 만들어졌다는 나무 요새가 너무 깔끔해 보이는 이유는...<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600" src="https://blog.kakaocdn.net/dn/c7RrA7/dJMcabo5r7L/FfkzpfIdEMb9Ql5YdoKhK0/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항공사진과 같은 현재의 스탠윅스 요새는 1970년대에 도심 재개발을 하면서 철근과 콘크리트로 완전히 새로 만든 것으로 외부만 나무로 장식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여기에 있던 오래된 건물들을 모두 헐고 136 가구를 이주시킨 후에 요새의 토대를 발굴하고 역사적인 고증을 거쳐서 건축을 했기는 하지만, 장소 빼고는 모두 새로 만든 것이니까 일종의 '기념물'에 더 가깝다고 할 수도 있겠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yEjkd/dJMcac2yEzV/noaQt8fJV6Sn7ZaiNeewZ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스탠윅스 포위전(Siege of Fort Stanwix)은 영국군이 올버니(Albany)를 점령하기 위한 대규모 작전의 일부로 8월 2일에 시작되었다. 영국의 배리 리저(Barry Leger) 준장이 지휘하는 도합 1,800명의 병력이 요새를 포위했는데, 요새 안의 대륙군 수비대는 피터 간스부트(Peter Gansevoort) 대령의 약 700명 정도였단다. 그래서 급조된 민병대 약 800명을 이끌고 니콜라스 허키머(Nicholas Herkimer) 준장이 요새를 구하러 접근했지만, 6일에 미리 알고 요새 동쪽의 오리스카니(Oriskany) 숲에 매복하고 있던 영국군의 기습공격으로 거의 전멸되고 허키머도 중상을 입고 열흘 후에 사망한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2966" src="https://blog.kakaocdn.net/dn/biN9Eh/dJMcacasExL/YtwdgaKcCdEj1EvP5bcrPK/img.jpg" width="48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하지만 오리스카니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요새 수비대 부사령관이었던 매리너스 윌렛(Marinus Willett) 중령이 과감하게 요새를 나와, 영국군 진영을 기습하여 많은 보급품과 장비 및 작전계획 문서 등을 노획하는 성과를 거둔다. 또 몇일 후에 포위를 뚫고 추가 지원군을 요청하러 가는 등의 양웅적인 활약으로 현재 비지터센터에 그의 이름이 붙어있다. 위 초상화는 전후 1791년에 그려진 것으로 그는 1807년에 뉴욕 시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1aTn9/dJMcacasExK/2sRFeqLcFxpCuMNLXCbS5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부슬비를 맞으며 요새 입구까지 갔지만, 뾰족하게 깍은 나무 정문은 마치 그 옛날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비록 기습을 받아 사기가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우세한 영국군이 요새를 함락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고, 대륙군 본진에서 보낸 2차 구원군은 최대 300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구원군 지휘관이 꾀를 내어서 체포했던 영국군 간첩의 형을 인질로 잡고, 대규모 구원군이 진격하고 있다는 말을 흘리게 한다. 그 소문이 커져서 3,000명의 적군이 몰려온다고 리저 준장에게 보고가 되었고, 부하들의 동요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그는 22일에 포위를 풀고 철수하게 된다. 이처럼 싸우지도 않고 심리전으로 스탠윅스 요새를 구한 그 지휘관의 이름은... 본 여행기 시리즈 다음 편에 의외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예정이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2400" src="https://blog.kakaocdn.net/dn/9zVR9/dJMcacasExF/2sfvgH2pRI3kRxtKWDfHj0/img.jpg" width="6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길 건너 주차한 곳으로 돌아가니 <a href="https://empiretrail.ny.gov" rel="noopener" target="_blank">엠파이어 스테이트 트레일(Empire State Trail)</a>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맨하탄에서 허드슨 강을 따라 북쪽으로 캐나다 국경까지 또 그 가운데 올버니에서 이리 운하(Erie Canal)를 따라 서쪽으로 버팔로까지 만들어진, 옆으로 누운 T자형의 다목적 트레일로 총 길이가 750마일에 달하며 2020년 12월에 전체구간이 완공되었단다. 그런데 이 때가 오후 3시반인데 지금까지 점심도 안 먹고 돌아다녔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tswdL/dJMcajtP9HM/3ByVts40PmZLgyWqMNMUs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로마에는 쌀국수 집이 없어서 20분을 달려 북아프리카의 고대 도시 유티카(Utica) 부근까지 찾아왔다.^^ (유티카도 서두에 언급한 고전주의 영향을 받은 지명인데, 특이하게 제비뽑기로 결정되었다 함) 곱배기를 시켜서 배불리 잘 먹고 다음 국립 공원을 네비게이션에 입력하고 출발했지만, 도착할 때쯤에는 해가 지고 어두워져서 미리 예약해놓은 숙소로 목적지를 변경해야 했다. 이상과 같이 지난 10월말의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4058842408" rel="noopener" target="_blank">'2박3일 듣보잡 여행'</a>의 첫날에는 5개의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들을 리스트에 추가했다~</p> <p> </p> <p> </p> <p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font-family: 'Noto Serif KR'; color: #006dd7;">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span><span style="font-family: 'Noto Serif KR'; color: #006dd7;"></span></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Center"><a href="https://www.youtube.com/channel/UComDLlRMGWjRGdpzety0x7Q" target="_blank"><img height="75" src="https://blog.kakaocdn.net/dn/BCK35/btsPHGY1sYv/aiBTuQVs5WRzTho5eL1LAK/img.gif" width="500" /></a></figure> </p>
<p>미동부 버지니아로 이사와서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주변의 공원들을 빠짐없이 다녀보니, 노예해방 직후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활동했던 흑인을 기리는 곳들이 많다는게 눈에 띄었다. 방문 순서대로 적어보면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292934602" rel="noopener" target="_blank">Carter Woodson, Mary Bethune</a>,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298819630" rel="noopener" target="_blank">Frederick Douglass</a>,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438451320" rel="noopener" target="_blank">Maggie Walker</a>,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456106553" rel="noopener" target="_blank">Booker Washington</a>,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686432595" rel="noopener" target="_blank">Harriet Tubman</a>,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742159847" rel="noopener" target="_blank">Paul Dunbar</a> 등으로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꼭 붙는 수식어는 '흑인최초'이다. 물론 그 시대의 흑백차별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쯤되면 유사한 업적의 백인들은 받지 못하는 국가적 명예를 단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챙기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좀 들기도 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EVg3x/btsMESHNxrL/p6kkJKAcljkJmfUrvCgtk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오하이오 주 1박2일 여행을 계획하며 처음 알게된, 그 시대의 또 다른 흑인 선구자를 기리는 준국립공원인 <a href="https://www.nps.gov/chyo" rel="noopener" target="_blank"><b>찰스영 버팔로솔져 내셔널모뉴먼트(Charles Young Buffalo Soldiers National Monument)</b></a>를 찾아왔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I6Nfr/btsME6eMfdB/zzDurDQz4LkOukk2xdjQV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주정부에서 따로 만든 안내 표지판의 옆으로 보이는 도로는, 흑백요리사 준우승자인 에드워드 리가 사는 도시로 한국에서 갑자기 유명해진, 켄터키 루이빌(Louisville)에서 시작해, 신시내티와 콜럼버스를 차례로 지나며 대각선으로 오하이오를 완전히 관통해 북동쪽의 클리블랜드까지 이어지는 42번 국도이다. <a href="http://www.google.com/maps/d/viewer?mid=zGN_bB0flpac.kWwQgQpCK83U&msa=0&ll=39.70725,-83.89026" rel="noopener" target="_blank">(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a><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Js6H8/btsMEctA82R/2396ue5N3PZBm24WyXPkh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앞마당에는 찰스영 대령(Colonel Charles Young)의 집이 1974년에 국가역사 랜드마크(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지정되었다는 동판이 있는데, 1864년에 태어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세번째 흑인으로, 여기 윌버포스(Wilberforce) 대학교의 교수이며 흑인 최초의 군사 무관이자 국립공원 감독관, 그리고 1922년에 사망할 때까지 미군에서 가장 높은 계급의 흑인이었다는 간단한 이력이 적혀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dQPuOa/btsME6eMe3o/cT1nPuH2kjefKMvpKNMvt0/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국도변에 좌우로 다른 주택들은 전혀 없는 곳에 이 커다란 집만 너무 깔끔한 모습으로 우뚝 서있는 것이 상당히 어색했는데, 아주 최근에 내외부 리노베이션을 마쳤기 때문이다. 정문으로 들어가니까 예상치 못한 방문에도 불구하고, 흑인 레인저가 반갑게 맞아주며 2층의 극장에서 안내영화를 틀어주었는데 공원 홈페이지에서도 바로 보실 수 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chsLY0/btsMEzBNEHO/BnrkWhWdZQIYCALxKDy1i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영은 노예로 태어났지만 그의 아버지가 남북전쟁에 참전하며 가족은 자유인이 되었고, 어려서부터 음악과 언어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지역 고등학교의 유일한 흑인 졸업생이었다. 1883년에 오하이오 주에서 치러진 웨스트포인트 입학시험의 응시자 26명중에 2등의 성적을 받았고, 1등이 지원을 포기한 후에 연방 하원의원의 추천서를 받아서 이듬해 미육군 사관학교에 입학을 하게된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B8rgv/btsMDSPA9bH/lKyEUaAWGthKBs1qRaiAi0/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육사에서 급우와 교관들에게 극심한 따돌림과 괴롭힘을 받았는데, 맨 아래 사진에서 2열의 뒤로 빠져 서있는 사람이 찰스 영 생도(cadet)이다. 그는 19세기에 육사에 입학했던 9명의 흑인들 중 하나로, 1학년 때 수학에서 낙제를 하는 바람에 동기보다 늦은 1889년에 졸업을 해서 3번째이자 마지막 흑인 졸업생이다. (그리고는 거의 반세기가 흘러 1936년에야 4번째 흑인 졸업생이 나옴) 첫번째 졸업생은 인종차별주의 상관의 모함으로 불명예 전역, 두번째는 소위로 재직중 병사했기 때문에, 이 후 영은 진급할 때마다 군대 내 흑인최초의 기록을 매번 갈아치우게 된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2400" src="https://blog.kakaocdn.net/dn/YIE8X/btsME8p7887/npMFROm6d4xja6vWlkf4Uk/img.jpg" width="18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버팔로 솔저(Buffalo Soldier)는 흑인 군인을 말하는 것으로, 1870년대 인디언이 흑인들의 외모가 버팔로와 비슷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 것이 굳어졌다. 찰스 영은 당연히 이러한 흑인 부대의 지휘관으로만 계속 배치되었고, 중간에 윌버포스 대학교의 교수와 해외 여러나라의 무관 등을 거쳐서 1917년에 대령까지 진급한다. 문제는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자 그도 자신의 파견을 요청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를 준장으로 진급시키고 다수의 백인 장교들이 그의 지휘하에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미군은 그에게 별을 달아 유럽으로 보내는 대신에 지병을 이유로 강제로 전역을 시키는 해결 방법을 택한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2700" src="https://blog.kakaocdn.net/dn/bCGqad/btsMFlpea1H/mlkk2kdIfircs7Y8YFKG71/img.jpg" width="36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이듬해 복직 신청은 받아들여졌지만 라이베리아 군사 무관으로 발령을 내서 아프리카로 보내졌고, 찰스 영 대령은 나이지리아에서 임무 수행중 병을 얻어 1922년에 라고스에서 57세로 사망했다. 아내와 다른 흑인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1년 후에 유해가 발굴되어 미국으로 돌아왔고,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472908820" rel="noopener" target="_blank">알링턴 국립묘지 원형극장</a>에서 군사 장례식이 치러지고 거기에 묻혀있다. 이러한 그의 생애에 이어서 유산을 보여주는 설명판들이 나오는데, 위의 가운데 보이는 흑인이 앞서 언급한 육사 4번째 졸업생 Benjamin O. Davis Jr.로 육군 항공대를 거쳐서 공군 중장으로 1970년까지 복무했고 1998년에 예비역 대장 계급을 받았다. 이외에도 우리 세대가 아는 최초의 흑인 합참의장 및 대통령의 얼굴까지 계속 등장을 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2400" src="https://blog.kakaocdn.net/dn/mUIoq/btsME9o37vL/srClVKbPEGqKI9L4KLGDB0/img.jpg" width="18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특히 위기주부의 눈길을 끄는 이력으로 1903년에 찰스 영은 세쿼이아 국립공원의 책임자(superintendent)로 발령을 받아서, 도로건설 등에서 직전의 3년을 합친 것보다 많은 진척을 보여주는 등 훌륭하게 관리했으며, 이를 기념해서 2004년에 그의 이름을 붙인 세쿼이아 나무가 사진에 보인다. 이상과 같이 10장도 안 되는 분량으로 포스팅을 끝내기는 좀 아쉬운 듯해서, 글을 쓰며 찾아본 사진을 가져와 이야기를 좀 더 이어가면...<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a href="https://www.army.mil/article/256278/col_charles_young_posthumously_promoted_to_brigadier_general_at_west_point" target="_blank"><img height="780" src="https://blog.kakaocdn.net/dn/Cs7hP/btsMFvrCauL/MqN7xFoAjVqKhFwRFSCNg1/img.jpg" width="1170" /></a></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그가 아쉽게 객사하고 정확히 1백년이 흐른 후에 당시 인종차별로 진급의 장벽이 있었던 점이 인정되어, 2022년에 육군사관학교에서 그에게 준장 계급이 추서되어 조카 손녀가 대신 별이 달린 계급장을 받는 모습이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a href="https://sacobserver.com/2024/08/buffalo-soldier-charles-young" target="_blank"><img height="1307" src="https://blog.kakaocdn.net/dn/bdJYKX/btsMEmWZ2vB/YOJva0nEbr0F9MO9GkjXKK/img.jpg" width="2560" /></a></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그리고 지난 2024년 여름에 세쿼이아 국립공원에서 그를 기리는 나무의 이름판을 지정 20주년을 맞아 교체하는 행사가 열렸을 때의 사진으로, 찰스 영 준장(Brigadier General Charles Young) 나무는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2043730684" rel="noopener" target="_blank">크레센트 메도우(Crescent Meadow)</a>로 들어가는 도로의 다른 유명한 오토로그(Auto Log) 부근에 서있다고 한다. <span style="font-family: 'Noto Serif KR';">"아~ 그리운 세쿼이아 국립공원..."</span><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a href="https://en.wikipedia.org/wiki/Charles_Young_(United_States_Army_officer)" target="_blank"><img height="600" src="https://blog.kakaocdn.net/dn/bvL4qd/btsMD0NIHHv/3Eid1uFu0852U0HIZlSr6k/img.jpg" width="525" /></a></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글의 첫머리에 찰스 영과 동시대 흑인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그들이 흑인이라서 국립공원청에서 특별히 더 챙겨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이 든다고 했지만, 이 글을 마치며 내리는 결론은... 그 사람들 모두는 21세기의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극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큰 성취를 이룬 위대한 '인간'들이라서 그러한 영광을 누리는 것이고, 단지 그들의 피부색이 검었기 때문에 흑인 최초라는 수식어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다.</p> <p>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Center"><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705658449" target="_blank"><img height="50" src="https://blog.kakaocdn.net/dn/3jvwJ/btsMF4f5RYr/sMSo6nHA77D7lBmSsu7Te0/tfile.dat" width="500" /></a></figure> </p> <p> </p> <p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006dd7; font-family: 'Noto Serif KR';">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span></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Center"><a href="https://www.youtube.com/channel/UComDLlRMGWjRGdpzety0x7Q" target="_blank"><img height="75" src="https://blog.kakaocdn.net/dn/8jIl9/btsMF1wURwd/G7ncvgV9UyKzCEq1M2Zk20/tfile.dat" width="500" /></a></figure> </p>
<p>미동부 버지니아로 이사와서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주변의 공원들을 빠짐없이 다녀보니, 노예해방 직후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활동했던 흑인을 기리는 곳들이 많다는게 눈에 띄었다. 방문 순서대로 적어보면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292934602" rel="noopener" target="_blank">Carter Woodson, Mary Bethune</a>,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298819630" rel="noopener" target="_blank">Frederick Douglass</a>,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438451320" rel="noopener" target="_blank">Maggie Walker</a>,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456106553" rel="noopener" target="_blank">Booker Washington</a>,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686432595" rel="noopener" target="_blank">Harriet Tubman</a>,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742159847" rel="noopener" target="_blank">Paul Dunbar</a> 등으로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꼭 붙는 수식어는 '흑인최초'이다. 물론 그 시대의 흑백차별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쯤되면 유사한 업적의 백인들은 받지 못하는 국가적 명예를 단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챙기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좀 들기도 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EVg3x/btsMESHNxrL/p6kkJKAcljkJmfUrvCgtk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오하이오 주 1박2일 여행을 계획하며 처음 알게된, 그 시대의 또 다른 흑인 선구자를 기리는 준국립공원인 <a href="https://www.nps.gov/chyo" rel="noopener" target="_blank"><b>찰스영 버팔로솔져 내셔널모뉴먼트(Charles Young Buffalo Soldiers National Monument)</b></a>를 찾아왔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I6Nfr/btsME6eMfdB/zzDurDQz4LkOukk2xdjQV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주정부에서 따로 만든 안내 표지판의 옆으로 보이는 도로는, 흑백요리사 준우승자인 에드워드 리가 사는 도시로 한국에서 갑자기 유명해진, 켄터키 루이빌(Louisville)에서 시작해, 신시내티와 콜럼버스를 차례로 지나며 대각선으로 오하이오를 완전히 관통해 북동쪽의 클리블랜드까지 이어지는 42번 국도이다. <a href="http://www.google.com/maps/d/viewer?mid=zGN_bB0flpac.kWwQgQpCK83U&msa=0&ll=39.70725,-83.89026" rel="noopener" target="_blank">(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a><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Js6H8/btsMEctA82R/2396ue5N3PZBm24WyXPkh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앞마당에는 찰스영 대령(Colonel Charles Young)의 집이 1974년에 국가역사 랜드마크(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지정되었다는 동판이 있는데, 1864년에 태어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세번째 흑인으로, 여기 윌버포스(Wilberforce) 대학교의 교수이며 흑인 최초의 군사 무관이자 국립공원 감독관, 그리고 1922년에 사망할 때까지 미군에서 가장 높은 계급의 흑인이었다는 간단한 이력이 적혀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dQPuOa/btsME6eMe3o/cT1nPuH2kjefKMvpKNMvt0/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국도변에 좌우로 다른 주택들은 전혀 없는 곳에 이 커다란 집만 너무 깔끔한 모습으로 우뚝 서있는 것이 상당히 어색했는데, 아주 최근에 내외부 리노베이션을 마쳤기 때문이다. 정문으로 들어가니까 예상치 못한 방문에도 불구하고, 흑인 레인저가 반갑게 맞아주며 2층의 극장에서 안내영화를 틀어주었는데 공원 홈페이지에서도 바로 보실 수 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chsLY0/btsMEzBNEHO/BnrkWhWdZQIYCALxKDy1iK/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영은 노예로 태어났지만 그의 아버지가 남북전쟁에 참전하며 가족은 자유인이 되었고, 어려서부터 음악과 언어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지역 고등학교의 유일한 흑인 졸업생이었다. 1883년에 오하이오 주에서 치러진 웨스트포인트 입학시험의 응시자 26명중에 2등의 성적을 받았고, 1등이 지원을 포기한 후에 연방 하원의원의 추천서를 받아서 이듬해 미육군 사관학교에 입학을 하게된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1800" src="https://blog.kakaocdn.net/dn/bB8rgv/btsMDSPA9bH/lKyEUaAWGthKBs1qRaiAi0/img.jpg" width="24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육사에서 급우와 교관들에게 극심한 따돌림과 괴롭힘을 받았는데, 맨 아래 사진에서 2열의 뒤로 빠져 서있는 사람이 찰스 영 생도(cadet)이다. 그는 19세기에 육사에 입학했던 9명의 흑인들 중 하나로, 1학년 때 수학에서 낙제를 하는 바람에 동기보다 늦은 1889년에 졸업을 해서 3번째이자 마지막 흑인 졸업생이다. (그리고는 거의 반세기가 흘러 1936년에야 4번째 흑인 졸업생이 나옴) 첫번째 졸업생은 인종차별주의 상관의 모함으로 불명예 전역, 두번째는 소위로 재직중 병사했기 때문에, 이 후 영은 진급할 때마다 군대 내 흑인최초의 기록을 매번 갈아치우게 된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2400" src="https://blog.kakaocdn.net/dn/YIE8X/btsME8p7887/npMFROm6d4xja6vWlkf4Uk/img.jpg" width="18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버팔로 솔저(Buffalo Soldier)는 흑인 군인을 말하는 것으로, 1870년대 인디언이 흑인들의 외모가 버팔로와 비슷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 것이 굳어졌다. 찰스 영은 당연히 이러한 흑인 부대의 지휘관으로만 계속 배치되었고, 중간에 윌버포스 대학교의 교수와 해외 여러나라의 무관 등을 거쳐서 1917년에 대령까지 진급한다. 문제는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자 그도 자신의 파견을 요청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를 준장으로 진급시키고 다수의 백인 장교들이 그의 지휘하에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미군은 그에게 별을 달아 유럽으로 보내는 대신에 지병을 이유로 강제로 전역을 시키는 해결 방법을 택한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2700" src="https://blog.kakaocdn.net/dn/bCGqad/btsMFlpea1H/mlkk2kdIfircs7Y8YFKG71/img.jpg" width="36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이듬해 복직 신청은 받아들여졌지만 라이베리아 군사 무관으로 발령을 내서 아프리카로 보내졌고, 찰스 영 대령은 나이지리아에서 임무 수행중 병을 얻어 1922년에 라고스에서 57세로 사망했다. 아내와 다른 흑인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1년 후에 유해가 발굴되어 미국으로 돌아왔고,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472908820" rel="noopener" target="_blank">알링턴 국립묘지 원형극장</a>에서 군사 장례식이 치러지고 거기에 묻혀있다. 이러한 그의 생애에 이어서 유산을 보여주는 설명판들이 나오는데, 위의 가운데 보이는 흑인이 앞서 언급한 육사 4번째 졸업생 Benjamin O. Davis Jr.로 육군 항공대를 거쳐서 공군 중장으로 1970년까지 복무했고 1998년에 예비역 대장 계급을 받았다. 이외에도 우리 세대가 아는 최초의 흑인 합참의장 및 대통령의 얼굴까지 계속 등장을 했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span><img height="2400" src="https://blog.kakaocdn.net/dn/mUIoq/btsME9o37vL/srClVKbPEGqKI9L4KLGDB0/img.jpg" width="1800" /></span></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특히 위기주부의 눈길을 끄는 이력으로 1903년에 찰스 영은 세쿼이아 국립공원의 책임자(superintendent)로 발령을 받아서, 도로건설 등에서 직전의 3년을 합친 것보다 많은 진척을 보여주는 등 훌륭하게 관리했으며, 이를 기념해서 2004년에 그의 이름을 붙인 세쿼이아 나무가 사진에 보인다. 이상과 같이 10장도 안 되는 분량으로 포스팅을 끝내기는 좀 아쉬운 듯해서, 글을 쓰며 찾아본 사진을 가져와 이야기를 좀 더 이어가면...<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a href="https://www.army.mil/article/256278/col_charles_young_posthumously_promoted_to_brigadier_general_at_west_point" target="_blank"><img height="780" src="https://blog.kakaocdn.net/dn/Cs7hP/btsMFvrCauL/MqN7xFoAjVqKhFwRFSCNg1/img.jpg" width="1170" /></a></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그가 아쉽게 객사하고 정확히 1백년이 흐른 후에 당시 인종차별로 진급의 장벽이 있었던 점이 인정되어, 2022년에 육군사관학교에서 그에게 준장 계급이 추서되어 조카 손녀가 대신 별이 달린 계급장을 받는 모습이다.<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a href="https://sacobserver.com/2024/08/buffalo-soldier-charles-young" target="_blank"><img height="1307" src="https://blog.kakaocdn.net/dn/bdJYKX/btsMEmWZ2vB/YOJva0nEbr0F9MO9GkjXKK/img.jpg" width="2560" /></a></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그리고 지난 2024년 여름에 세쿼이아 국립공원에서 그를 기리는 나무의 이름판을 지정 20주년을 맞아 교체하는 행사가 열렸을 때의 사진으로, 찰스 영 준장(Brigadier General Charles Young) 나무는 <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2043730684" rel="noopener" target="_blank">크레센트 메도우(Crescent Meadow)</a>로 들어가는 도로의 다른 유명한 오토로그(Auto Log) 부근에 서있다고 한다. <span style="font-family: 'Noto Serif KR';">"아~ 그리운 세쿼이아 국립공원..."</span><br /><br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Left"><a href="https://en.wikipedia.org/wiki/Charles_Young_(United_States_Army_officer)" target="_blank"><img height="600" src="https://blog.kakaocdn.net/dn/bvL4qd/btsMD0NIHHv/3Eid1uFu0852U0HIZlSr6k/img.jpg" width="525" /></a></figure> </p> <p style="text-align: left;">글의 첫머리에 찰스 영과 동시대 흑인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그들이 흑인이라서 국립공원청에서 특별히 더 챙겨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이 든다고 했지만, 이 글을 마치며 내리는 결론은... 그 사람들 모두는 21세기의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극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큰 성취를 이룬 위대한 '인간'들이라서 그러한 영광을 누리는 것이고, 단지 그들의 피부색이 검었기 때문에 흑인 최초라는 수식어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다.</p> <p> </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Center"><a href="https://blog.naver.com/chakeun/223705658449" target="_blank"><img height="50" src="https://blog.kakaocdn.net/dn/3jvwJ/btsMF4f5RYr/sMSo6nHA77D7lBmSsu7Te0/tfile.dat" width="500" /></a></figure> </p> <p> </p> <p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006dd7; font-family: 'Noto Serif KR';">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span></p> <p><figure class="imageblock alignCenter"><a href="https://www.youtube.com/channel/UComDLlRMGWjRGdpzety0x7Q" target="_blank"><img height="75" src="https://blog.kakaocdn.net/dn/8jIl9/btsMF1wURwd/G7ncvgV9UyKzCEq1M2Zk20/tfile.dat" width="500" /></a></figure>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