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성우이자 배우.
과거 재일교포 3세였고 현재는 일본인이다. 본래는 한국 국적이었지만 2015년 12월 25일에 한국 국적을 포기함과 동시에 일본으로 완전히 귀화를 했다. 비슷한 사례는 성우 김향리가 있다. 토호학원 예술단대 연극과 졸업 후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 유학. 팬들에게는 보통 로미네 ( 姉: 누님 ) 라고 불리고 있다.
이름에 관하여
참고로 璐 ( 아름다운 옥 로 ) 자는 완성형과 Shift-JIS 전부 '없는 글자'로 처리된다. 때문에 상당수 일본계 사이트에서는 가타카나인 ロ로 치환해서 보여준다. 공식 표기할 때도 王+路로 적히는 경우가 있다. 영문 표기도 Baku Romi, Paku Romi, Park Romi가 종종 혼용되는 듯. 공식 표기에서도 병행되어 쓰일 때가 많다. 거기다가 자주 사용하는 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璐자만 폰트가 다른 경우도 많다. 참고로 璐를 파자하면 왕 왕 ( 王 ) 자와 길 로 ( 路 ) 자로 분리되는데, 왕의 길을 가라는 뜻으로 할아버지가 붙여주신 이름이라고 ( [] ) 한다.
할아버지의 고집으로 한국식 璐 ( 아름다운 옥 로 ) 자는 피에스타의 멤버 차오루 ( 曺璐 ) 처럼 중국에서도 쓰이는 인명용 한자이기도 하다. 다만 일본만 안 쓰일 뿐. 이름을 쓰긴 했지만 특별히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놀림받거나 하지는 않고, 이름 표기가 신기해서 물어봤을 때 '응 한국계야~'라고 대답해주면 '그랬구나' 했다는 듯하다. 본인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고 주변에서도 나쁜 반응은 없었다고 한다. 다만 특이한 이름이라 놀린 학우들이 있었다고 한다. 성격이 워낙 히어로급인지라 잘 어울려 노는 아이였다고 한다. 유명해진 현재는 재일교포라 일본에서 안티가 좀 있는 편인데 2ch에서는 아예 안티 스레가 있다. 한국 국적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일본에서는 좀 껄끄럽게 보는 듯하다. 한때 위키백과에 문서 훼손이 있기도 했다. Uncyclopedia에서도 턴에이 건담 관련 항목에서 안 좋은 이미지로 쓰여지기도 했다. 물론 이런 인종차별보다는 박로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좋아하는 사람들의 불만은 작품 외 활동이 잘 보이지 않아서서 작품 밖의 박로미를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블로그에도 애완견들 얘기가 더 많았지만 2011년에 새로이 단장한 블로그에서는 개인 얘기가 더 많고 사진도 많은데 ( 거의 매일 업데이트 된다 ) 나이가 무색하게 피부가 좋다.
영미권에서는 일본식 독음인 Paku가 아닌 한국인들이 주로 쓰는 Park이라는 표기로 성을 자주 표시한다. 물론 Paku란 표기는 일본 내 미디어에서 사용된다.
가족관계와 국적
아버지가 재일 한국인 2세이며, 어머니가 한국인이다. 서구에서는 이 때문에 한/일 혼혈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 프로필에 보면 할머니가 일본인. 외갓집이 한국에 있어 한국을 찾은 적도 여러번 있다고 한다. 한국어는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상당한 수준이었는데, 그 후 오랫동안 안 쓰다 보니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유튜브를 뒤져보면 2000년에 한국어로 한 인터뷰가 있는데 외국인 억양이지만 귀엽다. 발음은 전형적인 재일교포 발음이나, 어느 정도의 문장 구사력은 있다. 같은 교포인 손정의, 강상중, 신동주 등이 아예 할 줄 모르거나 거의 못 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면 꽤 훌륭하다. 2011년 5월 6일자 블로그를 보면 "한국어도 다시 제대로 하고 싶다"라고 얘기하는 것을 보면 자신도 자신의 한국어가 부족한 것을 인식하고는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영어도 배우고 싶다잖아. 힘들 거야 아마
혈통상 재일 한국인 3세. 기본적으로 자신을 한국인으로 인식하지만, 딱히 국적을 강조하거나 특별히 의식하지 않는다고 내한 인터뷰 때 밝혔다. 이 외 연극 배우 관련 발언을 보아 명확히 구분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당시 한 말은 "내가 스스로를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구별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우와 연극 배우를 따로 구별해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 사회에서 '나는 재일이다'라고 떠들고 다니면 사회 생활하기 힘들다. 일본 내 재일계 연예인들은 대부분 일본식 이름이나 예명을 쓰는 것이로 확인 할 수 있다. 일본 야구계 ( NPB ) 에서 재일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소신일 정도로 재일 출신임을 밝히지 못하는 선수들이 많다. 감독이자 배우로도 활동한 최양일의 경우는 사이 요이치라는 일본식 발음을 사용한다 ( 한자로는 그대로 ) .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 앞에 나서는 재일 한국인으로서는 '대한민국 자체'에 대한 애정 사실 재일 한국인들은 한국보다는 본인과 같은 교포들에 대한 애정을 훨씬 더 많이 표출하곤 한다. 같은 교포로 일본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동질감을 느껴서이다.을 많이 표시하는 몇 안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고, 한국에 잠시 유학을 다녀온 적도 있었으며, 본인이 출연한 애니메이션이 한국어로 더빙이 되면 많은 관심을 갖기도 한다. 에드워드 엘릭의 한국판 성우인 손정아를 만나고 싶다고 한 것이 대표적인 예. 이외에도 한국 문화에도 관심이 꽤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그녀의 이상형이 한국의 유명한 가수 신승훈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언니가 한 명 있고 남동생도 한 명 있다.
아버지는 뇌출혈로 양로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았다. 2011년 3월 말에 아버지가 있는 양로원에 위문 공연을 하러 갔다.
2013년 2월 9일자 트위터에 '어제 ( 2월 8일 )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트윗이 올라왔다. 트윗의 내용에 따르면 아버지는 11년간 전신마비였다고 한다. 이후 2월 12일에는 아버지의 오츠야 ( お通夜: 상가에서 밤을 지새는 것 ) 라는 트윗이 올라왔다. 그리고 4월 6일에는 아버지의 유골을 뿌리기 위해 한국에 온다는 트윗이 올라왔고, 4월 7일의 트윗에 따르면 한국에서 유골을 뿌리는 일을 끝내고 일본에 돌아갔다고 한다.
한국의 친척 ( 아주머니 뻘 ) 이 연출가 한태숙.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최인훈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고 본디 연출가 김정옥이 1970년에 처음 연출했다. 한태숙은 2009년판을 연출.라는 작품의 연극의 연출을 했다. 박로미의 언니는 이 연극의 포스터 디자인을 했다.
단, 2015년 12월 25일에 일본으로 귀화를 허가받아 완전한 일본인이 되었다. 일본 국립 인쇄소 홈페이지의 정보룰 보면 도쿄도 신주쿠구 나카이에 거주하는 쇼와 47 ( 1972 ) 년 1월 22일생 박로미라고 등록되어 있다. 오랜시간 [엔사이클로피디아]에선 한국 국적으로 기록하였으나, 2020년 현재는 일본국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2020년 1월 22일에 배우이자 성우인 야마지 카즈히로와의 결혼을 발표하였다. 참고로 본인의 48번째 생일.[] 나이 차이는 상당히 큰 18살차.