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6월 4일 당시 MBC 뉴스특보. 앳된 모습의 손석희 앵커와 박광온 기자의 모습이 나온다.
천안문 6.4 항쟁은 1989년 6월 4일 중화인민공화국 천안문광장에서 벌어진 대규모의 민주화운동이다.
일반적으로 천안문 사태라고 말하면 이 항쟁을 말한다. 인민해방군과 시위대의 충돌로 최소 500명이 사망하였다. 공식적인 표기는 주로 천안문 사태이지만 이는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위해 쓰인다는 비판이 있다.
천안문광장에 모인 시민들. 자세히 보면 칭화대, 난카이대 ( 南开大学 ) 등의 대학 깃발도 섞여있는 것으로 보아 대학생들로 보인다.
1989년 4월 말부터 계엄령이 선포된 5월 20일까지 천안문 광장에는 2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민주화와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며 수많은 사람들이 단식투쟁에 참여했고, 이것에 자극받은 시민들이 천안문 광장으로 점점 몰려들기 시작했다.
베이징 공안들도 시민과 학생의 민주화 시위를 지지한다는 뜻에서 상당수 행렬에 참여하기도 했다.
학생 시위대는 인민해방군이 들이닥치기 전에 연이은 단식시위와 군중시위로 녹초가 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인민의 군대'가 인민을 향해 포신을 겨누며 광장으로 들어왔다.
"피해는 최소화해야 하지만, 어느 정도의 피는 반드시 봐라!"
덩샤오핑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총리 리펑에게 무력 진압 명령을 내리면서. 리펑 본인의 회고록에서 나오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