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은 아껴 쓰는 데 있고, 아껴 쓰는 근본은 검소하게 말하는 데 있다. 검소한 연후에나 능히 청렴할 수 있고, 청렴한 연후에나 능히 자애로울 수 있으니, 검소한 자가 되는 그 자체가 백성을 다스리는 수장의 의무다.
이 편지가 번화가에 떨어져 나의 원수가 펴보더라도 내가 죄를 얻지 않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써야 하고 또 이 편지가 수백 년 동안 전해져서 안목있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더라도 조롱받지 않을만한 편지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 中. 정약용의 편지를 모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는 책에서도 이 내용이 나온다. 한편 이 내용은 유배 생활 중이던 자신이 쓴 편지 내용이 외부에 알려질 때 그것이 정적들에게 악용되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및 지인들의 신변에 악영향을 줄 것을 근심했던 정약용의 마음을 반영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먼 훗날 한반도의 후손들 외에도 세계 각지에서 아무렇지 않게 인터넷에 쓴 과거의 실언, 망언이 발견되거나 SNS 상에서 실언, 망언을 일삼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터지면서 이 내용은 후세에 큰 지지를 얻게 된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조선이 낳은 천재이다. 1762년 공교롭게도 조선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사건인 임오화변이 있었던 그 해다. 경기도 광주부 초부면 마재리 ( 現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 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 자는 미용 ( 美鏞 ) ·송보 ( 頌甫 ) , 초자는 귀농 ( 歸農 ) , 호는 다산 ( 茶山 ) ·삼미 ( 三眉 ) ·여유당 ( 與猶堂 ) ·사암 ( 俟菴 ) ·자하도인 ( 紫霞道人 ) ·탁옹 ( 籜翁 ) ·태수 ( 苔叟 ) ·문암일인 ( 門巖逸人 ) ·철마산초 ( 鐵馬山樵 )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