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젝키입니다.
1997년 4월 15일에 대성기획 ( 현 DSP미디어 ) 소속으로 데뷔한 대한민국의 ( 6인조로 데뷔했던 ) 4인조 보이그룹이다.
2000년 5월에 해체되며, 2016년 4월에 재결합을 하고, YG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7년~2000년 활동 당시 H.O.T.와 함께 가요계 아이돌 돌풍의 쌍두마차였으며, 소방차를 만든 사람이 다름 아닌 DSP의 이호연 사장인데, H.O.T.가 아닌 소방차를 아이돌의 시초로 본다면 젝스키스는 소방차의 직속 후배라는 정통성도 있다. 정원관이 만든 NRG가 아니라? 데뷔 해인 1997년 2집까지는 언론이 붙인 라이벌 느낌이 있었지만 98년 3집부터는 정말 H.O.T.와 맞설 만큼 성장했고 3.5집 "커플" 시절에는 공동 대상을 수상했다. 아이돌 팬덤의 시초 옐로우키스 문서 참고.로 알려져 있다. 공식색은 이다.
그룹명 '젝스키스'는 독일어로 여섯 개의 수정 'Kies'에는 수정이라는 뜻도 있지만 가장 널리 쓰이는 뜻은 '자갈', '돌멩이'다. 여섯 돌멩이, 여섯 개의 돌땡이들 정확히 '수정'의 의미를 나타내려면 'Kristall'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맞다. 독일어라서 실감이 잘 안 난다면 영어의 'stone'을 생각해보면 된다.이라는 뜻으로, 팀 내에서 멤버 세 명씩 블랙 키스와 화이트 키스로 구분했다.
블랙키스는 ( 은지원, 이재진, 김재덕 ) , 화이트키스는 ( 장수원, 고지용, 강성훈 ) 이다. 활동을 거듭하면서 이 컨셉은 초창기 컨셉으로 남는다.
젝스키스의 약칭인 '젝키'로도 주로 불리곤 한다. 공식 색은 노란색이며 팬클럽은 옐로우키스 ( 옐키 ) 이다.
1997년 4월 15일에 데뷔해 2000년 5월 18일 공식 해체했고, 2016년 무한도전 토토가 2를 통해 재결합하게 된다. 이후 고지용을 제외한 나머지 5인이 YG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체결해 다시 활동에 나서게 되다가 김재덕을 제외한 멤버들은 기타 솔로 활동도 YG엔터테인먼트에서 담당한다. ( 제이워크 활동은 웤플럽 팬미팅으로 보아 YG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 2019년 1월 강성훈이 공식제명되면서 현재는 4명으로 활동 중이다.
전 소속사인 DSP미디어는 젝스키스와 계약서를 쓰지 않았고, 지금까지 젝스키스 상표권을 신청한 바도 없다. DSP가 젝스키스 해체 후 찌질하게 상표권 등록을 수차례 시도했다가 실패했다는 루머를 퍼뜨리는 글이 많았는데, 이는 팬들이 악역을 만들어내려고 애쓴 거짓말이다. DSP에서 젝스키스 상표권 등록을 신청한 적이 없고 어느 이상한 기업체에서 신청했다 거절당한 내역만 있다. [ ] YG엔터테인먼트와는 계약서를 작성했고 상표권 또한 YG 측에서 정식으로 등록해 젝스키스의 상표권을 가지고 있다. [젝스키스를 검색하면 알 수 있다.]
인기
1990년대 후반에 활동한 1세대 아이돌로 3년이라는 짧은 활동 기간동안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줄곧 정상권에 있었고, 다수의 음악 방송 1위를 비롯해 각종 가요 시상식 본상은 물론 98년 서울가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정상급 아이돌이었다. 데뷔 초 10대 여성 팬덤이 상당했으며 활동할수록 젊은 여성 층과 남성 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최초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아이돌 그룹이면서 매년 단독 콘서트를 개최해 매진을 기록하였으며 2000년 해체 발표 후 드림콘서트 ( 서울올림픽주경기장 ) 에서 열린 고별 무대에 약 5만 명의 팬들이 몰려들었다. 당시 젝스키스의 팬덤은 7만 석 중에 4만 8천 석을 차지하였으며, god는 1만 5천 석을 차지하였다. 젝스키스의 이 규모는 H.O.T., 서태지와 아이들의 뒤를 이어 역대 드림콘서트 팬덤 규모 3위에 해당된다. [ ] 음악 외적인 예능, 연기, 뮤지컬 등의 활동이 미비했던 당시에도 데뷔 초부터 고정 예능에 출연했고, 멤버 전원이 라디오 DJ를 하였으며, 영화, 뮤지컬에도 출연했고 젝키의 이름을 붙인 상품도 출시한 바 있다.
젝스키스가 건재하던 당시에는 ( 1998년 ~ 2000년 초 ) 같은 1세대 아이돌인 신화와 god보다 훨씬 높은 인지도와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신화와 god를 1.5세대로 분류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신화 멤버 전진은 2008년 솔로앨범 인터뷰에서 H.O.T.와 젝스키스는 큰 벽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 2016년 MBC FM4U 박경림의 두시의 데이트에 출연한 신화 멤버 김동완은 젝스키스의 컴백이 신경 쓰이냐는 질문에 젝스키스가 H.O.T.와 당대 그 어깨를 나란히 하고 팬덤이 굉장히 거대했기 때문에 지금 바람이 불고 있어서 신경이 쓰인다고 답한 바 있다. [] god의 데니 안 역시 데뷔 직후였던 1999년 1월 당시의 젝스키스를 대선배 내지 인기스타로 회고하였다. [][] 실제로 신화는 으쌰으쌰 활동 당시인 1998년에 젝스키스와 함께 1위 후보에 올랐었으나, 3위를 한 바 있으며, [] god는 젝스키스가 4집 활동을 마무리 한 직후인 2000년 1윌 초에 첫 1위를 했기 때문에 이러한 인식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젝스키스의 전성기 때 신화와 god는 막 떠오르던 라이징 스타였기 때문에, 직접적인 1대1 비교는 무리가 있다. 이러한 평가는 젝스키스가 재결합 후 과거의 이력이 알려지면서 재평가가 이루어지게 된다. 특히 짧은 시간의 활동후 십수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잊지않고 있는 팬들의 관심에 대중들이 당대 인기를 실감하게 되며, 새로운 세대들까지 관심을 가지며 새로운 패러다임까지 제시하고 있다.
H.O.T.와의 비교 문제의 경우, H.O.T.와 격차가 컸던 것은 맞다. 하지만 당시 H.O.T. 팬덤 규모가 워낙 컸던 것이지, 젝스키스 자체의 절대적 인기치만 따지면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즉 1위와 2위의 격차가 컸긴 하지만, 2위와 그 밑의 격차도 컸다. 그리고 젝스키스는 노래의 대중성이 확보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커플은 역대급 대중성을 오랜 기간 유지했다. 젝키 노래의 대중성에 대한 기고문: 90년대, 하얀 풍선과 노란 풍선이 부딪치던 그 시절. DSP는 따라쟁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만큼 집요하게 SM의 성공을 뒤쫓아댔다. 그 수준도 너무나 노골적이었다. HOT가 다섯으로 성공하자 그들은 곧 하나를 더 붙인 6인의 젝스키스를 만들었고, 세 명의 SES가 등장하자 곧 한 명을 더 붙여 4인의 핑클을 내보냈다. 교실은 SM파와 DSP파로 나누어져 있었다. 희한하게 SM 소속의 아이돌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반드시 SM을 선택했다. 그것은 DSP파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토록 첨예하게 맞부딪히면서도 우리들은 당시 유행했던 노래방에 갈 때면 어김없이 DSP의 노래를 선택했다. 커플과 예감, 루비와 내 남자친구에게 같은 노래들은 멜로디가 쉬웠고 대중적이었으며 주로 사랑을 노래해서 아이돌의 팬이 아닌 사람과 마주해도 부담 없이 그 노래를 선택할 수 있었다. 마치 어른이 된 기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HOT의 노래들은 한마디로 관상용이고 무대용이었지 노래방에서 신나게 외쳐 부르며 하나가 되는 대중적인 음악은 아니었다. 톡 까놓고 말해 어르신들 앞에서 '아이야' 따위를 부를 수 있겠는가. 나는 모르는 일본 애니메이션 노래를 부르는 오덕후 친구를 마주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에는 그렇게 젝키라면 으르렁댔던 H.O.T. 팬들도 나이들어서는 젝스키스의 그 대중성에 감탄할 정도다. 물론 H.O.T.도 환희, 캔디, 빛 같은 대중적인 곡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비중이 달랐다. 참고로 양 기획사 입장에서는 라이벌 구도를 통해 동반 상승효과를 얻으며 많은 인기를 모으게 돼서, 서로가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되는 존재였다. SM 이수만 사장이 고맙다며 젝키 매니저한테 밥도 사주고 등도 토닥여주는 일이 있을 정도였다. [] 남돌에 별 관심 없는 남성들에게 이해가 쉬운 사례를 들자면 일본 프로야구의 요미우리 자이언츠-한신 타이거스의 관계와 매우 유사하다. 일본 프로야구의 탄생을 이끌었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탑급의 전국구 인기를 지니고 있지만 정작 비싼 도쿄돔에 들어앉아 생각보다 자주 접근하기는 어려운 교진이 H.O.T.였다면, 그 바로 다음주자로 부동의 2위 자리를 고수하며 교진과 함께 라이벌 구도로 업계 전체의 흥행을 이끈 것이 젝스키스였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한신은 일본 프로야구가 양대리그로 갈라지자 교진과 사이가 안좋음에도 라이벌 구도가 지속되어야 흥행이 된다는 판단으로 교진과 같은 센트럴리그에 남았다.
2016년 재결합 후 현재까지 상당한 규모의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이전 활동 당시에 보유했던 기존의 팬덤 90년대 후반 최정상급의 대규모의 팬덤.과 동시에 재결합 소식 이후 새로운 팬덤이 유입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이할 점은 젝스키스가 오랜 공백을 딛고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어린 팬층 젝스키스가 데뷔할 무렵이나 후에 태어난 세대. 을 적지 않은 비율로 보유하고 있다는 점인데, 때문에 팬들의 연령 스펙트럼이 꽤나 넓은 편이며 아이돌 팬덤 중에서도 독특한 케이스. 무한도전을 통해 젝스키스를 접하고 유튜브 등으로 과거 활동 모습을 보고 입덕을 하는 팬들이 많다. 현재 팬카페에는 03학번과 03년생이 공존하며, 97년생과 97학번이 대화를 나누는 건 거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심지어는 해외 K-POP 팬들중에도 이런 경우가 있을 정도다. K-POP이 인기를 얻어가면서 아예 K-POP 자체의 역사에 흥미를 느껴 조사하다가 알게된 경우도 있고 무한도전 등으로 알게되어 예전 전성기 영상을 보고는 입덕하게 되었는데 컴백을 해 버리자 완전히 팬이 된 경우가 꽤 있는 편.[][] 재결합 후 다시 오른 시상식에서 201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돌인 EXO, 방탄소년단과 함께 대규모 팬들이 찾아왔다.
3년이란 짧은 활동 후 16년이란 세월이 지났음에도 떠나지 않은 수많은 팬들과 지금의 세대가 아닌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새로운 팬층까지 유입시킬 수 있는 저력있는 그룹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들이 한창 활동했던 시기인 1997년~2000년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은 현재 기준 성인으로 성장했으며 해당 나이대의 현역 아이돌들과 선의의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또한 젝스키스는 16년이 지나 재 결합 당시에도 많은 팬들이 응원을 겉삼아 보고싶었다 다시 돌아와줘서 고맙다 등등 훈훈한 모습도 많이 보여줬다.
외모
재결합 이후 16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관리가 상당히 잘된 외모 2020년 기준 멤버 전원 만 40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동안이다.와 몸매로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는 현재 어린 소녀팬들이 많이 생겨나게 된 이유이기도 한데 지난 토토가 시즌 1에 비교해서 어린 시청자들이 90년대 가수를 보고 팬이 되어버리는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음악
대중적인 컨셉과 노래로 팬이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3년간의 짧은 활동이었지만 정규앨범만 5장으로 히트곡 수가 상당한데, 타이틀곡만 대중들에게 홍보하고 수록곡은 팬들만 듣는 요즘의 아이돌 앨범과는 달리, 각 앨범당 수록곡까지 2~3곡은 히트를 쳤다. 심지어 3집의 경우, 아이돌 가수 중 최초로 한 앨범에서 3곡이 지상파 1위를 차지하는 신기록을 세운다. 대체로 타이틀 곡으로 파워풀하고 카리스마 있는 댄스곡을 선보이며, 후속 활동으로 발라드와 부드러운 템포의 곡으로 활동으로 조화를 이루며 여러 색깔을 보여주었다. 립싱크가 많았던 활동 당시에도 격한 안무속에서도 라이브 무대가 많았으며 무리없이 소화하기도 했다. 그 중 1997년 폼생폼사와 기사도, 1998년 무모한 사랑, Road Fighter, 커플, 1999년 Com' Back 등은 시간이 지나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젝스키스의 대표곡으로 꼽힌다. 타이틀 곡으로 활동하지 않은 앨범 내 수록곡 중에도 명곡이 많은데, 특히 기억해줄래, 너를 보내며, 예감과 같은 미디움 템포의 발라드들이 많이 꼽힌다. 특히 오락실을 휩쓸던 펌프 음악으로도 사용되어서 큰 인기를 모아 대중들에게 친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